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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껍질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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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Jun 11. 2022

(1) 삶은 계란 이론

변화는 스스로 만드는 것

"삶이 뭐야?"라고 물으면 "삶은 계란이다."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나요? 아니면 들은 적이 있나요? 요즘은 아재 개그라는 말로 넘겨버리지만, 사실은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했던 우스갯소리가 아닐까 해봅니다. 삶은 계란이니, 영어로는 "life is egg"라고 쓸 수 있겠네요. 삶이 계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삶은 계란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삶은 계란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하곤 합니다.


'삶은 계란 이론'이란 뭘까요?  무엇인가에 도전을 할 때의 마음가짐이나 자세라고 할까?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도전할 때 많은 장벽과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장벽과 난관들에 지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에 도전을 하자마자 다 이루어지는 그런 것들이라면, 우리는 애써 도전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냥 마음만 먹으면 다 되어버릴 테니깐요.

 

많은 장벽과 난관과 어려움이 있기에,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과 이겨낸 이후의 모습에 자신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있기에(자신감, 인내력, 등등의 정신적인 것과 가끔은 물질적인 것도) 우리는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즉, 장벽이 있기에 그 도전이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도전이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든, 혹은 무엇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바꾸기 위한 것이든, 미루는 습관을 고치기 위한 것이든, 또는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을 깨기 위한 것이든, 어떤 것이든지 간에 여러분의 도전을 껍질을 깨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 보세요. 그리고 "껍질을 깨는 과정"을 "삶은 달걀을 깨서 먹는 과정"으로 생각을 하세요. 제가 앞으로 할 이야기는 "삶은 달걀을 깨서 먹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우리의 껍질 깨기도 이래야 한다"라고 설명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지금 여러분의 각자의 눈앞에 먹음직스러운 "삶은 달걀"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물론 제 앞에도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삶은 달걀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직접 까서 먹기가 귀찮습니다. 그래서 바라만 보고 있죠.

 

1. 바라만 보기

아. 정말 맛있겠다. 둥그스름하고, 빛깔이 좋은 것이 정말 맛있겠는걸. 아! 먹고 싶다. 정말 맛있을 텐데, 이렇게 생각만 할 뿐, 먹으려고 생각은 안 합니다. 이렇게 머릿속으로 생각만 한다고  삶은 달걀을 먹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세 살짜리 어린아이라면, 부모님이, 형, 누나가 혹은 누군가가 "이거 맛있다 먹어봐라"하겠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껍질 깨기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걱정 안 했습니다.

저녁에 자기 전에 "엄마 아빠, 나 내일 몇 시에 깨워져"라고 말하면 되었으니깐요.

하지만 우리는 

'아. 정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은데, 아침에 일어나면 좋을 텐데... 아침에 일어나면 공부도 하고, 기분도 좋고 그럴 텐데'

아, 글씨 잘 쓰고 싶은데, 지금 글씨를 못써서 다른 사람들 보기에 창피한데, 글씨가 더 이쁘면 좋을 텐데'

하고 머릿속으로 바라고만 있지는 않은지요?

그렇게 우리의 발전되고 긍정적인 모습은 머릿속에서만 맴돌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요?

"껍질은 누군가 깨 주는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스스로 깨지지 않는다."

 

2. 결심하기

아. 맛있겠다. 맛있을 거야. "그래? 그럼 내가 먹고 말 꺼야."라고 굳게 결심을 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열정이 생기지요. 얼른 먹으라는 열정..

 

우리의 껍질 깨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껍질도 바라기만 한다고 깨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껍질을 깨고야 말겠어.'라고 결심을 먼저 해야 합니다. 결심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또 열정이 생깁니다. 얼른 실천하라는 그 열정 말입니다.

 

그래서

 

3. 실천하기

이제 우리는 삶은 달걀을 먹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손을 뻗어 그 달걀을 잡습니다.

 

우리의 껍질 깨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껍질을 깨고 말 꺼야'라고 굳게 다짐을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깰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하게 되고 행동을 하게 됩니다.

즉 실천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1) 콩콩콩

삶은 달걀을 들고서 우리는 바닥에 두드립니다.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 아주 조심스럽게 콩콩콩하면서. 이렇게 수십 번을 두드려도 달걀은 깨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달걀이 깨지지 않자, 우리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어. 안 깨지네, 안 먹을래, 아마 맛없을 거야."라고 말입니다.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가 포도를 먹으려고 노력하다가 먹을 수 없게 되자 "아마 저 포도는 맛이 없을 거야?"라고 말하며 포기하는 자신을 합리화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생각하지 않고선.

 

우리의 껍질 깨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전에 펜글씨를 쓸 때, (글씨를 참 못쓰지만, 글씨를 연습하는 것은 재미없어서 계속 미루었었지요) 제일 처음에 도전할 때 저의 모습이 이러했습니다. 하루에 겨우 5분 정도, 그리고 그렇게 딱 일주일 하고서는 아무런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에이 아무런 변화도 없네, 연습해도 안 좋아질 거야. 그리고 좀 못쓰면 어때?"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포기했죠.


삶은 달걀을 깰 때, 너무 약하게 두드리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의 껍질 깨기도 너무 약하게 하면 안 됩니다. 어느 정도의 강도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리고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 것이고요. 너무 약하게 하고 나서는, 혹은 너무 짧게 하고 나서는 안 된다고 포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요.

 

하지만,

 


(2) 퍽

삶은 달걀을 먹는 것을 포기해 버리고서는 미련이 남습니다. 다시 뒤돌아 보지요. '어 먹고 싶단 말이야...'그래서 우리는 다시 달걀을 손에 듭니다. 우리는 경험이 있습니다. 너무 약하게 부딪히니깐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손을 머리 위로 길게 뻗고서는 삶은 달걀을 바닥에 힘껏 던져 버립니다.

