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미상 Jan 20. 2023

애를 쓰는 사람

이름, 나이, 주소, 가족, 친구, 성별이 없는 명함

   중학교에는 교과의 특성을 살려 자유롭게 수업하는  '주제 선택수업이 있다. 1학기와 달리 수업 시수가 조금 적었기에 주제 선택 수업을 맡았다. 호기롭게 ‘철학을 가르치겠어!’ 외쳤지만 굵직한 철학서를 겨우 '읽어'내기만  내가 아이들에게 직접 철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함을 배우라 칸트의 말을 떠올리면, 철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겨우 철학자의 철학을 요약하는 일이 아니지만, 허겁지겁 철학 내용을 요약하기 바빴다.


   중학교 1학년에게 고등학생들도 어려워하는 철학 ‘내용 가르친다는 것은 말도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철학의 본질도 아닐 . 늦었지만 수업의 방향을 바꿨다. 나의 삶을 탐구하는 것으로 말이다. 철학이 모든 것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나의 삶에서 ‘자아 찾아가는 것도 결국 철학이 아닐까 하고.


   그런데, 도무지 24살인 나도 자아정체성을 찾았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어렵다. 그렇다고 자아정체성이 나이를 먹으면 그냥 얻어지는 주름도 아닐 텐데. 이미 고민하긴 늦었고 무엇이든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래, 나도 잘 모르지만, 우리 같이 자아를 찾아보자..’


   아이들에게 자아를 찾기 위해 ‘자아 로드맵 만들어 보자고 했다. 길을 잃으면, 로드맵을 키는 것처럼 우리도 자아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자아 로드맵을 읽어보자고 했다. 머리를 싸매서 여러 갈래로 테마를 정했다.  번째 테마는 명함을 만드는 것이었다.  명함을 만들 때는 조건이 있다.


명함에는 절대 이름, 나이, 주소, 가족, 친구, 성별을 나타내지 않을 것.


   종종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망망대해에서 혼자 떠도는 기분이 들고, 나를 표현하는 일상적인 것들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객관적으로 나를 표현해 주는 것들이 이따금 낯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비로소 그때, 벌거벗은 나를 만나게 되는 듯하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하며 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이름도, 나이도, 주소도, 가족도, 친구도, 성별도 없는 명함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교사의 예시는 어떤 자료보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예시이므로 나도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생각해 봤다.  이름을 지우고, 나이를 지우고, 주소와 배경들을 지우니 남는  없었다. 그리고 이내 어떤 표현이 나를 스쳤다.


‘애를 쓰는 사람’


   읽는 사람에 따라  애를 쓴다는 표현이 미련이 가득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성실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애를 쓴다 표현은 지난날의 고생한 나를 위로해 주는 표현이었다. 크고 작은 삶의 난관 앞에서  애를 쓰기 바빴던  자신을 말이다. 좋지 않은 학군에서 대학교에 입학했던 것도, 교사가 되기까지의 순간도. 교사가  지금도. 나는 대체로 애를 쓰며 살아왔다.


   아이들도 저마다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듯했다.


‘미안해'가 습관인 사람.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는  다짐한다.


‘부족한 교사인 나는 철학을 알려줄 순 없지만, 그래도 밀린 숙제가 산더미 같은 너희들에게 조금이나마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줄 수 있어. 그렇게 스스로와 대화하다 보면, 언젠가 너희도 나도 스스로를 찾게 되겠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