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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ple Nov 25. 2022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의 습작

2. 엄마의 성장통

남편과 첫째가 현관을 나서는 아침 8시 30분.

창밖으로 바삐 움직이는 차량 행렬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내 신세가 서러워 눈물이 났다. 밤새 1시간 반 텀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유난스러운 둘째로 인해 좀비 모드로 살아낸 지 벌써 1년이 한참 지났다. 그동안 나는 아이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타향살이로 16년 경력을 스스로 포기해야 했으며, 원할 때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기본권을 잃은 엄마 사람이 되었다. 너무도 당연했던 일상을 압류당하고 ‘모스 부호’ 해석하듯 목소리 톤과 눈빛, 몇 개의 단어만으로 작은 생명체의 뜻을 헤아리기란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프로젝트와도 견줄 수 없는 난이도 최상이었다. 첫째 때 임신, 출산, 육아 모든 것이 너무도 순조로웠기에 가당치 않은 자신감에 둘째를 가졌다. 그때만 해도 ‘키울 만하겠는데?’ 싶던 호기로움은 둘째 출산 후 산산조각이 났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넘어선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이었다. 우울증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고 있던 그즈음이었다. 육아 휴직에 이은 퇴사의 영향이 컸다. 잉여 인간이 된 듯한 불안함과 조급함, 그리고 엄마라는 현실에 자꾸 주저앉는 나와 달리 남편은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자기 삶에 충실한 남편이 야속했고, 어른 사람과의 대화가 단절된 세상에서 오롯이 아이를 책임지는 시간이 두렵기까지 했다. ‘사랑하지 않아서’도, ‘미워서’도 아니었다. 남들은 둘째가 더 이쁘다던데 난 송두리째 없어진 내 삶이 꽤 당황스러웠고, ‘옹알이’ 아닌 어른 사람들과 대화다운 대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를 찾고 싶어 선택한 대학원이었다. 덜컥 일을 벌이고 보니 육아 공백을 메우려면 정밀하게 맞물린 무브먼트처럼 남편과의 치밀한 공조가 필요했다. 과연 나의 스케줄을 따라 육아를 책임질 ‘꼼작 마 모드’의 삶을 남편은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과 두려움도 잠시 나는 좀 더 건강 해져야 했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때 시작된 코로나19로 수업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사적 모임이 금지되면서 굳이 아쉬운 소리 없이 남편의 자의 반 타의 반 육아 지원사격이 시작됐다. 예상 밖의 기회였다. 물론, 남편이 야근하는 날엔 온라인 수업에 둘째가 수시로 출몰하고 발표수업에 아이의 코러스가 메아리치는 웃픈 상황들은 기꺼이 감당해야 할 내 몫이었다. 어느 하나 쉽지 않았고 밤샘 과제와 시험, 조별 발표수업이 힘들다는 푸념조차 사치였지만 절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엄마가 아닌 ‘나’로서 온전한 몰입과 집중의 시간은 가뭄의 단비였고, 내 삶의 윤활유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삶을 찾기 위한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5학기가 지났다. 지나온 시간을 찬찬히 되짚어보니 참 애쓰며 살아냈구나 싶다. 엄마의 성장통을 독하게 앓고 나니 육아는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엄마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임을 알 것 같다. 아직도 덜 자란 나는 ‘엄마’와 ‘나’ 사이에서 갈등을 반복하는 서투른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지만, 더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날의 아침처럼 서럽지 않은 까닭은 제법 의젓해진 둘째만큼 나도 훌쩍 성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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