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세환 Feb 03. 2022

[서평] MMT(현대화폐이론) 논쟁_Ft.기본소득 재원

코로나 19 시대,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경제부총리와 여당의 갈등


직장인들의 재택근무의 가치에 대해서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었을까?  '코로나19 시대'는 여러모로 급작스럽지만, 많은 것들을 새롭게 생각하게 만드는 시대 규정이다. '돈'을 매개로 하는 정부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도, 사고방식의 프로메테우스적 전환이 있다. 모든 국민들이 오늘날의 국가가 국민에게 보장해야 할 '생명과 재산의 보호 의무'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현실적인 계산을 하고 요구권을 행사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소상공인들에게 얼마만큼의 돈을 주는 것이 적당한가?'가 전 국민의 이슈가 되는 것은 아닌 밤중에 혁명과 같은 일이다. 기본소득이 지금처럼 보편적 의제로 관심을 받는 것도 '코로나 19 팬데믹'을 빼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여당의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줄곧 주장해 온 코로나 19 재난지원금의 보편적 지급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주도한 선별적 보상 중 과연 어떤 방식이 더 적절한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코로나 19 재난 극복을 위해  이른바 '헬리콥터 머니'를 정책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빗대어 찬반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보편적 재난지원금 지급에 맞서 선별적 보상을 고집해 온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중요한 근거는 대한민국의 '재정 안정성'이다. '전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재난지원금을 충분히 지급할 만큼 정부 재정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슨 돈으로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 혹은 100만 원씩 무조건 주겠다는 말이냐?'라고 따지는 것이다. 경제와 재정 운용에 '1도 모르면서'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 경제 관료로 뼈가 굵은 공무원이 훈계를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반대편에서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여당 정치인들도 대한민국의 '재정 안정성'을 근거로 한다.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을 보면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 혹은 100만 원씩 준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재정이 훨씬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만큼 좋은 상황인데, 그리고 국민이 코로나 19로 많이 고통받고 있는데 왜 이런 상황에서 국고 걱정을 하느냐?'라고 따진다.


결국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을 두고 '재정 안정성'이 프레임화 됐다. 대한민국 국민은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정부 곡간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 그런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근대 정치사상의 관점에서도, 헌법적 가치의 관점에서도 보다 본질적인 질문, 즉 도대체 정부와 정부 곡간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재정 흑자'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문제가 코로나 19 상황에서 더 중요하게 다루어질 법한 문제인데, '재정 안정성' 프레임이 생각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조세와 재정에 대한 새로운 접근




경북대학교 경제학과 나원준 교수를 비롯해 9명 저자의 글로 구성된 책 'MMT(현대화폐이론) 논쟁'은 생각의 전환을 가능케 한다. 'MMT 논쟁'은 조세 재정에 제한되지 않는 정부의 신용 창출(화폐 발행)이 가능하고, 또한 중요하다는 MMT(현대화폐이론)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공동 저자들의 글 모음이다. 경제와 재정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용을 쓰면서 이 책을 천천히 읽다 보니 'MMT'가 주장하는 핵심이 무엇인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각각의 결론이야 어떻든, '정말 재정이 문제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수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세 수입보다 더 많은 정부 지출로 정부 적자를 키우는 것은 문제'라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주장을 'MMT'를 주장하는 신진 경제학자들은 정면으로 반박한다. 경제학자들 간 내부의 이론적 논쟁을 최대한 제외하고 이 책의 논점을 대략 정리하자면,


1. 정부의 통치와 돈(재정) 문제는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전제하고, 통치가 우선인가? 재정이 우선인가?

2. 재정의 흑자 혹은 적자 문제가 정부 역할에서 중요한 문제인가? 역사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정부의 수립(정부의 주권 대행 행사)이 우선이고, 이에 따라서 재정을 가능케 하는 조세 강제가 가능하게 된 것 아닌가?

3. 한 발 더 나아가 정부가 조세보다 더 많은 지출, 곧 신용 창출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적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타당한가? '조세 수입'에 빗대어 적자/흑자를 논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에 빗대어 쓸모 있는 일인가? 그렇다면 조세의 역할은?

4. 정부의 지출 확대는 인플레이션, 이자율 상승 등 '구축 효과'라고 하는 문제를 정말 야기하는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은 무엇이고, MMT의 관점에서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가?

5. MMT는 정부 재정 정책과 국가 경제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와 같은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과 보완할 것들은 무엇인가? 등이다.


기본적으로 MMT는 정부의 재정 지출이 유효 승수 효과를 유발해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케인지언의 입장을 지지한다. 그리고 위 5개의 질문으로 된 정리는 순수하게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MMT 논쟁'을 읽고 이해하는 바의 거친 정리다. 책의 목차는 위와 같은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고, 각 저자들이 글에서 논점으로 제기하는 주제들은 나의 정리 방식보다 더 '학적'이다. 어찌 됐든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제기하는 '재정 건전성 프레임과 선별적 보상'을 먼저 이야기하고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MMT 논쟁이 현재의 상황에서 새로운 프레임과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MMT 논쟁과 보편적 기본소득 재원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은 당면한 현실적 문제가 됐다. 그리고 대체로 예상되던 바대로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을 위한 재원 확충 방안이 논쟁거리가 됐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보편적 기본소득 법제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 질문을 둘러싼 논쟁 자체가 보편적 기본소득 운동의 진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탄소세와 토지세 등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조세 제도의 개편이 의제화되는 것도 역사적 진보의 과정이다.


여기까지는 보편적 기본소득 운동을 조세와 연관 지었을 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들인데, 좀 더 현실적인 문제는 보편적 기본소득 논쟁의 관점에서 조세를 둘러싼 논의는 곧 '조세 저항'이라는 것이다. 요즘은 스스로 돈을 벌고 세금도 내는 나이에 도달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부동산보다) 소소하지만 (주식처럼) 자기 지갑에 담을 수 있는 생산수단의 소유를 추구한다. 따라서 임금에 의존해 살아가는 삶에 비해 자산을 자신이 소유하고 관리한다는 관점이 강한데, 그렇기 때문에 요즘 20~30대가 자산에 세금을 매기는 것에 대해서 이전의 20~30대 세대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기에, 보편적 기본소득 법제화를 위해서 '조세 개혁 모델'을 제시하고 조세 저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생각이 현명한가? 타당한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앞서 설명한 대로 'MMT 논쟁'은 정부의 재정 운용 정책에 있어서 조세가 무조건 선제적으로 확보되어야 할 필요조건인가? 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주 저자인 나원준 교수는 'MMT'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조세의 재정적 중요성을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같은 오랜 경력의 정치 관료와 경제학자들의 '조세 수입보다 더 많은 정부 지출로 정부 적자를 키우는 것은 문제'라는 시각이 가지는 문제점을 '재정 건전성' 프레임을 피해서 돌파할 수 있는 힌트가 'MMT'에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