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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May 21. 2022

[7-2]무릇 작가란 말이지

아티스트웨이마이웨이 3기

"조선 팔도를 다 댕기 봐도 너처럼 강짜 심한 놈은 첨 봤다."

크로머가 때리듯이 뱉었다. 또,

"대체 뭐가 문제노? 뭐가 맘에 안 드냐 말이다. 그 정도면 썩 봐줄만하고만, 니놈 맘 속에 대체 뭐가 들었길래, 얼마나 으리으리한 걸 품었길래 만족을 못하느냐 이 말이 구마."

역성을 부리는 크로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을 찌켜뜨고, 헤세를 향해 삿대질을 해가며 씨부렸다. 크로머가 뭐라고 하건 말건, 맞은편에 앉은 헤세는 자신의 술잔을 오른손으로 잡고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실인즉 이랬다. 평소 사람과 사귀기를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사람들을 모아 글쓰기 동아리를 만든 지 벌써 여러 달이 지났다. 처음엔 누구보다 많은 글을 쓰고, 사람들이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도록 독려하며 힘을 주던 그였다.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던 그의 글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재능을 한탄하는 글로 바뀌었고, 계속 그런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로 어제 쓴 글이, 밤 11시 58분에 올라온 글이 크로머의 속을 뒤집어 높았다. "누군가는 성찰이 뛰어난 글을 쓰고, 누군가는 통찰이 뛰어난 글을 쓰고, 누군가는 시감각 풍부한 글을 쓰고, 누군가는 심리가 보이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위트가 넘치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핵심이 분명한 글을 쓰고, 누군가는 혼신을 깃들인 글을 쓰고, 누군가는 가슴을 울리는 글을 쓰는데, 난 도대체 무슨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재능도 없는 놈이 매일 글쓰겠다고 씨부렁거리고, 글쓰기 모임을 운영한다니 이거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냐? 모임을 그만하고 싶다"라고 글을 써서 회원들을 뒤집어 놓았고, 발끈한 크로머가 헤세를 술집으로 불러내었던 것이다.


"대체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 건가? 한번 속 시원하게 말해보자고"

크로머가 다시 한번 다그치고 마침내 헤세가 입을 여는데,

 "다른 사람들이 글을 너무 잘 쓰잖아. 그에 반해 나는 정말 글을 못쓰는 것 같구만. 독자들의 마음을 끌어들일 만한 글감이나 표현력, 성찰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거지."

"너는 말이여, 그게 문제여. 네가 가장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지. 아니 다른 사람들이 자네보다 잘 쓴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그 옹졸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이말이지."

갑자기 뛰어든 크로머의 말은 아랑곳 않고, 헤세는 계속 자신의 말을 이어간다.

"가감 없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글도 쓰고 싶고, 톡톡 튀는 사이다처럼 청량감이 느껴지는 글도 쓰고 싶고, 상상력이 풍부한 글도 쓰고 싶고, 뛰어난 센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글도 쓰고 싶다 이 말이여, 도대체가 내 글에는 독자들의 눈길을 머물게 할 만한 그런 요소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거야."

말을 마치고는 술잔을 들어 거칠게 술을 마신다.  


"지지리도 못난 놈, 대체 몇 년을 그렇게 허비하는 거냐? 사람들이 질릴 정도로 지속되는 글쓰기에 대한 푸념,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한 아주 강한 질투와 시기. 그것들이 자네를 좀 먹고 있다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어리석다 어리석어 정말"

크로머가 반은 나무라는 듯, 반은 염려되는 듯한 말투로 건넨다.

"알지, 암. 알고 말고, 그래서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그렇게 발버둥 치고, 또 발버둥 치고 그러는 것 아니겠나?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그동안 쓴 글들 중에서 '유치해도 괜찮은 글 소개시켜 줄게', '나만 못 써병에 대한 고찰', '이제 그만 사라져 줄래' 등은 글쓰기에 대한 나의 성찰과 성장을 담은 글이지 않은가?"

라고 말하는 헤세의 표정이 일순간 들뜬 아이처럼 밝아졌다가 어두워진다.


