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미상 May 15. 2023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보답

   스승의 날이다. 아직 스스로를 스승으로 호칭하기에는 너무 민망하다. (과연 앞으로도 그렇게 불릴 수나 있을지!) 오늘은 내가 만난 가장 소중한 인연이자, 고마운 스승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곳에서 쓰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 주신 분이 바로 이곳에서 작가로도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 창밖을 내다보면서 생각했다.

'학교 참 지긋지긋하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신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좀 더 수업에 집중했을 뿐, 늘 마음 한편에는 학교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단축 수업이라도 하면, 그날은 정말 기분 좋게 누구보다 빨리 집에 갔다.

 

   교우관계는 원만한 편이었다. 반장도 했고 (사범대에 가려면 반장이 스펙이 된다기에 했다.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종종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들도 흥미로웠다. 그래도 학교는 여전히 가기 싫은 곳이었다. 특히  학기에는 학교에 가는 것이 더더욱 힘들었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께 나를 오픈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지원 때문에 오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만났던 선생님들은  인품이 좋으셨고, 이것과 관련해서 곤란함을 느낀 적도 별로 없다. 하지만 워낙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이고 내색하기를 어려워하는 나에게 학교와, 교사, 친구들은 모두  어려운 존재였다. 그러니 학교 가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그래서 자주 지각도 했다. 학교에 가기 싫었는지, 종종 아침에 인형 뽑기를 하고 들어갈 정도였으니까.


   이제야 눈물을 흘리지 않고 이야기할  있지만, 중학생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나의 삶은 달성해야  퀘스트가 넘치는 게임처럼 느껴졌다. 얼른 경제적으로 독립해야겠다는 퀘스트, 그래서 집에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퀘스트, 그러려면 어쨌든 빨리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퀘스트 .  퀘스트를 달성하려면 빨리 어른처럼 생각하고, 책임지고, 걱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러니, 학교는 내게 가장 빨리 탈출하고 싶은 곳이었다. 우정이니, 꿈이니 그런 것들 말고 나에게는 얼른 어른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  해결이 되는  알고.


   그리고 그토록 학교를 싫어했던 나는,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어 학교를 벗어나길 원했던 나는, 지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어떤 책에서  문구처럼, 인생은 이따금 이런 식으로  삶에 장난을 걸어왔다. 대부분은 그런 장난들에, 세상이  내게만 모질다며 울어왔는데  장난만큼은 나에게 찾아와 주어서  고마운 요즘이다. 대체로 인생은 불행에 가깝다고 느끼며 길을 걸었다. 그리고  길에서 나는 선생님을 만났다.


   최근에 선생님께서는 학창 시절에 나를 대하기가 어려웠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이 지나서야 고백하셨다.) 상처 많은 나무를 만지는  조심스럽다며 말이다. 학교에서  한순간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설프게 가면을  모습을 선생님은 보신 모양이다. 학교에서 남들보다   많이 웃고 밝게 지내왔는데, 선생님은 그래서 더더욱 내가  걱정되셨다고 했다. 나는  웃고만 있었으니까.


   내가 어렵다고 하셨던 선생님은, 그럼에도  번이고 나를 어루만져주셨다.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직장인이 되어서도  번이고  안부를 물으셨고, 축하해 주셨으며, 슬퍼해주셨다.  노력들이 가닿았는지, 이제는 나도 학생들에게 다가가 사랑을   있을 만큼 마음이 부드러워진 듯하다.


   어느  선생님은 어디서 받았다며,  삶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며  잎클로버를 주셨다. 수능 때는 스스로도 별로 응원하지 않았던 나의 꿈을, 응원한다며 문구가 각인된 샤프를 주셨다. 육아 휴직으로 학교에 계시지도 않았던 선생님은 나의 졸업식에 가장 근사한 꽃다발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선물들에는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선생님의 마음이, 진심이 있었다.


   교사가 되고 나서 깨달았다. 제자가 스승을 위해   있는 가장  보답은 풍선이 많이 달린 화려한 이벤트도, 비싼 선물도, 사회적 성공도 모두 아니라는 것을. 그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보답이라는 것을.


   그런 선생님께 스승의 날을 핑계 삼아,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정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니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마음을 전한다.  역시 진심으로.



   진아선생님. 저는 정말  살고 있어요. (가장  아실 테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년이 지났던 겨울, 겨우 몸만  저에게  지난한 삶을 살피고 손을 건네주셨던 선생님. 선생님이 주셨던 관심을, 사랑을 이제는 제가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전해주려고 노력해요.  마음이 너무 커서 차마 완벽하게 따라   없지만, 그래도  사랑이 조금은 닮아있는 듯해요.


   아이들을 가르칠  제게서 선생님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감사하고 벅찹니다. 저에게 따뜻한 스승이 되어주셔서, 어른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제가 만나게  귀한 아이들에게, 선생님께 받았던 사랑을 돌려줄 거예요. 종종 아이들이 제게 고맙다며 귀한 마음들을 전해요. 그럴  저는 잊지 않고 선생님을 떠올리며 생각해요. '나도 이런 사랑을 받아봤기에 너희에게 돌려주는 거야'    


   선생님께 스승의 날에, 깜짝 이벤트를 해드렸던 . 선생님께서 교사는 학생들을 짝사랑하는 위치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같아요. 제자인 저도 선생님을 진득하게 사랑하고, 응원하니까요. 그러니 진심으로, 선생님의 삶도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바라요.  


   선생님 성격에 공개 편지가 부끄러우실  같은데요. 종종 학교에서 아이들이 미워질 때마다, 그래서  검색창에 교사 퇴직금을 검색할 때마다,  글을 꺼내보며  초심을 잡으려고  글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온마음 다해 진심으로  글이에요. 제가 선생님께 받은 가장  가르침은 거짓 없는 마음들이었으니까요.


늘 나의 행복 뒤에는 선생님이 계셨다.
그리고 나는 작년에 선생님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그럼에도 여전히 이 일이 좋은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