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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Jan 30. 2023

누군가에겐 장난으로 던진 돌이겠지만

-정신적 학폭이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에 대하여

요즘 학폭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화제다.

차마 눈뜨고 보기힘든 끔찍한 학폭이 실제 이야기였다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파서 몇번이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한사람의 인생을 망치는것은 물론 그 영혼까지 산산조각 나게 만드는 그 잔인한 행위들에 대해 가해자들은 처벌은 커녕 호화롭게 잘먹고 잘사는 부조리한 현실까지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었다.


학교폭력.표면적으로는 신체적인 폭력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안에는 정신적, 심리적인 폭력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사실 폭력이라는 말은 우리사회에서 굉장히 광범위하다. 선후배사이의 서열을 가리며 소위 '잡는'군기, 국적과 피부색으로 인한 인종차별,  성별로 인한 남녀차별, 연인이란 이름으로 가해지는 데이트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고 어느 단체 집단에서나 생기기 쉬운 이 '폭력'이라는 개념은 특히나 가치판단이 뚜렷히 성립되지 않은 과도기의 청소년들에게는 누구나 쉽게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수 있는 일이라 ‘학교폭력'이라는 단어가 따로 생기지 않았나 싶다.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나에게는 다소 치부와 같은 어둡고 개인적인 경험이다. 이 무거운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는 나처럼 남에게 쉽게 말할 수 없었던,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이들에게 나 역시 그랬고, 우리 그누구의 잘못때문이 아니었다고, 그 말못할 상처들을 위로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중학교 시절은 약육강식, 정글의 세계였다.  돌이켜보면 겨우 열넷, 열다섯의 어린애들일 뿐이였다. 하지만 그 나이부터 신체적인 변화를 겪고, 키와 덩치차이가 생기며 뚜렷히 서열이라는 것이 성립되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하필 나는 그 당시 반에서 가장 키가 작았고, 몸무게까지 왜소한 그야말로 서열상 가장 낮은 부류였다. 그 당시 교복은 3년은 입어야 한다며 크게 맞추는 게 당연했고, 커다른 교복은 작고 왜소한 나를 한층 더 작아보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나는 그 어떠한 '신체적' 학폭을 당한적은 없다. 하지만 내게는 그 어떤 폭력보다 두렵고 괴로웠던 '정신적, 심리적' 학폭에 시달렸다. 중학교 1학년때 우리반 반장이 그 괴롭힘의 주자였다.


집이 꽤나 잘 사는 부류라고 들었다. 누가봐도 귀티나는 얼굴이었고, 집에서도 공주님처럼 커온게 눈에 보였다. 초등학교 때는 이미 부회장을 했었고, 항상 주목을 받는 스타일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집도 잘사는 소위 엄친딸.그래서 그런지 따르는 친구들도 많았다. 나와는 친분은 없었지만 그리 나쁘게 지낸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첫번째 중간고사를 치르고 난후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나는 그당시 나름 착실한 모범생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첫 중간고사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둘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괴롭힘의 이유가 될줄이야. 그당시 전산으로 성적이 나오면 칠판에 점수가 모두 공개되는 시스템이었는데 그걸 가장 먼저 확인할수 있는건 반장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게 아마 한문시험이었던거 같다. 서예학원을 초등학교 때부터 오래다니면서 한자를 익혀서 그런지 한자는 100점이었다.  반장은 반 아이들이 다 듣도록 ‘쟤는 또 왜 100점이냐고! ‘라면서 소리를 지르는게 아닌가. 아마 그떄부터 나는 눈엣가시였던듯 싶었다.