헤세의 그러한 변화를 봤으나 짐짓 모른 체 하며,

"그렇지. 내 자네의 그 글들을 보며, 자네가 벗어난 것 같아서 참 좋았지. 정말 좋 았네, 비록 우리가 자주 티격태격하지만, 나만큼 자네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말일세, 그러면서 왜 또 어젯밤에는 그런 글을 쓴 것인가?"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한다.

"그러게 말일세. 나도 자네처럼 나아졌다고 생각했네, 거미줄에서 풀려난 곤충처럼 훨훨 날아다닐 줄 알았단 말일세, 그런데 그게 아니야. 이건 병이야. 불치병.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병이란 말일세. 이게 과연 고쳐질 수 있는 것인가 싶어"라고 말하는 헤세는 한숨을 내쉰다.


"아니, 그러면 글을 그만 쓰면 되는 거 아닌가? 모임이 그리 힘들면 그냥 그만두면 되지 않는가? 굳이 그런 글을 쓴 저의를 사실 잘 모르겠네"

크로머의 말을 듣는 헤세의 얼굴이 경직된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헤세가 갑자기 호탕하게 웃는다. 호탕한 웃음이지만 힘이 없다.

"허, 자네 참 근래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좀 날카롭구먼, 그러시 왜 그런 글을 썼겠는가? 참 못났지? 난 참 못난 사람이란 말일세. 그런 글을 쓴다는 것은 "나 글 잘 쓴다고 누가 말 좀 해주시오"라고 외치는 꼴 아닌가? 주인이 던진 공을 물고 와서는 칭찬해달라고 안달 난 강아지처럼 말일세. 아니 이런 경우 강아지만도 못하겠지만 말일세." 자조하듯이 말하는 그의 표정이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마냥 슬프다.

 

"나, 자네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네"라고 묻는 크로머의 말투가 자못 비장하다.  

"뭔가"

"자네 글을 왜 쓰는가? 왜 쓰려하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쓰는 것인가? 아니면 자네 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끄집어내고 싶어서 쓰는 것인가? 자네는 아주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있어. 자네가 쓰고 싶다고, 부럽다고 했던 그 글들은 자네는 결코 쓸 수 없네. 죽었다 깨어나도 그것을 쓸 수 없을 것이네."

"허~ 크로머 자네. 이 무슨 악담인가."

"또 하나 진실을 알려줄까? 자네가 쓰고 싶다고 하는 글, 부럽다는 글들. 자네는 이미 쓰고 있네."

"이런, 이건 또 무슨 궤변인가? 내가 쓰고 싶어 하는 글들을 절대 쓸 수 없다고 하면서 이미 쓰고 있다고?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어안이 벙벙해진 헤세는 멍한 얼굴로 크로머를 바라본다.


"자네 글을 쓰면서 치유를 얻고 위안과 희망을 가졌던 적이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네 자신을 위한 글을 쓰면서 투박하고, 단순하고, 단조로울지라도 힘을 얻지 않았었나? 글을 쓰면서 무엇인가 답답함이 해소된 적이 있지 않았었나? 자네의 글이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는 것을 느낀 적이 있지 않았었나? 그 글들이 바로 자네가 부러워했던 글들일세. 내 장담하지."

"허~ 오늘따라 청산유수일세"

"자네가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며 백날 부러워하고, 시기해봤자. 자네는 그런 글을  쓸 수 없네, 그는 그들이 자신의 삶을 드러낸 글이기 때문이지. 자네는 자네의 삶을 그려내게. 그 부러움을 자네 속에서 찾아보라는 말일세."

"......"

"내 자네에게 달과 6펜스(시머싯 몸)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읽어주고 더 이상은 말하지 않으려네. 병이라느니, 그런 시답잖은 소리 이제 그만 때려치우게나. '내가 여기에서 얻은 가르침은 작가란 글 쓰는 즐거움과 생각의 짐을 벗어버리는 데서 보람을 찾아야 할 뿐,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여야 하며, 칭찬이나 비난, 성공이나 실패에는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일세. 어때 마음에 드는가?"

말을 마친 크로머는 등을 벽에 기댄 채, 술잔을 들이켠다. 헤세도 자신의 술을 마신다. 처음과 달리 많이 편안해진 얼굴로. 눈빛으로 "고맙네"라고 건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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