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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는사람 May 09. 2022

내가 살면서 잘한 것들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데..


살다 보니 어느덧 40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80살까지 산다면 절반 정도를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나보다 더 오래 살아온 선배들이 이 글을 읽으면 부끄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쯤 나한테 한 번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20대 친구들이 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특별하기 위해 특별할 필요는 없다


어렸을 때부터 내 인생을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어 했다. 남들보다 좋은 대학을 가려고 했고 더 많은 부를 쌓아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특별하고 다르기 위해 고민하고 많은 시간을 쏟았다. 특별해지기 위해서는 특별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는 특별하지 않았다. 가진 능력이 특별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나름 특출 나 보였지만 나보다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과 내 간격은 좁힐 수 없다고 생각했고 특별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을 앞지르기 위해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특별하기 위해 선택한 특별함은 하루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특별함은 다이아몬드 같다. 좋은 다이아몬드는 갈고 또 갈아야 한다. 빛도 나지 않고 못난 원석을 미세하고 정밀하게 갈고닦아야 한다.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기술보다 인내가 더 필요한 작업이다. 그래야 좋은 다이아몬드가 된다. 하루의 번뜩임으로 특별한 기술을 도입한다고 해서 좋은 다이아몬드가 되지 않는다. 특별함은 좋은 기술이 아니라 인내와 꾸준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오늘 하루가 쌓이고 쌓이면 특별함이 된다. 특별한 하루의 번뜩임으로는 몇 년을 쌓은 성벽을 무너트릴 수 없다. 갈고닦다가 빛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면 결국 다이아몬드는 버려지게 된다. 특별한 하루의 선택은 결국 요행일 뿐이다. 혹시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운의 영역이고 나에게 그런 운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운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다소 늦었지만 이것을 알고 행동하면서 살아온 내가 자랑스럽다. 



행복은 즐거운 것보다 괴롭지 않은 것에 가깝다


즐거움은 무엇일까? 즐거움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즐겁다. 나도 즐겁기 위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누가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우리가 세상에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오히려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면 반대로 얻지 못할 괴로움도 함께 따라다닌다. 정반합처럼 거울의 반대편은 항상 존재한다. 문제는 행복을 즐거움으로 알고 얻으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은 괴롭지 않은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으면 괴롭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얻으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가?


불교의 가르침만 따르자면 행복은 속세를 떠나야만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서 자유로우면 된다. 얻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된다. 나는 그저 목표를 정하고 과정을 즐길 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이 당장은 괴롭기도 하지만 인생을 길게 보면 오히려 그것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주변에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원하는 대학 입학을 위해 4수를 했던 친구가 있었다. 4년 동안 괴로워했던 친구는 4년 동안의 경력을 살려서 지방에 학원을 차렸다. 지금은 지역에서 가장 큰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세상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영리하게 과정을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사업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나서 회사가 잘되는지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걸 원하는 고객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난 그들의 생각을 먼저 읽었을 뿐이고 그들을 대신해서 서비스를 제공한 것뿐이다. 


얻는 즐거움으로만 행복을 느낀다면 생각보다 그 행복이 오래가기 어렵다. 왜냐하면 얻고 나면 또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얻지 않아도 즐거울 수 있는 인생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았고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얻는 것이 더 많았다.  



남이 내 인생을 살아주지 않는다


조금 격하게 제목을 적었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남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남의 이야기에 내가 휘둘린다는 것이다. 친구라는 이유로, 상사라는 이유로 등등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한다. 게다가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멋지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럼 괜스레 내가 뒤쳐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뿐이다. 물론 좋은 이야기들도 있지만 내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그렇게 의미 없는 이야기들이다. 성공하라면 이불을 개라는데 이불 개지 않아도 성공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봐왔다. 이불을 개서 성공한 사람들은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을 뿐이다. 


한 배우가 108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자기 성질을 죽이기 위해서였다는데 몇 년을 그렇게 했다고 한다. 이후에 그걸 알려준 스님에게 몇 년 동안 108배를 한 것을 이야기했더니 스님이 이렇게 말했단다. "뭔가 좋으니까 했겠지". 108배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 배우는 마음이 동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해 온 것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본인이 얻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행동도, 습관도 내가 마음이 동해서 해야 한다. 좋은 말이라고 다 하려면 완벽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하다. 내가 살아온 인생과 가치관 등은 나만이 안다. 누구에게 피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나대로 열심히 살면 된다. 

내가 마음에 병이 처음 생긴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남들의 눈에 맞춰서 살려고 하다 보니 정작 내가 사라졌다. 이걸 고치는데만 몇 년이 걸렸는데, 고치고 나니 세상에서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내가 살면서 무엇을 가장 잘했냐고 물어보면 아마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한 번쯤은 내가 잘 살았다고 적어보고 싶었다. 아마 나보다 더 훌륭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지금 나에게 내 인생이 만족스럽다. 실패를 한 적도 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인생 절반도 살지 않은 시점에서 새롭고 즐거운 기회가 날 기다린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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