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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미상 Mar 05. 2023

오직 나만 알고 있는 행복

비록 작고, 별것 없고, 때로는 너무 당연한 것들에 대하여.

   24, 드디어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월급을 받은 순간 정말 뭉클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힘든 과거들은 지나치게 미화될 정도로 벅찼다. 많이 미뤘지만, 가장 고마운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가, 예전부터 눈여겨본 지갑을 구매했다. 직장인이 되면 지갑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누가 말해주기도 했고.     


   벌벌 떨면서 지갑 하나를 구매했다. 명품 지갑은 처음이었다. 아니, 명품이 처음이었다. 택배가 도착한다는 알림이 오자마자, 칼퇴를 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택배를 개봉했다. 말로만 듣던 명품을 드디어 사다니. 카드를   놓고, 주민등록증도 넣어본다. 그리고 이내 마음이 식었다. 분명 지갑은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예뻤는데, 지갑이 주는 행복은 10초도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딘가 고장이 났을까. 나 왜 지금 행복하지 않은 걸까. 다들 명품을 갖고 싶어서 안달인데.’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어색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다. 한창 블로그에 이웃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슨 챌린지 때문에 다들 일요일만 되면 부랴부랴 글을 올렸다.  덕에, 조용하게 혼자 글을 썼던 나의 블로그도 조금씩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읽어주는 글에는   신경을 쓰게 되니까. 마치 이웃들의 글들에 답장을 쓰듯이 나도 행복한 순간들을 차근차근 기록했다. 그동안 나의 글들은 대부분 글뿐이었지만 이웃들이 보는 나의 글에는 사진들이 빼곡했다.      


   문득 내가  글들을 보는데, 나의 일상들이 꾸며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없었다. 그리고  하던 타인과의 비교도 하기 시작했다. ‘ 나는  재밌게 살지 못하지?’ ‘  멋진 모습을 올리지 않았을까하고 말이다. 조금씩 글을 쓰는  부담스럽고, 싫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나의 글들에서  이상 나를 찾을  없기 때문이었다. 이내 생각했다. 지금 내가 올렸던 글들에서 숱하게 썼던 ‘나의 행복이라는 단어가 과연 진정성이 있나 하고.      


    글들을 읽어보니, 나는  특별한 일들이 있을 때만 글을 썼다. 도자기를 만들었을 , 별을 보러 갔을 , 누가 나에게 이벤트를 해주었을 ,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을 . 콘서트를 갔을 , 전시회에 갔을 .  년에   찾아올까 말까 하는 그런 날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본다. 일상에서 내가 무심코 지나친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 바꿔 말하면 눈치 보느라 블로그에 올리지 않았지만, 행복했던 순간들 말이다.


   직장에 가기 ,  정리된 이부자리를 보고 나올 ,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일을  ,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권을  발견할 , 평점이 낮아서 시청하길 주저했지만, 결국은 평점 5점을 누르게 되는 영화를 만났을 , 지친 몸을 이끌고 샤워한  립밤과 로션을 바르고 따뜻한 무드등 밑에서 책을 읽을 . 비좁은 주차장에서  하나의 자리가 남았을 , 이웃 가게 강아지가 나를 보며 달려와  , 너무 고단하고 지루한 날이지만 날씨만큼은 기가 막히게 화창할 .


   사실 이럴  나는 타인과 비교할  없는 나만의 행복을 느끼게 된다. 너무 당연하고, 작은 일이라 어디 적기에는 조금 민망해도, 오직 온전하게 내가 느끼는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이런 행복들은 오직 나만 알고 있는 행복이기에, 타인과의 비교에서도 자유롭다. 그래서 더욱 나다운 행복이기도 하고. 물론 특별한 날이 찾아올 때도  좋지만 타인의 시선에도,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는 오직 '' 알고 있는 행복이 있을  그런 날들이  반갑게 느껴지는 듯하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좀처럼 특별한 일들이 찾아와도 감흥이 없는 시들시들한 내가 될지도 모르겠다. 벌써 지금도 특별한 일들에  감흥을  느낄 때도 있으니까. 명품 지갑을 사고도 마음이 빨리 식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삶에 은근하게 베인 나만 아는 행복들을 떠올리고 싶다. 그럴 때면,  어제와 비교해도 차이가 없는  오늘들이 충만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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