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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미상 Apr 13. 2023

그럼에도 여전히 이 일이 좋은 이유

이제 막 학교가 익숙해진 교사의 이야기

   작년에 처음으로 중학교에 왔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1학년 학생들은 마치 초등학교 7학년 같아서 수업을   참여도가 정말 높았다. (고등학교를 잠깐 경험한 나로서는,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그래서 작년에는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 교사하길 잘했지!’ 마음속으로 외치곤 했다. 올해는  학생들이 그대로 올라온 2학년을 가르치고 있다. 이미 아이들 성향도 대부분 파악한 터라, 올해는 수업이 훨씬 수월하겠거니 짐작했다. 나를 비웃듯, 예상은 깔끔하게 빗나갔다.


   올해는 그렇게 활발하던 학생들이 수업종만 치면, 도무지 입을 떼지 않았고 모둠 활동을 한다고 하면 한숨소리부터 들려왔다. 낯선 아이들의 모습을  때마다, 견디기가 힘들었다. 수업은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인데 아이들이 비협조적인 모습에, 혼자 백날 떠들어봤자  수업이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다. 수업이 끝나고 터덜터덜 교무실로 가는 내내 떠나지 않는 물음들이 나를 괴롭혔다.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 걸까.’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부끄럽지만, 쉬는 시간마다 포털 사이트를 켜서 검색했다.

'교사 휴직’ ‘교사 퇴직금’ ‘교사 그만두면..’

   휴직은 나에게 해당되는 것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퇴직금은, 이제  학교에 들어와서 얼마 되지도 않았다. 교사를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찾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그들과 달리 나는 그저 학교를 벗어나고 싶은 것이 목표였으니 말이다. 이내 검색을 그만두고  다음 차시 수업 준비를 했다. 역시 나에게는 이곳밖에 없다며 말이다. 쓰고 보니, 한심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간절하게도 수업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역시 이곳에서 수업을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있어서 다행임을 느낀다. 해답은 시간에 있었다. 아이들이 수업에서 비협조적이었던 이유는,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어른인 나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공간에 있으면 어색함을 느끼는데  학기에는 아이들도 그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제야, 나의 섣부른 판단이 아이들에게는 부담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저들끼리 친하겠지 생각하며 모둠 활동을 진행했던 것이,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려고 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너희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하고 말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금세 친해졌고, 수업은 다시 활력을 찾았다.


   아직 거창한 수업 철학은 없지만, 도덕 과목 특성상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때가 많기 때문에 수업에서 자유로운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서 아이들의 무해한 웃음을 종종 본다.  웃음이 좋아 학교에 남아있는 듯하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내가 이곳에 있게끔 만드는 듯하다.


   그러니 결국  일을 미워하게 되는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고,  일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도 아이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교는  아이들이 바뀌니,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을 보며  비슷한 생각과 마음들이 생겨날  같다. (벌써 두렵다.) 그럴 때면 수업에서 종종 보이는 아이들의 무해한 웃음들을, 마음들을 기억해 뒀다가 힘든 순간에 꺼내어 떠올려야겠다. 그렇게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 앞에  있는 내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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