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재작년부터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시장의 트렌드였다. 페이스북은 메타버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사명까지 '메타'로 변경했다. 국내 주식 시장에서도 메타버스라는 키워드를 달면 주가가 치솟는 현상이 자주 벌어졌다. 서점에 가면 메타버스와 이와 연관된 NFT 서적이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각 분야에서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앞질러가는 현상이 코로나로 인해 증폭되면서 메타버스는 시장에서 더욱 인기를 얻는 키워드가 되었다. 그래서 콘텐츠 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메타버스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고, 오늘 적는 글은 내가 보고 느낀 점을 적은 것들이다.
메타버스는 사람들의 가상 세계 속에서 만들어진 유니버스(세계관)를 의미한다. 해당 세계관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세컨라이프 공간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세계관이 형성된 세컨라이프 공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바로 게임 공간이다. MMORPG 장르를 즐기는 유저들에게 와우, 리니지라는 가상공간은 메타버스에서 말하는 세컨라이프를 넘어서 현실 라이프보다 더욱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해당 게임들은 채팅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길드 또는 혈맹이라고 불리는 사회 공동체, 인게임을 넘어서 실제 화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MMORPG 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매개체인 게임들은 게임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캐릭터를 활용해 가상 K-POP 걸그룹을 만들어 음원을 출시하고 해당 음원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는 5억 회를 웃돈다(글로벌 K-POP 스타인 BTS fire가 7.2억 뷰이다). 포트나이트라는 게임의 온라인 콘서트는 45분 공연으로 220억 원을 벌어드렸다.
게임 이 외에도 특정한 주제를 갖춘 커뮤니티 또한 메타버스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커뮤니티는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면서 그것을 발전시키고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특정한 가치관까지 형성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가시적인 아바타가 없을 뿐 그들은 가상의 세계관에서 살아간다.
과거를 넘어서 현재까지도 온라인 상에서는 세컨라이프를 살아갈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실제 메타버스도 이러한 게임과 커뮤니티 등에서 사람들이 가상현실에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니즈를 읽고 탄생한 기술이고 세계관이다. 그래서 메타버스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확장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기존 유저들이 온라인에서 활동하던 세계관의 경험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려는 시도들만 보인다는 것이다.
"일상을 즐겁게 바꿉니다"
경험의 확장 측면에서 가장 와닿는 사례는 5G이다. 5G의 발전이 전 산업 분야에서 혁신을 이뤄내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5G는 새로운 기술이지만 스마트폰의 활용에 있어서는 특별한 변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LG유플러스의 "일상을 즐겁게 바꿉니다"라는 5G 광고 카피도 우리 일상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어서 만들었겠지만 실상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바는 없다. 오히려 스마트폰의 경험 확장 측면에서 보면 "삼성페이"가 더 와닿는 사례이다. 스마트폰이 지갑의 경험을 대체하는 하나의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폰을 쓰는 사람들이 애플로 바꾸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할 정도로 삼성페이가 주는 확장된 경험은 고객들을 락인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메타버스에게 삼성페이 같은 요소는 콘텐츠이다. 메타버스 자체가 경험의 확장을 제공해주는 서비스 아니다. 메타버스는 가상 세계라는 콘텐츠를 경험하기 위한 하나의 툴일 뿐이다. 콘텐츠 사업에서 핵심은 고객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감히 말하자면, 웹툰보다 메타버스가 고객들의 시간을 빼앗지 못한다.
그럼에도 메타버스는 콘텐츠보다 메타버스를 오픈하는 것 그 자체와 NFT를 붙일 수 있는지만을 고민해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메타버스 시장에서 가장 시장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게임 업계부터 기존 세계관의 확장이나 메타버스만을 위한 세계관 창조를 우선시하지 않고, 기존 콘텐츠에 NFT를 붙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실제로 게임 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메타버스라는 트렌드보다 NFT에 포커스가 맞춰져 프로젝트가 운영되는 현실이 아쉽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개발자들은 레디플레이원에서 보여줬던 가상 속의 세계관과 콘텐츠가 메타버스에 어울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Z세대들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Z세대들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친숙하니 메타버스는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Z세대가 기존 세대보다 온라인에 친숙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이라고 해서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외계 인류가 아니다. 그들은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본인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뿐이며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오프라인에 있다면 그곳으로 갈 것이다. 실례로, Z세대들이 온라인 쇼핑만을 할 것처럼 인식하지만 실제 Z세대들이 선호하는 쇼핑 형태는 오프라인이다. 오프라인 쇼핑이 주는 즐거움을 아직 온라인에서 모두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다. 다만, 오프라인에서 발견하고 온라인에서 결제할 뿐이다.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메타버스는 사람들이 들어가고 관심 갖고 싶은 가상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들은 세상에 없는 것들이 아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마블 유니버스가 있을 테고,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니버스가 있을 것이다. 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면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특정 커뮤니티들이 있을 것이다. 같은 목적을 갖춘 사람들이 모인 회사일 수도 있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동네 주민들도 세계관이 될 수 있다. 메타버스는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경험을 연결하고 확장해 나아가야 한다. 온, 오프라인 구분을 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메타버스가 오프라인을 품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세계관에 참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메타버스는 온라인상 세상을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업들보다, 세계관을 갖춘 기업들이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라고 생각한다. 디즈니가 웬만한 게임 회사보다 더 강력한 메타버스를 구축할 수 있다. 나이키도 그럴 수 있다. 레고가 그럴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근마켓이 '로컬'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강력한 메타버스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현재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경험을 어떻게 확장하냐에 따라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보다 몰입감 있는 가상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페이스북이 SNS를 만들기 위해 페이스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관계를 연결하다 보니 SNS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메타버스도 사람들을 가상 세계에서 연결하는 것을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길 가상 세계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메타버스를 만들기 위해 가상 세계를 만든다면 그 세계관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