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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미상 Mar 17. 2024

흔들리며 살아야지

옅은 테두리를 간직한 채로

‘나는 그냥 지금은 흔들리면서 살고 싶어.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요즘 자주 지인들에게 최근에 느낀 이 깨달음에 대해 말하곤 했다. 불교에서 돈오를 하는 느낌이 꼭 이런 것일까. 올초에 내 머리를 단번에 스친 깨달음이었다. 단번에 스친 깨달음치고는 자주 내게 머물렀다.

* 돈오 :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번에 깨달음을 일컫는 불교의 용어.


   성향과 기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외부 환경 탓인지 (때로는 덕분이기도 했다만) 안정적인 것들을 선호하며 살아왔다. 아니, 선호로는 부족하고 맹목적으로 안정적인 것을 추구했다.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한 일자리를 구했고, 아직은 먼 미래임에도 미래를 지나치게 걱정해서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다지려고 과하게 노력을 들이기도 했다. 조금은 즐겨도 될 시기라고 다들 말씀해 주셨는데도 말이다.


   아마 어렸을 적부터 넉넉하지 않았던 생활과, 일찍 어머니를 먼저 먼 곳에 보내드려야 했던 것, 아버지의 기복이 있던 양육 방식 등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 안정적인 것들이 좋은 것이라 믿으며 커왔던 것 같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알아서 척척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겠다 싶은 길들만 쫓아 걸어 다녔다.


   애정하는 어른께서는 내게 현재만 생각하고,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종종 말씀해 주셨다. 그 말씀들을 이제야 소화해내고 있는지 요즘 부쩍 자주 감정 따라 흔들려도 괜찮다고, 아니 흔들리며 살아야 하는 거라고 되뇐다. 원래 같으면 흔들리는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얼른 단단하게 뿌리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텐데, 이제는 그냥 흔들리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굳게 뿌리내리는 것이 최선이라 믿으며 살아왔던 나로서는 정말 큰 변화라 스스로도 지금이 어색하다.


   흔들리며 살겠다는 것은 내 마음 따라, 감정 따라 살아가겠다는 의미다. 물론 내 기분 따라 남에게 싫은 티를 팍팍 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앞으로 내게 어떤 상황이 닥쳐도 오롯이 내 감정에 주목하겠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것들만 쫓던 게 습관이 되어 늘 가던 곳만, 늘 먹던 것들만 자주 선택했지만 앞으로는  순간의 기분과 마음 따라, 잘 몰라서 헤매야 하는 어색한 길들도 걸어가 보겠다는 다짐이다. 늘 먼 미래를 위해 지금의 감정을 억제하고 순간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게 더 익숙했던 나와 멀어진다는 거다.


   지인들은 내가 자기 객관화를 잘한다고 자주 말해주셨다. 스스로도 그런 모습이 좋았는지, 나와 친해지려고 자주 일기를 썼고, 나와 친해지기 위해 취향도 세심하게 살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것들이 점선이 아니라 실선이 되어 삶의 테두리를 단단하게 만든 느낌이다. 당시에는 빳빳하고 곧게 뿌리내린 테두리 속에서의 삶이 참 포근하고 좋아서, 나의 영역이 그토록 소중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왠지 이 테두리가 좀 옅어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컨대 옅은 테두리의 삶은 자주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 것 같다. 때로는 돌이킬 수도 없는 흔적들이 삶에 진하게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글을 쓰는 요즘의 나는 이 테두리 바깥이 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많이 궁금하다. 그러니 ‘나는 이래야만 한다’는 생각은 묻어두고 현재의 내가 느끼는 감정과, 마음과, 취향과, 생각을 따라 흔들리며 살고 싶다.


   당장 내일 지금 써놓은 이 글을 보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냥 그것도 나다. 흔들리는 나인 거다. 물론 언젠가 기어코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겠지만 (그곳은 가정이 될 수도 있고, 어딘가에 진득하게 소속된 새로운 직장이 될 수도, 내 삶에 단단히 베인 굳어진 관념들일 수도 있겠다.) 그 뿌리가 너무 단단해서 현재의 마음들을, 감정들을 외면하고 살지는 않았으면 한다.


   가수 아이유의 노래를 자주 즐겨 듣는데, 지금 내가 떠올린 생각들과 조금 많이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홀씨라는 노래인데, 앨범 문구가 참 인상적이다.

세상 모두가 꽃이 될 이유도, 꽃이 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30대의 나는 하늘에 홀홀히 나부끼는 홀씨로 살고자 한다. 지치지 않는 쇼핑객처럼 목적이 없이 휘적휘적 구경하고 떠돌며, 내 세상 곳곳에 진열된 다양한 선택지들을 카트에 넣고 싶다.

   

    아마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며 살고 싶다고, 그게 더 나은 삶인 것 같다고 말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홀씨처럼 자주 흔들리며 많은 곳을 누비며 그렇게 어색한 곳을 떠돌며 살고 싶다. 좀 더 욕심을 내면 그곳에서 어색해서 떨리는 긴장감을 즐겼으면 하고, 잔상이 오래 남는 기억을 얻고 오면 더 바랄 게 없겠고.


   자기 생각을 말할 때조차도 - 인 것 같다고 말끝을 흐리는 사람들을 보며 바보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적어도 나의 일에는 단단하게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하지만 그런 삶도 있는 거며, 때로는 그런 삶이 다양한 색으로 채워진 그림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색깔은 좀 옅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자주 흔들리며 살기로, 그러기 위해 내 마음들에 주목해 보자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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