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 이제는 적응이 될 만 하건만 여전히 쉽지 않다. 뭉그적 뭉그적, 뒤척뒤척거리다가 마지못해 일어난다. 막상 일어나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면서도 참 안된다. 간신히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모닝 페이지를 쓰기 시작한다. 밤새 자는 동안 머릿속에 쌓인 생각의 실타래를 비몽사몽간에 적어 내려간다. 원고지 20.0장 분량의 글이 자연스레 나온다. 10.0장 정도를 지나면 얼추 잠이 깨기 시작하고, 다 쓸 때 되면 완전히 깬다.
7시
캘리 용지를 꺼내고, 플러스펜으로 넓은 들판에 화사하게 핀 꽃을 그린다. 붓으로 물칠을 하여 수채화 느낌을 낸다. "오늘도 화사하게"라는 문구를 적어본다. 예쁜 곳을 그려 넣어 화사한 분위기를 살린다. 오늘은 그 어느 날보다 화사한 날이 되기를 바라본다.
7시 30분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는다. 닭가슴살 샐러드, 고혈압을 조절하기 위해 저염식 식단을 노력하고 있다. 소량의 식사를 하고, 적어도 한 끼는 샐러드를 먹는다. 운동과 병행해서 그런지 수치는 많이 떨어졌다. 조잘조잘 떠들어 대는 아이들도 즐거워 보인다. 창밖으로 맑고 시원한 하늘이 보인다.
9시
바이올린과 캘리그래피 글귀들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지하 1층 강당에서 관계자를 만나 인사를 하고, 강의 준비를 한다. 바이올린을 조율해놓고, 한쪽에 가지런히 놓는다. 캘리그래피 글귀들은 책상 한편에 올려두고, 무대 중앙에 가서 선다. 눈을 감고 오늘 얘기할 것들에 대해서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눈을 번쩍 든다. 생기가 돈다.
10시
강의를 신청한 사람들이 자리에 와서 앉는다. 자리가 가득 찼다. 마이크를 들고 강의를 시작한다. 시끌벅적하던 사람들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강의 주제는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이다. 전공자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게 어렵다고들 하던데, 느지막이 배운 바이올린을 사람들 앞에-몇 달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연주를 했던 에피소드로 강의를 시작한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바이올린이 바로 나의 오티움이었기 때문이다. 잘해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서 연주할 수 있는 그런 나의 모습이 좋다. 탈락한 오티움 후보들, 음악에 대한 이야기, 바이올린이 나에게 준 영향, 바이올린 연주 등등이 어우려 저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강의를 마치며 캘리그래피 글귀들을 선물로 드린다.
2시
캘리그래피 원데이 클래스 강의를 들으러 간다. 목표는 원데이 클래스를 직접 열어보는 것이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내 글귀는 나름 예쁘게 쓸 수는 있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은 잘하지 못한다.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다니고 있다. 나의 글씨체를 만들고, 그것을 전수할 정도가 되려면 많은 연습은 물론이거니와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 배울 수 있는 곳은 실전이 최고이지 않은가?
5시
집에 와서 바이올린을 꺼낸다. 레슨을 시작한 이래로 철칙처럼 지키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하루 30분 연습"이다. 아무리 바빠도 하려고 노력을 한다. 새로운 곡을 배울 때면 처음에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이던 것이, 어색하고 어찌할지 전혀 모르겠던 것들이, 매일 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자연스러워진다. 어느 순간 익숙해져 있다. 새로운 곡을 배울 때마다 겪는 똑같은 과정이다. 그 미묘한 변화를 알아채는 것이 즐겁다. 내 귀에 들리는 아름다운 선율이 내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낸다.
8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고 난 후, 필사를 시작한다. 매일 저녁 8시 전후에 나는 토지를 필사하고, 아이들은 일기를 쓴다. 이제 아이들에게도 일기를 쓰는 것이 몸에 배었다. "일기 쓰자"라고 한마디 하면, 또는 "아빠, 필사한다."라고 얘기를 하면 일기장을 들고 와서 자리에 앉는다. 필사하는 시간도 좋지만, 아이들에게 일기 쓰는 습관을 만들어 준 것이 가장 기분이 좋다.
9시
책장에 책들을 둘러본다. 읽은 책, 읽고 있는 책, 읽을 책들이 많다. 어느 책을 읽을까? 고민을 하다가 '1984(조지 오웰)'을 집는다. 재미는 있는데 지지부진하게 읽게 되는 책. 왜 그럴까 이유를 찾아보니 결과를 들었기 때문이다. 맥이 빠졌다고 할까?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이 큰 영향을 주는 나에게 결과를 안다는 것은 책을 읽는 동력을 잃게 하기 마련이다. 비록 결론을 알더라도,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그 과정의 의미를 탐색하는 즐거움을 찾아보는 기회로 삼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