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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Oct 27. 2022

4차산업혁명시대의 양자역학

'양자 얽힘'과 '중성미자'

21세기의 메타 과학, 양자역학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그의 책 [모든 순간의 물리학]_(썸앤파커스, 2016)에서 이론물리학 관점에서의 존재를 다음과 같은 멋진 말로 설명했습니다.


“우리 존재도 자연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물들과 똑같이 별가루로 만들어졌고, 고통 속에 있을 때나 웃을 때나 환희에 차 있을 때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존재할 뿐입니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진화론/창조론, 인간 중심 세계관/신 중심 세계관의 경계가 과학의 발전을 통해 무의미하게 됐다는 선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란 그릇에 담긴 생각이나 감정, 이야기까지도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138억 년 전 이 세계의 탄생 사건인 빅뱅을 통해서 존재하게 됐음을 인정하자는, 완곡하지만 주장하는 바가 명확한 선언입니다.


이론물리학자들이 이런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은 소크라테스 문답법도,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도, 칸트의 정언명령도 아닙니다. 바로 최첨단 우주망원경 제임스웹이 하는 일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제임스웹을 통해서 138억 년 전 우주의 탄생 사건인 빅뱅을 관찰하는 일을 합니다. 제임스웹이 저 우주 멀리 천체의 해상도 높은 사진을 보여주든 우주의 팽창을 관찰하든, 이론물리학자들과 천체물리학자들에게는 138억 년 전으로 추정되는 우주, 곧 이 세계 모든 것의 탄생 사건인 빅뱅을 관찰하는 일입니다. 실제로는 제임스웹 뿐만 아니라, 가장 작은 것을 보고자 하는 원자현미경,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강입자 가속 충돌기, 세계 곳곳에 있는 중성미자 관측소 등도 이용합니다.


카를로 로벨리의 말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보자면 138억 년 전 빅뱅이라는 사건 이후 최초의 입자들과 근본적인 힘들(강한핵력, 약한핵력, 전자기력, 중력)이 탄생했고, 그것이 곧 우주 전체입니다. 원자, 행성, 암흑, 먼지, 생명, 사람, 생각, 종교, 철학, 인생의 덧없음 등등 나열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빅뱅을 통해 존재하게 된 이 우주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들일뿐입니다.



순수 학문의 측면에서 이론물리학, 곧 양자역학은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학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국 서리대학교 이론물리학 교수인 짐 알칼릴리가 쓴 책의 제목은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_(윌북, 2022)입니다. 하버드의 천체물리학자 앨런 라이트먼의 책 제목은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_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_(아이콤마, 2022)입니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 [모든 순간의 물리학]도 양자역학, 곧 이론물리학을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존재론, 인식론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양자역학의 실용적 연구


하지만 소크라테스 문답법이 제임스웹과 많은 차이를 가지는 것처럼 이론물리학이 탐구하는 존재론과 인식론은 철학과 종교에 비해 매우 실증적이고 실용적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빛의 비밀을 밝히고자 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순진무구한 질문에 이끌려서, 또 이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두고 논쟁했던 솔베이 회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양자역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양자역학을 잘 모르지만 컴퓨터, GPS, 로켓, TV, 혹은 최신의 과학 뉴스 등을 통해서 양자역학을 간접 경험합니다. 이론물리학이 관련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이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양자역학의 매우 실용적인 측면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실제로 여러 나라들이 양자역학의 실용적 응용에 경쟁적으로 관여하고 있습니다. 2022년 노벨물리학상은 ‘양자 얽힘’을 실험으로 증명하고 이를 양자통신과 양자컴퓨터에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여한 물리학자들에게 수여됐습니다. 중성미자 연구 분야에는 1988년 이후에 총 4번에 걸쳐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됐는데, 유럽, 미국, 일본에 이어 현재는 중국, 인도 등까지 중성미자 연구에 정부 차원의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주로 땅 속 깊은 곳에) 거대한 지하 인공 호수인 중성미자 관측소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100명의 천체, 이론물리학자들이 정부를 대상으로 국내에 중성미자 관측소를 만들자는 요구를 전달했습니다. 양자 얽힘, 중성미자 연구에 비해서는 등장한 지 오래된 개념이지만 핵융합 발전도 세계 여러 나라가 정부 차원에서 경쟁하고 있는 양자역학 응용 분야입니다.


뉴스로 접할 일이 많지 않아서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양자역학의 실용적 측면은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나설 만큼 대체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분야에 관계됩니다. 바로 위 단락에서 언급한 분야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4차산업혁명의 중요한 핵심 이슈들이 양자역학과 관련됩니다.


양자의 중첩과 얽힘_양자통신 & 양자컴퓨터


[실재란 무엇인가 : 양자물리학의 의미를 밝히는 끝없는 여정]_(승산, 2022. 애덤 베커 저)은 ‘양자 얽힘’의 역사, 그와 관련된 논쟁사를 다룬 책입니다. 20세기 이론물리학의 유명한 사건인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거시 세계의 일반 원칙이 양자의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사후에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양자 얽힘 현상이 실험으로 증명됩니다. 양자 하나의 상태가 관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특정 값으로 결정이 되면, 과거에 그 양자와 상호작용을 했던 다른 양자의 상태(전하, 스핀 등 양자의 고윳값)도 그 즉시 결정됩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동시에 (당연하게도 빛의 속도를 초월해서) 결정됩니다. 이 책에 대한 좀 더 상세한 소개는 제가 이전에 브런치에 쓴 서평 [실재란 무엇인가_애덤 베커]에 있습니다.



