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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May 22. 2022

00:25,한밤중에 공항으로 출근하기

-부산으로 가는 첫 솔로비행

   드디어 첫 달 비행 로스터가 나왔다.

로스터란 승무원 비행 스케줄을 말하는데 매달 말일 회사에서 정해주는 스케줄대로 비행지가 정해지고, 보통 한국인 승무원들에게는 한국비행이 많이 주어지게 된다. 나의 첫 비행 목적지는 다름 아닌 나의 고향인 부산! 그 당시 우리 회사는 인천, 부산, 제주 3곳에 취항을 해 있었고 비행으로 부산에 가면 기장의 허가 아래 인바운드 비행(다시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는 비행) 전까지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24시간 체류이니 정말 눈 깜짝할 시간이지만 그렇게라도 한국, 그것도 고향인 부산에 다녀올 수 있는 건 너무나 설레는 일이었다.      


부산비행의 출발시간은 새벽 2시. 승무원들은 1시간 반 전 출근전 브리핑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12시즈음에는 본사에 도착해야 한다. 밤 비행으로 꼬박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에 낮에 잠을 자야했지만 첫 비행이라는 기대와 불안감이 동시에 들어 잠을 이루지 못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출근시간보다 훨씬 더 이른 시간에 본사에 도착했다. 다행히 그날의 비행은 한국인 선배들이 두명이 함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지가 되었다. 잔뜩 굳어있는 나에게 너무 걱정말라며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는 선배의 한마디가 그렇게 큰 힘이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 사무장은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으로 유명했고 내가 첫 비행이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괴롭힐 좋은 구실이었던 것 같다. 보통 3개월에 한번 받아야 하는 평가의 대상을 다른 시니어 크루들이 아닌 나를 지목했고 나를 어떻게든 꼬투리 잡으려는 눈빛이 역력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제대로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이것도 첫 신고식이라면 꽤나 빡센 신고식이었다. 하지만 늘 내게 호의적인 좋은 사람들만 있을 수가 없고, 이곳은 직장이고 제대로이곳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브리핑을 마치고 공항으로 비행기를 타러가는 내내 빨간 유니폼을 입고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는 내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크루들과 선배들의 뒤를 총총 따라가는데 괜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늘 지나가던 승객용 출국심사장이 아닌 cabin crew Only라는 출국심사장을 지나 크루들이 타는 교통수단을 타고 게이트까지 이동하는 내내 어리둥절하면서도 설렘이 가득했다. 예전에는 같은 유니폼을 입고 게이트를 지나가는 승무원들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보일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승무원이 되어있다니, 잉여인력이 아닌 정식 크루로 솔로비행이라니!


비행기에 도착하자마자 기내에서 안전장치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포지션과 인터폰 체크, 그리고 승객의 탑승을 돕고 이륙준비를 마친 후 내 포지션의 점프싯에 앉았다. SNY 수피비행에서는 비행기의 가장끝인 갤리 맨 뒤 자리에 앉아야 했는데 정식으로 내 포지션의 승무원 자리에 앉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륙 후,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서비스가 시작된다. 포지션이 주어지는 솔로비행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배우는 입장이라 비행기에 타서도 선배들이 하는 것들을 보며 몸에 익히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질것이기에..! 카트를 어떻게 정리하는지, 서비스는 어떤식의 흐름으로 진행되는지 파악하고 최대한 빨리 익히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기내방송은 집에서도 녹음을 하며 열심히 연습했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고 싶었는데, 나의 방송은 누가 들어도 처음 방송하는 사람의 목소리..


게다가 랜딩 후 떨리는 목소리로 방송을 이어나가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너무 공항에 빨리 도착한 바람에 랜딩을 알리는 기장의 방송에 묻혀 나의 방송은 뚝 끊켜버리고 말았고,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결국 비행이 끝난 후 브리핑에서 사무장에게 마지막 랜딩방송 누가했냐고 물어보자 쭈뼛쭈뼛 손을 드는데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무사히 내 듀티를 마무리했고 치명적인 실수 없이 비행을 마친 것에 대해 뿌듯한 느낌 역시 들었다. 이제 나의 일, 루틴이 될 비행의 첫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는 법, 이곳은 긍정적인 사람이 살아남기에 훨씬 유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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