첫번째 사건은 체육실기시험이었다. 나는 작은 체구에 체력도 저질이라 체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나 구기종목은 그중에서도 젬병이었다. 모두들 A를 받으면 나는 겨우 B를 받을 정도로 체육은 항상 낙제였다. 짖궂은 남자애들이 내게 야유를 던지기도 하고 놀림을 받자 어린나이에 서러웠던지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구석에서 울고 있자 나를 딱하게 여긴 선생님이 다시 재시험을 보게 해줬다. 형평성에 어긋나는건 사실이었다. 그러자 그것에 불만을 가진 반장과 다른 무리들이 우르르 나에게 와서 따지기 시작했다. 울어서 동정심받아서 점수 받으니 좋냐, 정정당당하게 점수 안받고 비겁하다, 등등 그당시 다수에게 둘러쌓여 그런 상처받는 말들을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체육선생님에게 재시험을 요구한적이 없었다. 눈물로 동정심을 자극해 재시험을 치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다. 그 체육선생님에게 낼 화를 왜 내가 받고 있어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채 그 질타를 받아내며 나는 뭐라 제대로 반박도 못한채 당하기만 했던 것 같다. 지옥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사건은, 나와 친했던 친구조차 이간질해서 나와 싸우게 만든 일이었다.

항상 함께 도시락을 먹는 친구가 갑자기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함께한 무리들 역시 나를 따돌리는게 느껴졌다. 이유도 모른채 혼자 남겨져 점심을 먹고 싶지 않아 다른 무리의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으며 대체 무슨일인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그얘기가 와전되어 내가 그 친구를 욕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쉬는시간에 그 친구를 비롯한 반장무리와 소위 노는무리인 우리 반 일진들 무리까지 모조리 나를 찾아왔다. 위협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듯 했다.


사실 이건 명백히 그친구와의 오해로 인한 일대일 싸움이었다. 이유없이 갑작스런 따돌림을 당한건 나였고, 나는 그들의 욕을 한적도, 피해를 입힌적도 없었다. 무지한 다수의 선동은 그래서 무서운 거였다. 이걸 기회삼아 반장은 그 친구와 다른 무리들을 부추겼을 게 뻔했다. 가장 소름끼쳤던 사실은 본인은 절대 그 싸움에 나서지 않는거였다. 뒤에서 사람을 조종하며 나를 괴롭히는 그 악랄한 방식에 나는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 본인손에는 절대 피를 안묻히겠다는 그 치밀함은 도저히 중학생의 생각이라고는 생각이 들지않을 정도였다.


도대체 그애에게 내욕을 어떻게 한건지 모르겠지만, 이미 세뇌되어 있는듯이 내가 만만하냐며 나에게 온갖 욕을 퍼붓고 그 싸움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애들까지 돌아가면서 한명씩 나에게 욕을 퍼붓는 그 상황을 내가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르겠다. 너무나 억울한 상황에 결국 눈물이 터졌고 울고 있는 나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폭언을 퍼붓는 그들은 그 순간 인간이 아니었다. 그냥 자신보다 약한 타인을 어떻게든 짓밟으려 안달이 난 악마들이었다.


아무리 반박 해도, 오해라고 단둘이 얘기하자고 해도 들을 생각조차 하지않자 어느순간부터 아마 포기했던듯 싶다. 어차피 얘네는 내가 무슨말을 하더라도 나를 타겟으로 삼고 어떻게든 괴롭히려고 했을테니.

나는 아직도 내가 복도를 지나가는데 우르르 무리지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내욕을 하는 그 경멸스런 눈빛들을 잊지 못한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하나를 완벽히 짓밟을 수 있을까. 겨우 열네살짜리들의 무리들이었다. 나는 그들 역시 전부 학폭의 가해자들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반장은 괴롭힘의 타겟을 돌아가면서 정한다는 거였다. 그게 아마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가장 단짝처럼 지내던 친구를 타겟으로 삼은걸 목격한 때였는데, 온갖 불쌍한 척을 다하면서 일진의 동정심을 사더니 결국 그 일진은 그 단짝 친구의 뺨을 때리기까지 했다.


이렇듯 누구라도 그 반장의 타겟이 될수 있었고, 그래서 더더욱 반장의 눈치를 보면서 아부하는 무리들이 늘어났다. 그야말로 1학년 1반은 그녀의 왕국이었다. 그 당시 초임이었던 총각 담임선생님 역시 그녀를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그녀는 겉으로는 착실한 반장의 역할을 해내며 뒤로는 반아이들을 휘어잡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여자 ‘엄석대’가 따로없었다.


