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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Jul 16. 2022

거울(9) 일단 써봐.

어느 무명작가의 슬픈 독백

글쓰기에 관련된 명언들이 참 많이 있지요. 너무나 많아서 무엇 하나를 콕 집어서 말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 많고 많은 명언들 중에서 제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명언이 2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다.'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입니다. 첫 번째 명언은 누가 했는지 모르겠는데, 참 유명한 말이죠. 글쓰기에 관련된 책이나 강의에서 많이 들은 명언입니다. 다른 하나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을 쓴 나탈리 골드버그가 한 말입니다. 저는 이 두 명언을 모두 좋아하는데 이번엔 두 번째 명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뭔가 묘사를 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멋진 글을 쓰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많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정말 엄청 심했죠.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정말 하늘을 찌를 때였으니깐요. 문제는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묘사하는 글을 쓰고 싶어, 그런 표현의 글을 쓰면 어떨까?'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뿐 쓰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고, 왠지 시작을 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었습니다. 그리고 쓰면 왠지 엉망인 글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게 무서워서 시작도 못하고 바람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날은 제가 운영하던 글쓰기 동아리가 활동을 하는 날이었어요.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막막했죠. '매번 이런 글을 쓰자'라고 주제를 찾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날은 그냥 사진 한 장 보고 글을 쓰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아무 사진이나 하나 고른 다음에 단톡 창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15분 동안 이것을 가지고 마음대로 글을 쓰고 발표하기"라고 말하고서는 그냥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그날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입니다.


15분 글쓰기 대상 사진

제가 글쓰기 동아리의 리더였고, 사진 한 장으로 글쓰기 주제를 정했고, 쓰세요라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쓸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은 제가 글을 쓰게끔 만들었지요.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 사진을 계속 쳐다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한 분 한 분이 정말 감탄할 만큼 좋은 글들을 써주셨습니다. 15분 안에 쏟아지는 글의 향연이 무척 즐거웠지요. 제가 그때 쓴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 쓴 글 : 오늘은 사진을 보며 자기 마음대로 글쓰기. 단풍사진이다. 수목원일까? 산책하라고 돌길이 잘 깔려있다. 3명은 넉넉히 같이 지나갈 수 있고, 5명이 나란히 지나가기에는 좀 버거울듯한 돌길을 따라 양옆으로 조경이 잘 되어있다. 듬성듬성 심어진 나무들 사이사이로 한쪽은 이름 모를 나무들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고, 반대편은 풀로 뒤덮인 사이사이 화분이 놓여있고, 화분마다  작은 나무 한 개씩 짝을 맺고 있다. 빨갛게 물든 나무 뒤로 노랗게 물든 나무가 반쪽을 앞의 나무에 겹쳐 자리를 잡았다.  빨간 단풍과 노란 단풍 그리고 겹친 부분의 주황 단풍이 잘 어울린다. 한편 반대편에는 빨간 단풍 뒤로 아직 푸른 잎들이 보인다.  그 멀리 뒤쪽으로 돌길이 구부러져 사라지는 자리에 푸른 나무들이 버티고 서 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버티고 있다. 커다란 바위 하나가 시야를 가린 듯이 서있고 나무들 사이로 사람이 보인다. 단풍을 보는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지런한 돌길을 아이들과 손을 잡고 산책하고 있는 아내와 나. 우리 가족의 뒷모습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뭔가 묘사를 해보려고 했지만 역시 어렵다. 글만 읽어도 그 모습이 그려지는 글을 쓰려했는데 역시나 실패다. 더 많이 읽어보고 더 많이 연습해야겠다. 다음에 다시 도전해야겠다.!!



글을 쓰면서 저는 묘사 연습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어려워도 재밌었던 일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저기 밑줄 친 이름 모를 나무들을 쓰면서 무척 안타까웠지요. 슬펐습니다. 나무나 풀, 꽃 등 식물이름을 많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날이었습니다. 어휘력의 중요성을 절실히 체감한 날입니다. 동아리분들이 화살나무처럼 보인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화살나무는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조경수이지요. 아쉬운 마음에 집에 와서 다시 써 봤습니다.

