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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Apr 21. 2023

자기 객관화

하마글방 수강생 카일라의 글

2016년 4월 어느 밤.

10:20pm.

타그닥 타그닥

                        타그닥                

                 타그닥        타그닥  

    타그닥. 


열심히 타자를 치는 소리. 말이 앞만 보고 질주를 하는 듯, 확신에 차 있는 손가락 걸음이다. 나는 앉아 있는 것도, 누워 있는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닥에 쭈구려서 노트북에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다. 경영학과에서도 다들 열심히 하고 수업 요구사항이 많기로 악명이 높았던 수업의 꽃, 팀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저 타자 소리. 수업 철회 기간도 끝났기 때문에 이젠 이판사판이다. 우리는 회의를 하기에는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도저히 맞지 않아서 카톡에서라도 보자며 10시 20분 카톡 회의를 감행했다. 아직 자취방에서 동거하고 있던 룸메는 돌아오지 않아서, 좁은 원룸에서 좀 더 대자로 뻗어 엎드려본다.


단톡에 읽음 표시들이 속속들이 사라지고 있다. 내가 말문을 먼저 텄다.

이상하게 아까부터 눈이 침침하다. 피곤해서 눈이 건조한가? 눈알에 기름칠을 안 해준 듯 뻑뻑한 기분이다. 글자가 잘 안 읽히네. 근데 뭐 어째, 지금부터 한 시간 정도 계속 자그마한 화면의 텍스트를 계속 봐야 하는데. 민폐 팀원이 안 되려면 참아야 해.


하지만 한참 회의가 진행되던 흐름을 나는 결코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상했던 예감은 현실이 됐다. 평소에 잘만 읽히던 카톡의 글씨들이 유독 그날 뿌옇게 흐려졌다. 입으로 밥을 떠먹여줘도 입술 양옆으로 밥알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글자들은 내 뇌에서 튕겨 나가고 있었다. 왜, 왜 이렇게 안 읽히는 거야. 압력밥솥이 쌀알들을 꾹 누르듯이 내 짜증은 정수리부터 내 온몸을 압박해 누르고 있었다. 민폐, 민폐.


다른 팀원들은 한참 대답을 하며 회의를 하는 동안, 나는 입을 꾹 닫고 ‘읽씹’을 하며 위의 대화들을 역으로 스크롤 하며 머리에 주워 담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앞선 대화 퍼즐이 끼워 맞춰지질 않으니 다음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글에 대화체로 회상하지 못할 정도로 그날 회의의 내용이 뿌연 안개 저 편으로 사라져버렸다.


민폐, 민폐.


객관적으로 봐도 팀원으로서 내 민폐력은 이미 80% 이상이었다. 동료들은 분명히 ‘쟤는 왜 읽고 대답도 안 해?’라며 속으로 짜증 내고 있겠지? 그렇지만 텍스트가 읽히지 않는 건 내 사정이고. 그걸 지금 열띤 토론 와중에 이야기하는 것은 핑계대기에 불과하다. 이럴 시간에 글자 하나라도 더 읽어서 저 대화에 숟가락 하나라도 더 얹어놓고 종료해야 해.


개 민폐.


한 마디 겨우 거들었다. ‘저 듣고는 있어요~아직 안 갔어요~’ 해명 수준에 가까운 코멘트였다. 나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대체 23살의 두뇌 회전에 문제가 없어야 할 내가 카톡 하나 제대로 못 읽고 앉아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노릇이었다. 결국 그 한 마디를 끝으로 내 민폐 어린 회의는 마무리가 됐다. 벙쪘다. 아무 기여를 안 하는 민폐 행동을 너무 싫어하는데, 그 짓을 오늘 내가 제대로 해버렸다.


와, 이건 무임승차까지는 아니어도 반임승차 정도는 되겠다.

카일라의 팀플 팀원 점수는 오늘 100점 만점에 30점이다.


나는 이날을 제대로 반성하고 나중에 팀원들에게 제대로 해명하고 사과하기 위해 다이어리에 크게 ’30’을 빨간 글씨로 적어뒀다. 그러나 이내 끓어오르는 내 화와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다이어리에 ‘병신’[1], ‘실패자’, ‘쓰레기 새끼’라고 난도질하듯이 낙서했다. 펜을 거의 칼과 같이 잡아서 결국 종이는 찢어졌다. 나는 다이어리를 수선하며 거의 반 울음으로 이 상황이 웃겨서 풍선에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1]     이 시기 (2016년)를 가장 속되고 솔직하게 쓰기 위해 실제로 썼던 표현을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표현임을 알고 있어 현재는 글과 말에서 사용하길 지양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나 진짜 병신 맞네, 여기서 테이프나 붙이고 앉았다…”


다음 날이었나, 내 증상을 검색해 보니, 그날 밤 잠시 난독증 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이면 그런 증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당시에 7개의 전공 수업, 모두 한 학기 내내 해야 했던 5개의 팀플, 2개의 동아리, 취업 준비, 그리고 대학원 알아보기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고 가족들에게 졸업에 대한 압박을 받는 중이었다.