그렇게 끔찍한 일을 겪고 나는 점점 학교가기를 기피하기 시작했고, 걱정이 된 엄마는 무슨일이냐며 나를 다그쳤다. 그리고 급기야 화가 나 담임선생님을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경험없는 담임선생님은 반 학생들을 상대로 1:1 상담을 하며 내 이름을 어렴풋이 언급했던거 같다. 당연히 나는 이 모든걸 일러바친 고자질쟁이로 낙인찍혀 내내 눈치를 보며 순탄하지 못한 학교생활을 해야했다.


그때부터 나는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는 나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일기에 쓰기 시작했다. 일기장은 나의 구원이었고, 힘든 나의 마음을 온전히 위로했던건 내 노란색 일기장이었다.




그후 아주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나는 건너건너 그녀의 소식을 듣게되었다. 잘사는 집이라 일치감찌 중학교 3학년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거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후 명문대학 의대를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몇년전엔 결혼까지 해서 아주 잘먹고 잘 산다는 얘기까지.

과연 그녀는 자신의 중학교 1학년때 저지른 학폭에 대해 인지라도 하고 있을까? 아니, 그녀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살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남들의 목숨을 살리는 의사가 되서 떳떳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중학교 1학년 때의 그 끔찍했던 악몽이 떠오르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진다. 분명 신체적으로 폭력을 당한 사건은 없었다. 하지만 다수에게 둘러쌓여 폭언과 욕설을 들어야 했던 정신적인 학대는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그당시 내게 학교는 정말 지옥과 같았고, 늘 누군가에게 타겟이 되면 어떡하나 불안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위축되어 싫은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게 되었다. 다수에게 미움받느니 입을 다물고 내가 참으면 그만이었다. 그시절 내 가장 큰 바램은 제발 튀지않고 무난하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하루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는 거였다. 지금도 늘 남의눈치를 보게 된건 사춘기였던 그때의 일이 내 성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일 것이다.


하물며 이런 지속적인 육체적,정신적 괴롭힘 때문에 우울증을 호소하고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까지 한 피해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을까.


하지만 괴롭힘을 가한 가해자들은 생각보다 그 사실에 대해 관대하다. 어릴때의 치기어린 잠깐의 실수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피해자들은 평생 그 끔찍한 학폭의 트라우마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럼 도대체 그들의 상처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는걸까. 학폭 관련 법에 사과와 원만한 합의란이 있는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못했다. 애초에 학폭이란 사안을 친구들의 다툼정도로 생각하는 사고부터 잘못되었다. 다툼이 아닌 일방적인 학대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는 범죄행위이다.

또한 다 지나간 치기어린 어릴적의 실수라는 말은 있어서는 안된다. 유치원 애기들도 친구를 때리면 나쁘다는것 정도는 안다. 잘못된 행동을 했을때 벌을 받는것 또한 집단생활을 하며 배우는 기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약자를 괴롭히는 폭력은 잘못된 것이며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한다. 이 기본적인 전제조차 실행되고 있지 않는 학폭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보다 실질적으로 학폭 처벌을 위한 법안이 만들어져야 하며,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보호와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어느집단에서든 생길수 있는 이 폭력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걸 안다. 하지만 기억했으면 한다.본인이 생각없이 던진 돌에 누군가의 영혼이 산산조각나며 평생의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살수도 있다는 것을.


 끔찍한 신체적 폭력으로 인해 남겨진 여주인공의 상처는 학폭의 아픈 기억이 있는 이들 모두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약한건 결코 죄가 아니다.  누구에게도 약하다는 사실이 괴롭힘을 당할 이유가 될수는 없다. 나역시 어릴적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부당함에 침묵하지 고 있는 힘껏 소리내고, 힘닫는한 위로 하려 한다. 꺼내기 쉽지않은 개인적 경험을 용기내서 쓰는 것도  때문이다.


이번에 드라마인 미디어를 통해 많은 이들이 학폭의 현실에 대해 자각 했듯이, 작은 시도일지라도 끊임없이 말하고, 쓰고, 알려야한다. 약자들의 연대는 결코 약하지 않다. 들풀이 비록 연약하지만 끈질기게 살아 남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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