 



수정한 글 : 오늘은 사진을 보며 자기 마음대로 글쓰기. 단풍사진이다. 수목원일까? 산책하라고 돌길이 잘 깔려있다. 3명은 넉넉히 같이 지나갈 수 있고, 5명이 나란히 지나가기에는 좀 버거울듯한 돌길을 따라 양옆으로 조경이 잘 되어있다. 듬성듬성 심어진 나무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우아하게 서있다. 우아함을 뽐내는 나무들을 사이사이로 키 작은 화살나무들이 나란히 줄지어 서서  자기들도 봐달라며 붉게 물들어 있다. 반대편은 푸른색 풀들이 낯부끄러워하는 흙들을  가려주고 있으며, 화분을 놓아 작은 나무 한 개씩 짝을 맺어 앉혀 놓았다. 빨갛게 물든 나무와 노랗게 물든 나무가 사이좋게 나란히 서서 반쪽씩 몸을 맞대어 주황색 단풍을 만들었다.  그 멀리 뒤쪽으로 돌길이 구부러져 사라지는 자리에 푸른 나무들이 자기들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힘주어 버티고 있다. 예쁜 옷으로 바꿔 입은 나무들에게 '초록색 옷이 좋다더니 마음이 변했냐'며 서운한 마음을 전하는 듯하다. 커다란 바위 하나가 시야를 가린 듯이 서있고 나무들 사이로 사람 한 명이 보인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단풍을 보는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모습이 부러워 가지런한 돌길을 아이들과 손을 잡고 산책하고 있는 아내와 나. 우리 가족의 뒷모습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좋다.


그날 한번 퇴고한 글은 좀 더 짜임새가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게다가 이름 모를 나무 대신에 화살나무라고 이름이 들어간 것만으로도 글에 생명이 깃든 듯합니다. 빨간 단풍과 노란 단풍이 겹쳐서 주황 단풍이 잘 어울린다고 했던 표현을 나란히 서서 반쪽씩 몸을 맞대어 주황색 단풍을 만들었다고 표현했습니다. 뭔가 좀 더 좋지 않나요? 저만의 착각일까요?(큼큼)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버티고 서 있는 나무들이 마음이 변했나며 단풍이 물든 나무들에게 서운해한다는 표현도 추가되었습니다. 뭔가 작위적인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쓰지 않았더라면 나올 수 없었던 표현"이라는 데 있습니다.

제가 이날 글을 쓰면서 정말 절실하게 느낀 것은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머릿속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 글쓰기에 대한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느냐? 네 그것들 다 중요한 것은 많습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묘사라는 것도, 비유라는 것도, 서사라는 것도 모두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결국은 일단을 끄집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이게 좋은지 나쁜지, 뭐가 부족한지,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글쓰기에는 '퇴고'라는 정말 좋은 무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림은 그리다가 망치면(실수를 하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합니다. 물론 그 위에 덧칠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다시 해야 되지요.) 하지만 글쓰기는 다릅니다.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말이 있듯이 퇴고를 통해 점점 다듬어지는 것입니다. 머릿속으로 쓰고 싶은 글이 많을 때, 또는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것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결국 직접 써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일단 써보는 겁니다. 그래야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지난 3주간 글을 하나도 쓰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으로 이 글을 쓰려고 짜깁기를 계속했습니다. "제목 : 일단 써봐"이것 하나만 정해둔 채, 이전에 썼던 글을 찾고, 어떤 식으로 전개할까 고민하고, 그러다가 3주 만에 이 글이 나왔네요. 일단 썼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이 글의 완성도는 다음에 손보려고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가장 큰 목표이자 이 글의 주제인 "일단 써봐"를 했다는 것에 만족하려고 합니다.


#글쓰기

#일단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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