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오픈데이, 말그대로 열린 날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 에미레이트를 비롯한 카타르, 에티하드 등 중동항공사들은 전 세계 각지에서 하루 또는 이틀정도 채용면접을 열었다. 누구나 CV라는 영문 이력서만 있으면 참여가능하고 1차 통과 후 살아남은 소수만 2차,3차 그리고 파이널을 볼수 있는 토너먼트 제도식 면접형식이다. 무엇보다 학원 대행이 아닌 다이렉트로 면접관과 만날 수 있는 점이 오픈데이 제도의 장점이었다.
내가 유럽오픈데이를 가기로 선택한 이유는 유럽이 상대적으로 동남아보다 경쟁률이 낮았고(그랬기 때문에 한국인 합격률이 높았다), 내가 영국유학을 통해 경험한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언뜻 보면 한달 배낭여행과도 같아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목적이 여행이 아닌 면접이었다.
한달 안에 면접이 열리는 도시들을 전부 조사해 놓고, 만약 이 도시에서 합격하지 못하면 바로 다음 면접도시로 이동하는, 기약없이 상황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무모한 일정이었다. 정해진건 왕복 티켓과 첫 도시의 숙박예약. 한달안에 파이널 까지 끝내야하는 퀘스트만이 존재하고, 필요한 것은 강한 체력과 멘탈.
그렇게 나는 첫 목적지,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로 가기위해 인천-아부다비-베를린-비엔나 총 3번의 환승을 하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비행내내 속이 안좋아서 게워내고, 거의 컨디션 제로의 상태로 겨우 도착한 아부다비 공항.
첫 중동의 느낌은 역시 히잡을 쓰고 있는 인포메이션 직원, 아라빅으로 쓰여진 맥도날드에서 디르함으로 결제된 콜라, 역시 부자나라라 그런가 공항부터도 크고 화려한 느낌이었다.UAE에서도 두바이보다는 아랍느낌이 훨씬 살아있는 아부다비라 그런가, 어쨌든 내겐 모든게 신기했다.
아부다비에서 베를린, 그리고 드디어 비엔나에 도착했다. 이미 체력은 바닥이었지만 드디어 내가 유럽으로 면접을 보러왔다는 사실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비엔나가 첫 목적지였던 이유는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가 가깝기 때문이었다. 첫 비엔나는 내게 너무 매력적인 도시였지만,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면접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수 없었다.
그렇게 짧은 여행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한시간 남짓 달려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다.
20키로짜리 무거운 짐을 들고 낑낑대며 구글을 물어물어 작고 작은 호텔에 도착했다. 지도에서는 분명 역에서 15분이라고 했는데 짐이 있어서 그런가 1시간은 훨씬 헤맸던 것 같다.
짐을 풀고 잠시 나간 브라티슬라바는 옆동네 비엔나의 화려함에 비하면 소박한 건물양식, 너무나 조용한 거리들이 내 첫인상이었다. 사실 이곳은 면접이 아니면 와보지도 않았을 도시였다. 하지만 내겐 오픈데이 첫 도시가 아닌가, 이곳은 어떻게든 나에게 기억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한국에서 면접전날엔 꼭 먹으려 가져온 햇반을 뜨거운 물에 데웠다. 따뜻한 한국의 맛이 지구반대편에서까지 나를 든든하게 했다.
다음날,새벽부터 일어나 화장하고, 빨간색 자켓과 검정색H라인 치마를 입고 머리를 올렸다.
그리고 긴장을 풀 미소연습까지 준비완료!
쿵쾅쿵쾅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나는 면접장이 열리는 호텔에 도착했다.
50명 남짓이 모인 면접장은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의 참석에 놀랐고, 아무리 짙게 화장해도 따라갈수 없는 동유럽 여자들의 이목구비에 두 번째로 놀랐다. 거울을 보자 내 화장은 거의 민낯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리고 대망의 첫 cv드롭은 짧았지만 강렬했다.
긴장으로 경직된 내 입꼬리는 무심하게 덜덜 떨렸고 나는 지금껏 준비한대로 면접관에게 인사하며 스몰톡을 나눴다. 여기에 왜 왔고 졸업은 언제 했느냐는 굉장히 간단한 질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너무 떨었던 나머지 연습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면접관과 1대1로 대면하고 cv를 제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cv드롭이 끝나고 2-3시간정도 대기가 이어졌고, 긴장감을 풀기위해 근처 카페에서 라떼를 마시며 나를 다독였다.
오랜 기다림 끝, 벽면에 붙은 명단에서 내이름을 한참 찾아보았지만 결국 찾을수 없었다.
결과는 CV드롭 탈락,
일말의 기대가 없지는 않았었지만, 내게는 충분히 의미 있었던 첫 면접이었다.
그날 면접관이었던 아나가 한 말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Today, you might come here today as followed your innervoice, although you failed this time, don't give up. Please try next time and we'll meet someday as a cabin crew.
오늘 너가 니 마음의 소리를 따라 이곳에 왔다면,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마. 다음번에 꼭 도전해서 언젠가 캐빈크루로 만나.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겪어내며 힘이 되었고,
4년이 지나 승무원이 된 내게도 여전히 힘이되는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