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명작가의 슬픈 독백
-선생님 이거 너무 어렵네요.
-그렇죠 어렵죠?
-슬러(바이올린 활을 같은 방향으로 그으면서 줄을 바꾸는 것)를 좀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데, 맨날 끽끽대고 소리가 영 듣기 싫어요.
-힘이 들어가서 그래요. 힘을 빼야 해요.
-힘을 빼는 게 어렵네요. 쉽게 잘할 순 없나요?
-지금이 엄청 중요해요. 그 단계를 넘어가야 자연스러운 소리가 나와요.
-너무 오래 걸리니깐
-힘이 생겨야 힘을 뺄 수 없어요. 지금 안 쓰던 근육을 쓰는 거라 힘이 잔뜩 들어간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깐, 그걸 넘어서야 힘을 뺀 자연스러운 자세가 나와요.
바이올린 레슨을 받다가 끝나면서 선생님과 한 대화 내용입니다. 가끔 보면 영역을 떠나서 "진리는 통한다"라고 느껴질 때가 있는 법이죠. 저는 바이올린 레슨을 받다가 선생님께 이 얘기를 듣고 머리를 도끼로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픈 그런 충격이 아니라 머릿속에 얼어붙어 있던 얼음을, 진리를 꽁꽁 싸매고 있던 얼음을 도끼로 내리찍어 깨부수는 그런 깨달음의 충격 말입니다. 제가 좀 전에 "힘 빼기"에 대한 얘기를 했었지요. 힘을 뺀다는 말을 저는 '힘을 줘야 할 곳에 적당한 힘을 주는 것'으로 나름의 결론을 내렸지요. 그런데 그 적당한 시기를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수련이고, 연습이고, 과정이겠지요.
제가 글을 쓸 때마다 느꼈던 '나만 못써 병'이,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서 질투를 하던 모든 것들이, 글을 잘 쓰려고 노력했던 모든 과정들이 다 힘을 빼는 방법을 알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제가 힘줘서 썼던 글들이 모두 의미가 있었던 것이지요. 글쓰기에서 힘을 준다는 말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억지 은유, 미사여구, 아는 척, 잘난 척, 잘 쓰려는 욕심, 못쓴다고 좌절하는 것 등이 글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게 하는 것들이지요.
처음에 이런 강연을 기획했을 때, 과연 잘 될까? 고민을 했었지요. '누가 내 얘기를 들으려고 하겠어?', '이미 다 아는 얘기잖아!'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면의 검열관은 해도 안될 거라고, 능력 밖이라고 저에게 계속 속삭였지요. 말을 하는 지금도 제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언제든 뛰쳐나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대체 네가 글을 쓰면서 느낀 것들, 글쓰기에 대한 글들을 쓰고, 얘기를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미 사람들은 네가 하는 말보다 더 좋은 글쓰기에 대한 글을 보고 알고 있는데"라고 수시로 저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가끔 아니, 자주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많고, 글쓰기에 대한 책도 많고, 글쓰기 강연도 많고, 인기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굳이 내가 그래야 할까?"이런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런데요. 그걸 아는데요. 정말 너무나 잘 아는데요.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비록 내가 하는 얘기가 같은 얘기일지도 몰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그리고 전달하는 방식의 나의 경험을 통해서 전달이 되는 거잖아요. 분명히 다르죠. 사람마다 삶의 결이 다르기 때문에 글결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요. 제가 글을 쓰면서 느낀 것들, 글에 대한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거예요. 글쓰기를 통해서 내가 나를 만나는 과정, 내가 느낀 벽들, 잔뜩 들어간 힘을 빼기까지 걸렸던 여정들.
그러니깐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깐 힘을 빼는 법을 배우기 위해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던, 힘이 생길 때까지 고민하고 좌절하면서 계속 글을 썼던 그 시기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시기를 넘어갔기에, 선생님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즉, 글쓰기에 힘을 빼는 것이 가능해졌고, 그 얘기는 힘을 주는 법을 익혔다는 말이지요. 생각해보니 이 강연이 바로 그 전환점이 아닐까 합니다. 아니면 그 전환의 결과물일 수도 있겠지요. 제가 글을 쓰면서 느낀 것들을 여러분들에게 하나하나 소개해주고, 그것에서 느낀 것들을 얘기해주는 게 의미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확신을 비로소 갖게 된 겁니다. 강연을 시작할 때만 해도 긴가민가 아리송했는데, 이제야 "그래 하길 잘했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합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