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계속된 실패를 딛은 또 한번의 용기
2015년 12월,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역. 평소에는 잘 신지 않는 하이힐을 신어 걸음걸이가 엉망이었다. 부산으로 내려갈 버스를 제시간에 타기위해선 발걸음을 재촉해야했다. 어렵게 낸 연차로 하루당일치기로 온 서울이었다. 얼어붙을 듯한 서울의 추위가 매서워지는 즈음이었다. 눈물이 날 거 같았지만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엄마의 전화가 오면 무너질게 뻔했지만 지금 여기서 울고 싶지 않았다.
그날은 내가 세 번째로 에미레이트항공 학원대행 승무원 면접에서 떨어진 날이었다.
나는 사실 인생에서 뭔가 하고 싶은 것이 간절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이 없다라는 것은 꿈이 없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 같아서 끊임없이 하고싶은 것을 찾았던 것 같다.
첫 직장을 관두고 하고 싶었던 건 영어권 국가로의 유학이었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을거라 생각했던 패기 넘쳤던 각오와는 달리 나는 여전히 물음표를 달고 와야했다.
그리고 영국 어학연수를 다녀오며 20대 후반에 들어서게 된 나는 하고 싶은 일 보다는 할수 있는일, 해야하는 일을 찾아서 하루 빨리 일을 시작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을 때 처음 생각난 게 승무원이었다. 공항에서 일한 경력과 영어와 일본어 3개국어를 할 수 있는 점이 플러스 점수가 될 거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살며 느꼈던 경험으로 나는 외국에서 일하며 살고 싶었기 때문에 외항사 승무원이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단순하고도, 간단한 이유로 나는 외항사 승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하고 싶다라기 보단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가 더 맞겠다. 그래서 나는 굉장히 교만하게도 내가 빨리 외항사 승무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오산이었다.
승준생으로서의 삶은 생각보다 고달팠고 생각보다 길었다. 국내 항공사와는 달리 공채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항상 부정기적인 면접에 대비해서 준비돼 있어야 했고, 그렇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일을 하면 면접 참여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했다. 자연히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면접 일정이 뜨면 그 면접을 보러가는 비정규직으로서의 삶을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학원대행이라는 벽을 학원생이 아니면 넘을 수 가 없는데 그 학원비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지방 승준생들에게 더 가혹한 것은 면접이 대부분 서울에서 보는거였는데 차비도 차비였고, 체력적으로도 너무 지치는 일정이었다.
처음 사무직으로 일하며 퇴근 후에는 밤까지 모여서 열심히 스터디하며 에미레이트 국내채용 면접을 준비하고, 휴가를 몽땅 반납하며 서울까지 면접을 보러갔지만 보기좋게 1차에서 탈락,
2차는 붙겠지라고 생각해서 이번에도 주말 반납하며 면접 보러 올라갔지만 2차에서도 탈락,
그리고 마지막 희망을 건 3차채용에서까지 탈락하며 학원대행 면접 탈락 트리플 달성.
정작 에미레이트에서 온 현지 면접관들은 얼굴조차 보지도 못한채, 면접관의 질문 두어개 받고 5분도 안되서 탈락하고 면접장을 나온다는 것은 내게 크나큰 자괴감을 안겨주었다. 물론 나의 역량부족도 있었겠지만 이 학원대행 면접은 특히나 학원생을 우대해주는 것이 너무 눈에 보이듯 뻔했다.
그리고 나는 이악물며 결심했다. 학원의 힘에 기대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내보이겠다고.
그렇게 나는 영어학원 강사를 하며 어렵게 모은 돈을 가지고 스물아홉살, 내 인생에 있어서 많은 것을 건 배팅을 하게 된다.
그게 바로 2016년 겨울, 혼자 떠난 유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