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재 쉐프님이 말하는 진정성이란,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어졌다. 보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오랜만에 글로 남기고 싶을 정도로 좋은 인터뷰를 읽었다. 흑백요리사로 화제인 모수 안성재 쉐프님 인터뷰다. 모처럼 일정이 없는 토요일이라 카페에서 라떼를 마시며 여러 아티클들을 읽다가, 롱블랙에 인기글로 올라와 있어서 읽었다.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요리를 코딱지만큼도 모르지만 굉장히 멋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음식을 잘 해서가 아니라 무언가에 저만큼 몰입하고 진심일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그들의 리스펙을 받는 심사위원들은 얼마나 대단한 삶을 살았을까 싶기도 했다. 백종원 선생님이야 워낙 기업인으로 존경하는 분이라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안성재 쉐프님은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된 사람이었다.
오늘 읽은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건, 그도 특별한 지름길을 찾거나 편법을 찾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항상 진정성있게 최선을 다해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지독할 정도로 꾸준하게 말이다. 사실 어떤 영역에서 정점에 가까운 곳에 도달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 비슷하다. 그걸 사람들은 모두 알지만,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그것보다 조금 더 쉬운 것은 없을까 다른 생각을 하는 거 같다. 근데 수백년간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다른 답은 없는 것 같다. 그저 '기본에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 스스로에게 떳떳할 정도로 노력하는 것,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그것을 지켜내는 것' 이 전부다.
나도 머리로 알지만, 사람인지라 가끔 해이해지기도 한다. 그런 시기에 좋은 자극이 되어 준 인터뷰다. 안성재 쉐프의 답변들에 공감이 참 많이 됐던 부분들만 스크랩 해봤다. 두고 두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지금 주어진 일을 누구보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설거지가 내 일이면 설거지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참 많이 공감한 답변이었다. 약간 젊은 꼰대(?)로서 주변에 자주 하고 다니는 잔소리랑 비슷했다. 매우 기본적이고 소위 말하는 짜쳐보이는 일도 기똥차게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뭘 시켜도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더 크고 중요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잘 해야만 하는 수 많은 단계가 있다. 인간은 그 구간을 건너뛰고 돋보이고 멋진 것만 빠르게 취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어떤 환경에서든 내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가만히 둘 만큼 세상이 바보는 아닌 것 같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건 그만큼 잘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지 않을까.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의 노하우나 디테일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어깨너머로만 배울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작은 차이가 완성도를 판가름하죠"
이 대목도 참 인상 깊었다. 어떤 영역에서든 일정 수준까지는 강의나 이론, 가이드와 매뉴얼 같은 교육자료들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성장 단계는 무조건 경험의 차이다. 그 경험의 깊이와 빈도에 따라 실력 차는 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미세한 '나아감'의 반복이기에 당사자들도 어떤 시기에 어떤 이유로 내 실력이 늘어있는 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다보니까 이렇게 되던데요?" 라는 말이 싸가지 없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설명을 원하기 보다 어깨너머로 관찰해야 한다. 관찰하고 따라해보고 내게 맞춰 가고, 그런 과정의 반복이 어떤 영역에서든 성장을 만드는 것 같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고객보다 먼저 움직인다.’
모수의 서비스 철학이에요. 손님이 빈 물컵을 바라볼 때 물을 따라주고,
문을 나서기 전에 먼저 열어주는 거죠.
이건 어떤 태도나 사고방식에 공감했다기 보다, 철학에 공감했던 것 같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그것을 제공하는 것도 매우 매우 어렵다. 그것보다 한 발 자국 더 가서 고객이 원하는 바를 말하기도 전에 그것을 제공하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하지만 저런 철학을 가지고 일해야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라도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끔 식당에 가봐도 이런 경우를 볼 수 있다. 수저를 떨어트린 상황에서 어떤 알바는 소리만 듣고 새 수저를 요청하기 전에 가져다 준다. 더 나아가 수저 세트 몇개를 여분으로 앞치마에 넣어다니는 알바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평균 이상 할 거라 믿는다.
진정성은 ‘가장 소홀하기 쉬운 것조차 소홀히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제가 채소의 익힘 정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디시에서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고기가 맛있고 소스가 맛있으면, 맛있는 요리겠죠. 하지만 그건 가장 기본이에요. 대충 해서 넣을 수 있는 채소의 간과 익힘까지 하나하나 다 맛보고 최선을 다할 때, 요리에 진정성이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구절이다. 뭔가 명확히 한 줄로 정리하기 힘들었던 나의 가치관을 시원하게 정리해준 느낌이었달까, 진정성은 가장 소홀하기 쉬운 것조차 소홀히 하지 않는 태도. 이보다 좋은 정의가 있을까 싶다. 채소의 익힘정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안승재 쉐프의 프로그램 내 발언이 하나의 밈처럼 쓰이고 있는데, 이 정의를 알고 나서는 밈처럼 감히 쓰지 못할 것 같다. 진정성이 덜할수록 눈에 당장 보이지 않는, 티가 나지 않는 영역에서는 대충 처리해버리는 경우가 허다 하다. 장인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 보면 엄청나게 정교한 아웃풋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 진정성을 갖고 살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몇의 영역에서는 진정성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https://www.longblack.co/note/1224?ticket=NT2442655dcee21da35f5330918a0f44ab8cd3
24시간 무료로 볼 수 있는 링크라고 하는데,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