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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Mar 02. 2023

2. 소셜워크, 사회복지를 공부하기로 하다

10년간 쌓아온 서비스직 커리어 내려놓기

 유학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어떤것을 공부하러 갈것이냐, 였는데 이건 내 커리어를 바꾸는 중요한 시점에서 굉장히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마냥 영어만 공부하러 갔던 영국 어학연수와는 다르게 전문직을 위해 학위를 따서 커리어를 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서비스직에 몸을 담은지가 10년이 넘어있었다. 공항직원부터 시작해 카페, 홀서버,승무원, 그리고 통역CS까지 내 커리어에서 서비스직을 빼고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중 승무원으로 일한 경력으로 서비스직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은 듯 했다


사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그 이름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보장해주는 평판이 좋은 직업이었다. 게다가 워낙 오랫동안 바라고 준비했던 직업이라 그 커리어를 내려놓고 새로운 직업을 선택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유학을 결정할 즈음, 때마침 많은 항공사들이 다시 채용을 재개하는 시점이었고, 많은 동기들이 다시 승무원으로 비행을 시작하는 모습들을 보며 적잖이 마음이 흔들린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내 경력을 살려서 다시 비행을 시작하는 편이 내게 훨씬 편한 길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어린나이가 아니었고, 이제는 10년이후의 나를 생각해야했다. 내가 설사 다시 비행을 시작한다고 해도 10년 이후의 내가 여전히 비행을 하고 있을까? 그게 아니아면 나는 그 이후에 무슨 일을 해야할까 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 꿈은 승무원이었지만, 그 일이 내게 평생직업은 아니라는건 알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코로나와 같은 예상치 못한 일들로 생계가 위협받는 직업이 아닌 일을 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덜 힘든 일을 하고 싶어졌다.


승무원으로 일했던 시절, 서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다리가 매번 부어 압박스타킹을 신고 잠을 자야했고, 내 몸만한 카트를 끌고 승객들의 캐리어를 올려주느라 손목과 무릎은 이미 약해져있었다. 무엇보다도 매번 낮밤이 바뀌는 비행시간때문에 몸의 바이오리듬이 완전히 깨져있었다. 그래서 좀더 규칙적인 삶, 몸을 덜쓰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의 인생에 정말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돌이켜보면 어렸을적, 역사 선생님으로 민주화 운동, 전교조 등에 몸을 담은 아빠를 통해 정의, 인권,소수,약자에 대한 개념을 빨리 접할 수 있었다.

또한 교회에서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독거노인, 아이들을 돕는 여러가지 봉사 활동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약자을 돕는 일과 그 편견들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졌던것 같다.

특히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두고 봉사활동으로 지원한 방학교실 교사는 2개월동안 진짜 선생님이 되어 저소득 지역 맞벌이 가정의 중학생 아이들을 케어하는 포지션이었다. 수업과 야외 액티비티를 진행하고 가정상담까지 담당해야 하는 꽤나 인텐시브한 봉사활동 경험이었는데 한참지나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에 선생님 감사했어요-라는 문구에 마음이 따뜻해졌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신없이 서비스직으로 취업후 사회복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돕는 삶이 가치있다는 확신은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다.


소셜워크, 즉 사회복지는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한국에서는 평가절하되고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사회복지를 공부하겠다고 지인들에게 얘기했을때 돌아오는 반응들 중 가장 일반적인 반응은 사회복지사 그거 돈안되는 직업 아니야? 였다. 나역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주변에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친구들이 돈보다도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거 같아서 대단해 보였다.


현실적인 이유부터 들자면, 호주에서 소셜워크 분야는 지금 현재 가장 인력이 필요한 직군중 하나였고 호주 소셜워커의 평균연봉은 확실히 한국 사회복지사들과 달리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영주권까지도 고려했을때 내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기에  더욱 마음이 갔던것도사실이다. 게다가 아동, 노인, 이민자, 장애인, 멘탈헬스, 가정폭력상담, 약물중독케어 등등 워낙 방대한 분야이기 때문에 취업이 유리하며 어떤 분야를 전문으로 알하게 될지는 공부하면서 차차 정해야 한다고 했다. 병원, 학교, 커뮤니티센터 ,NGO, 공공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할수 있으며 특히 졸업 전 실습을 통해 자신에게 어떤분야가 맞는지 파악하고 취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한 영주권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 이외에 내가 소셜워크를 선택한 이유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였다.

나는 승무원 시절부터 심리상담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쉼이 없었던 타이트한 비행 스케줄로 인한 피로, 부당함에 침묵해야 했던 인간관계에 지쳐 번아웃으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들 동안 유투브나 책을 통해 심리상담에 관한 정보들을 얻었다. 심리상담센터나 정신과를 가기엔 그 문턱이 내겐 아직 높았었고 어떻게든 대안을 찾아보려고 고군분투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 한명이라도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매일같이 이유도 모른채 눈물이 나고, 수시로 수면장애에 시달릴때도 버틸수 있었던건 내 얘기를 들어주는 동기들과 친구들,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전문적인 심리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았었더라면 조금 더 빨리 회복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공감해주는것만로도 위로가 되지만, 분명 전문적인 상담은 조금 더 나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하고 해결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은 심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만이 할수있는 직업이라고 알고있었는데 소셜워크를 공부하고 경력을 쌓으며 충분히 카운셀러로서도 일할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한다.


누군가의 인생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약자를 돕는 일은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며 무게를 지우는 말들도 여러번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약자를 돕는 일은 그들의 인생에도, 나의 인생에도 분명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실현시키는 일을 최대한 오래 하고 싶어졌다.

남들이 선택한다고 해서, 영주권에 유리하다고 해서 간호나 요리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가치관에 맞는 일을 해야만 설사 졸업, 취업 그리고 영주권 까지의 레이스가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여전히 나는 이 소셜워크에 대해 초심자일뿐이고 아직까지 여전히 갈길이 먼 대학원생 1학년일 뿐이다. 이 분야가 어떤것인지, 나에게 정말 맞을지는 좀더 공부해 봐야 알수 있겠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공부는 나를 보다 깊게 알아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누군가의 인생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싶다.

쉽지않을 어려운 길이란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발걸음을 힘껏 내딛기로 했다. 이 마음을 잊지 않게 남긴 이 글이 앞으로의 여정에 힘을 실어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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