이 책에서 애덤 베커는 솔베이 회의 이후 ‘양자 얽힘’ 연구에 관여한 많은 물리학자들이 각국 정부, 혹은 거대 IT 기업이 관여하는 프로젝트에서 일하고 있음을 종종 언급합니다. 전자의 전기 신호를 정보로 처리해 빠르게 주고받는 반도체 트랜지스터와 컴퓨터 네트워크에 양자의 중첩과 얽힘을 응용해 통제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비약적으로 빠른 양자컴퓨터와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구글이 기존 컴퓨터보다 양자컴퓨터가 정보처리 속도 면에서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관측자(이용자)가 정보를 필요로 할 때 암호 체계가 완성되기 때문에 결코 해킹당할 일 없는 양자 암호 통신도 가능합니다.


유령입자 중성미자_핵 군비경쟁


방사선으로 흔히 알려진 원자핵의 붕괴 현상 중 하나인 베타붕괴 과정에서 ‘중성미자’라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입자가 튀어나온다는 사실은 1956년 미국의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프레더릭 라이네스와 클라이드 코완이 실험을 통해서 최초로 검증했습니다. 중성미자 연구의 역사에 대해서는 서울시립대학교 물리학과의 박인규 교수가 쓴 책 [사라진 중성미자를 찾아서]_(계단, 2022)를 읽으면 비교적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성미자의 존재는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가 1930년에 처음으로 그 존재 가능성을 예측하면서 세간에 등장했습니다. 다른 기본입자(양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엄청 많이 존재(매초 1제곱미터의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 중성미자는 700조 개)하는데, 질량이 매우 적고 전기적으로 중성인지라 사람의 몸과 지구 등 거의 모든 것을 흔적 없이 관통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유령 취급을 받았습니다. 중성미자의 존재는 우리 육체를 포함해서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몸체가 대부분 물체가 통과할 수 있는 빈 공간이며, 손바닥에 올려놓은 연필과 책상에 올려놓은 책 등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꽉 막혀 있어서가 아니라 손과 연필, 책상과 책 사이의 전자기적 반발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웁니다. 그런데 중성미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전하값 0)인지라 전자기력과 반응하지 않고 질량도 0에 가까워 중력과도 쉽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몸을 끊임없이 관통하면서도 오랫동안 유령입자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라이네스와 코완을 비롯해 집요한 실험물리학자들이 중성미자를 관측하는 일을 해낸 이후, 부유한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땅 속 깊은 곳에 중성미자 관측소를 만들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중성미자가 발생하는 베타붕괴(혹은 베타붕괴의 역과정인 역베타붕괴)는 방사선 방출 방식의 일종인데, 잘 알려진 바대로 이는 핵분열(혹은 핵융합)을 의미합니다. 베타붕괴는 자연 상태에서 쉽게 관측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만 지구상에서 핵분열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은 핵발전소 혹은 핵폭발이 일어난 곳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우주에서 핵융합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은 태양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중성미자 관측소는 태양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용도 외에 다른 나라의 핵시설을 쉽게 포착해내는 수단이 됩니다. 오늘날의 중성미자 관측소는 중성미자가 발생한 방향을 추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베일에 감추어진 부분이 많은 중성미자 연구는 우주 암흑물질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고, 이론물리학과 우주물리학의 발전에 있어 앞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부유한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지하 깊은 곳에 물을 채우는 중성미자 관측소 건설에 나서는 것에는 분명 군사적 목적의 비중이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연구에 있어 기념비적인 해인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의 상관관계를 E=MC^2로 설명했습니다. 그 자체로 이론물리학이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 더 벗겨낸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만, 몇십 년 후 2차 세계대전에서 핵무기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에도 이 공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 많은 SF 영화에서 인류의 과학발전이 결국 인간을 공격하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런 직간접적인 경험과 교훈을 통해 과학에도 인류 보편의 신념이 필요하며 과학이 누구 손에 주어져 있는지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 사람들은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해하는 것이 있어야 가치 판단도 가능합니다. 소수의 과학자들과 관료 만이 오늘날 과학의 성과를 이해하고 그 성과를 어디에 쓸 것인지 독점적으로  결정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지식과 정보의 격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묵하는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된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운명은 그들이 결정하는 것이기에 오직 그들의 선의만을 기대하며 삶을 허비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보면 과학이 컴퓨터나 게임, 인간의 편의와 전쟁에 복무하는 시종 역할만 하는 것도 아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카를로 로벨리처럼 과학적 탐구를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깨달음의 대상이 절대적인 진리와 평화라면 그 도달 지점은 과학적 방법을 취하든, 철학적 방법을 취하든 동일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 깨달음이란 투명하고 어둡고 고요하고 차가운 우주 가운데 다른 모든 존재들과 조금의 다름도 없이 절대적 평등 상태로 존재하는 나 자신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희로애락도 끼어들 여지없는 절대적 안정 상태의 존재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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