근데 뭐 이따위 서사들은 주관적인 거고 다 내 사정이지. 타인은 내 사정에 관심이 없는 법이다. 그저 내가 민폐 끼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근데 내가 어제 그렇게 했다는 게 중요하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30점짜리 인간은 쓰레기 새끼 맞지. 난 자기 객관화 잘 하는 사람이라서 그건 내가 더 잘 안다.


***


2016년, 한 달 반 정도 뒤.

1:25pm


탁타다탁탁탁탁


서둘러 뛰어가는 모양새. 팀플이 모임이 1시였는데. 안과 일정이 생각보다 너무 늦게 끝났다. 내가 조장인데 이미 이전에도 이 팀플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는 티를 내지 않은 전과가 있다. 망했다. 진짜 너무 창피하고 기분이 좆같아서 그냥 학교가 싱크홀로 모두가 (다치지 않고) 귀가 처리됐으면 좋겠다. 이미 다른 팀원들은 살짝 짜증 나 있는 게 카톡에서도 눈에 띈다.


왜 유독 눈치가 보이냐면, 조장 언니는 조장이라는 이유로 이 팀플에서 가산점을 받기 때문이다. 고생을 조금 더 한다나 뭐라나. 취지는 좋다. 보통 조장은 “조장하실 분?” 다섯 마디에 팀플의 희생양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점은 이 교수의 나이주의적 사고다. 이 사람이 내가 나이가 젤 많은 왕 언니라는 이유로 나의 과목에 대한 애절함이나 기여 예상도를 전혀 생각하지 않으시고 그냥 조장으로 넣으셨다. 나는 애초에 이 과목을 버릴 예정이었는데! 젠장! 졸지에 조장 버프를 타고 이득은 챙겨 먹으면서 팀플은 프리라이딩하는 ‘개 민폐’ 팀원이 되게 생겼다.


예상대로, 팀원들의 표정은 어둡다. ‘와, 이제야 오네. 양심…’이라는 얼굴로 나를 마중 나온다. 할 말이 없다. 그래, 개인 일정으로 30분씩 늦는 조장이 얼마나 뻔뻔해 보일까. 특히 나보다 한 살 어린, 이 팀플에 가장 열심히 기여하고 있는 팀원의 표정을 열심히 살피게 됐다. 나는 어떻게든 내 사과하는 맘을 진심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우선은 내가 까먹은 시간을 어떻게든 회의로 메우고 나서.


오늘 팀플에서 내 객관적인 점수는 거의 15점에 가까웠다. 이건 어떻게든 30점으로라도 올려야 했다. 다른 팀원들은 모르겠지만 그 열심히 하는 팀원에게만큼은 왠지 이미지 쇄신을 하고 싶었다. 그 친구의 성실함을 내가 빨아먹고 있다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 것일까?


실은 변명을 하면 애초에 그 과목을 버릴 예정이었고, 병원 일정이 내 탓이 아니었다고 줄줄이 읊을 수 있겠지만, 누누이 이야기하잖아. 난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내 사정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 내가 해오는 결과가 쓰레기면 나는 쓰레기야. 그게 객관적인 fact지.


회의가 끝나고 공강 시간에 삼각 김밥을 살뜰하게 벗기며 계단에 잉여롭게 앉아있었다. 지금은 5월 중순 즈음. 학기의 이 시점 즈음 되니까 그냥 모든 것이 허탈했다. 이게 다 마무리되면 마지막 학기 앞두고 휴학해버릴까? 잡생각이 먹구름처럼 내 지친 눈동자 안에 둥둥 떠다녔다.