껍질이 깨졌을까요?

아마 깨졌을 것입니다. 아니 아마도 아니죠.. 예 깨졌습니다. 하지만, 안의 내용물도 바스러져서, 차마 먹을 수 없게끔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한마디 하죠. "맛없었을 텐데, 괜히 했네.. 손해만 봤잖아"라고..

 

우리의 껍질 깨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글씨를 잘 쓰고 싶다고 해서, 하루 종일,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 잠들기 전까지 펜글씨 연습만

한다고 하면 글씨는 변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대가는 팔의 마비증세를 치러야 하겠지요.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 다이빙하는 사람이 멋져 보인다고 해서 3층 높이의 다이빙대에 올라가서 뛰어내린다고 그 사람이 다이빙을 하는 것일까요?

 

예전에 아침형 인간에 대한 바람이 불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가장 큰 이유로 이것을 들고 싶습니다.(제가 운영했던 카페에서 입증된..ㅡㅡ;)

책에서 12시 취침 6시 기상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자신의 오랜 습관을 바꾸려고 했지요.

예를 들면 매일 새벽 3시쯤 자서 낮 12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책을 읽은 바로 다음날 12시 취침 6시 기상 도전을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너무 약하게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3) 콩콩 톡톡 툭툭(점차 강도가 세진 것을 표현)

여기 새로운 삶은 달걀이 왔습니다.(아까 퍽하면서 바스러져서.. 급조한 달걀)

이제는 너무 약하게, 그렇다고 강하게 두드리지도 않습니다.

처음에는 약하게 두드립니다. 콩콩하고 그리고 조금 더 힘을 줍니다. 톡톡하고 그래도 안 깨집니다. 그래서 힘을 조금 더 줍니다. 툭툭....

그랬더니 ""하는 소리가 납니다. 예 껍질이 깨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하고 깨졌다고 모든 껍질이 깨진 것일까요?

우리 이 상태에서 다음 단계를 거치지 않나요?

 

우리의 껍질 깨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펜글씨를 예를 들자면, 제가 이전에 펜글씨를 쓸 때, 하루에 30분씩 일주일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위에 했듯이 5분씩 일주일을 했지요) 그랬더니 글씨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글씨가 보기 좋게 변한 것이죠. "아싸, 이제 나도 글씨를 잘 쓴다"라고 생각을 하고서는 그때부터 펜글씨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날이 갈수록 글씨가 이상해지더니, 1주일 정도가 지나고 나서는 다시 이전의 글씨로 돌아오더군요. 그리고는 저는 또 이렇게 생각했죠. "난 해도 소용없구나"

 

정말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껍질이 깨어지는 기미가 살짝 보였을 뿐인데, 그것이 껍질이 다 깨진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서는

거기서 저의 도전을 멈추었던 것이지요. 한번 깨지는 기미가 보였다고 해서 껍질이 깨진 것은 아닙니다.

 

 

(4) 툭툭 투둑 투둑 툭툭(계속 도전)

콩콩하다, 톡톡하다, 툭툭했더니 드디어 달걀 껍질에 금이 갔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 정도의 세기로 달걀을 손 안에서 돌려가면서 계속 바닥에 두드립니다.

이렇게 계속 두드려서 많은 금을 내고 나서야 우리는 껍질을 깝니다. (다들 그렇지 않나요?)

 

우리의 껍질 깨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펜글씨 예를 들자면, 정말 글씨를 고치고 싶어서 펜글씨를 꾸준히 쓰기로 했습니다. 16개월 정도를 펜글씨를 꾸준히 썼습니다 하루 평균 20~30분씩 해서 매일이다 시피 썼습니다. 그렇게 쓰면서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아 이제 글씨가 좋아졌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변의 친구들도 그렇게 얘기를 했고요. 지금은 펜글씨를 쓰지 않는데, 그래서 글씨가 약간 흐트러 지기는 했지만 이전의 글씨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지금은 글씨를 쓸 때 집중해서 쓰면 나름 예쁜 글씨가 나옵니다.

 

껍질은 한번 깨진 기미가 보였다고 깨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노력을 해야 깨지는 것입니다. 일정한 강도로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이지요.

 

4. 맛보기(쏘~~ 옥)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삶은 달걀의 껍질을 깼습니다. 그리고 이 달걀은 우리의 입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맛은 정말 별미일 것입니다.

 

우리의 껍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껍질을 깬 이후에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이전의 세상과는 다를 것입니다. 우리가 먹은 이 계란보다도 훨씬 맛있는 세상일 것입니다. 이 맛있는 세상을 맛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저는 10년 동안 노력해서 글씨를 바꾸었고, 말 더듬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고1 때 포기했었던  선생님이라는 꿈을 되찾았게 되었습니다.


주 1. 껍질이란?

껍질의 정의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을 옭아매거나 자신의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혹은 달성하기만 하면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줄 유․무형의 장애물.

껍질의 예 :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노래하기 등의 대인 부담(?) 같은 것,

달기기, 수영, 헬스 등의 운동

아침형 인간, 펜글씨, 플래너 쓰기 등, 자기 계발에 관련된 도전 등

그리고 "내가 이렇지 뭐", "난 그런 거 못해" "역시 그렇지" 등등 자기부정적이거나 혹은 한계 설정적 말등

모든 것을 총망라할 수 있습니다.

 

주 2. '삶은 달걀 이론'은 사용된 삶은 달걀은 제가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생각해 낸 이론입니다.. 나름대로 고민 많이 했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참 좋은 비교라고 생각합니다.

 

주 3. 저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퍽"하는 과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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