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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윤소 May 19. 2020

건 작가의 논픽션 드라마  
불통 모자(不通母子) 3화

-코로나 이산가족 D-88일째, 창문 넘어 도망친 반백 살 한국아줌마

3화 코로나 이산가족 D-88일째,

창문 넘어 도망친 반백 살 한국 아줌마?     



지난 2월 26일, 미카엘이 출국하던 날이 생각난다.

큰아들 라파엘은 졸업작품 때문에 개강일보다 

몇 주 일정을 앞당겨 출국한 덕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미카엘은 하루라도 더 데리고 있다가 보내려는 엄마 욕심에

3월 어학원 개강 일정에 맞춰 항공권을 예약해 놨던 탓에 

하마터면 입국조차 하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코로나19 초기부터 대만에서 외국인 입국을 막았던 때문이다.      

국내 모든 항공사들은 모두 3월 말까지 대만 운항을 중단했고 

예약 항공권 역시 모두 취소됐다.


이제 막 중국어 말문이 트였는데 대만에 가지 못해 어학원 3개월을 날려버린다면 

9월 대학 입학에 곤란을 겪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 된 거다.

이번에 못 들어가면 거류증도 없는 외국인은 

아예 입국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관계자 말에 

부랴부랴 대만 국적기 티켓을 수소문했다. 

다행히 다음날 티켓을 구할 수 있었지만 한국 입국자는 입국하자마자 자가격리 14일이란다.     

어학공부도 중요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말이 14일이지 기숙사 독방에서 생전 처음 오롯이 혼자 지낼 미카엘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미카엘은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게 

인터넷 되니까 휴대폰과 노트북만 있으면 상관없단다.




             어학원에 도착해 격리기간 동안 지낼 방을 배정받음  평상시에는 4 인 1실인 방을 혼자 사용함

다음날 미카엘은 대만으로 떠났고, 역시나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선생님들의 안내에 따라 기숙사 독방으로 들어갔다. 

잘 도착했다는 문자와 함께 독방으로 들어가는 사진을 받고 보니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매일 남편과 함께 전화와 문자로 막내아들 라파엘을 안심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니...

엄마인 나는 그때 열아홉 살 미카엘이 분명히 괜찮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도 남았지만 대학 입학이 걸린 문제라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역시 많이 힘들었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더 쓰리고 아팠다.   





              자가격리 기간 중 주의사항 안내문과 체온기록지 및  개인사용물품들

자가격리 정확히 15일째 되는 날 아침에 미카엘은 격리에서 해제됐고 형 라파엘과 대만 친구들이랑 축하파티 겸 같이 밥 먹으러 간다고 신이 난 미카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데...

어쩌면 집과 가족이 그리워도 참고 견디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라파엘 미카엘 두 아들 녀석일 거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너무도 미안하고 안쓰럽고 부끄러워진다. 

어느새 몸도 마음도 부쩍 커버린 두 아들 녀석이 대견하기도 하고 이제는 엄마의 품을 완전히 벗어났구나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부쩍 예닐곱 살 때 아들들 꿈을 자주 꾼다. 꿈속에서 유치원생 어린 아들은 언제나 내게 달려와 내 품에 꼭 안긴다.





자가격리를 위반할 경우 벌금 100 타이완 달러라는 경고문 (우리나라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4,000만원)


‘코로나 이산가족 88일째’

오늘 현재 대만의 코로나 확진자는 0명이란다.

확. 진. 자. 가 제.로.?

나는 어느새 대만행 비행기에 오른다.

타이베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강제 격리 수용소에 감금되는 반백살 한국 아줌마는 보무도 당당하다.

어느새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창밖에서 ‘엄마~!’하고 부르는 미카엘의 목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마음에 창가로 달려가 힘껏 창문을 열어젖힌다. 자전거를 타고 엄마를 보기 위해 달려온

미카엘과 라파엘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창문을 열고

내 아이들을 향해 도망친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나를 부르며 서 있던 

두 아들은 온 데 간 데 없고 

‘치명적인 길치미’를 자랑하는 반백살 한국 아줌마는 

수용소 반경 오백 미터도 벗어나지 못하고 잡히고 만다. 

이어지는 국제적인 망신살과 함께 

벌금 ‘사천만 원’이라는 현실을 맞이하고 통한의 피눈물을 흘린다.

아~~ 갱년기 호르몬의 장난 ㅠㅠ 아악! 이럴 땐 ‘깨몽’이 명약이다.           


확진자 제로의 코로나 청정구역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억수로 운빨 좋은 두 아들 녀석’에게 새삼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우리나라도 어서 빨리 ‘이태원 발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대한민국 코로나 확진자 0명이 이어지는 그날까지 모두들 파이팅이다!


오늘도 나는 ‘생활 속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남편과 거리두기’를 실천 중이다.

"뭐라고? 그건 아니라구?"

어디선가 아들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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