아까의 오류를 만회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차피 나는 아까 과목을 버리기로 했는데, 내가 왜 조장을 하고 있어야 하지? 그 조장 자리를 포기하면, 내가 정말 진심으로 이익만 취하는 이기적인 언니 새끼가 아니란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나는 부채감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조장감으로 딱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카일라 “OO 님 안녕하세요. 아까 제가 너무 늦게 와서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제가 긴히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서 단톡에 동의를 구하기 전에 갠톡을 드려봐요. 아무래도 저는 취업과 졸업을 준비 중이고, 다른 전공들이 더 우선순위다 보니 제가 조장 혜택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보다는 OO 님께서 조장을 하셔서 이 팀플을 마무리해 주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단톡에서도 동의를 구하고 교수님께 조정을 요청드려도 될까요?”
팀원 A  “카일라 님 안녕하세요, 앗 네! 연락 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사실 이 과목이 주전공이라 좀 공들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저야 정말 좋죠. 단톡에 이야기를 해주셔도 될 것 같아요!”


예상대로 내가 조장 자리를 넘겨주면서 그의 태도는 매우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나보다 더 심한 프리라이더에 대해 개인 톡으로 내게 토로하기도 하고 살짝 더 친분을 쌓기도 했다. 약간의 벽이 허물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묵은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었다. 옳은 일을 해냈어. 내가 봐도 이번 나의 일은 쉽지 않았지만 정의로운 선택이었어.


우리는 바뀐 조장 덕에 팀플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었다. 나는 발표까지 맡았고 까다로운 질의응답 시간을 나름 내 강점이었던 임기응변 능력으로 유연하게 대처했다.


내가 듣기로 그 친구는 A+를 받았다. 나는 C+을 받았다. 재수강을 하지는 않았다.


***


취업 준비는 대실패로 돌아갔다.

한 회사가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내 실수로 면접을 가지 않게 됐다. 애초에 취업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졸업 후 어떻게 될지 너무 불안했으니까 취업 준비라도 해본 것이지. 그래서 딱히 최종 합격을 안 한 게 아쉽지는 않았다. 내가 덤벙댄 게 너무 분할뿐이었다. 그날 나는 술을 퍼먹으며 “나는 쓰레기야!!! 쓰레기라고! 누가 봐도 쓰레기!!” 연신 외치며 벽에 머리를 쾅쾅 박으며 엉엉 울었고, 다이어리는 또 빨간 글씨로 난도질당했다. 쓰레기, 쓰레기.


어떻게 얼렁뚱땅 마무리를 짓거나, 마무리를 못 짓고 울면서 도망치거나. 6월 중순 정도 되었을 때 어쨌든 내 손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데는 성공했다. 지쳐서 떨어진 눈물자국만 가득.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나는 뭘 위해 이렇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난 이때 몇 점짜리 인간이었을까. 아마 내 스스로 만족도 기준으로는 60점 정도 되었으려나?


근데 왜 이렇게 점수를 매기느냐고? 객관적이잖아. 나는 쓰인 사람의 손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가공된, 치졸하게 주관적인 역사들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나는 자기 미화를 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겸손하고 싶지도 않다. 재수 없는 잘난 부분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남들은 최대한 숨기려고 하는 부끄러운 흠을 그냥 다 벗겨버려서 드러내는 객관적인 사람. 그래서 내 점수는 60점이다.


너무 객관적이다. 그리고 40점이 모자라다.


그래서 여전히 쓰레기다.


그것 또한 객관적이다. 주관적인 게 아니다.


***


현재, 2023년.


한때 블로그에 ‘우울증 언박싱’이라는 이름으로 내 우울증을 톺아보는 글을 연재했을 때, 난 2016년 상반기를 ‘번아웃’ 시기라고 정의하고 써 내려갔었다. 바뀐 내용은 없다. 난독증도 그대로 있었고, 민폐의 역사와 자기 객관화의 역사 또한 그대로다. 그 당시에 나는 우울증의 씨앗은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부터 키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8년 초, 우울증 중증이라 판정받았다.


그러나 현시점의 나는 이 시기를 재구성한다. 이 시기도 나는 필시 우울증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초부터 나를 향해 쓰던 그 빨간 욕설들을 나는 이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것은 어떠한 절규였으며, 나의 아픔을 알아달라는 비명이었다.


더 현명해지고 더 앎이 많아진 2023년의 재구성은 객관적일까? 그럴지도. 아니면 아닐지도.


자기 객관화가 가능할까? 자기 주관화는, 가능할까?


질문에 대해 오늘의 답을 작성하며, 나는 또다시 타자를 친다.


타그닥 타그닥

                        타그닥                

                 타그닥        타그닥  

    타그닥. 

탁.


작가 카일라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사진을 애정한다.

사진은 머릿속과 반대로 진공 상태를 지향한다.

글은 사진과는 또 반대로 조금씩 알맹이를 채우는 중.

고양이와 청록색 하늘, 바다, 꼬질한 애착인형을 사랑한다.

kylakimji@gmail.com

IG : kyla_in_some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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