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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Nov 13. 2021

거울(7)-힘 빼세요.

어느 무명작가의 슬픈 독백

(무대 한 구석을 향해 걸어간다. 구석에 세워져 있는 바이올린 가방을 열고, 바이올린을 꺼낸다. 바이올린과 활을 들고 다시 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제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데요. 한 3년 정도 되었네요. 제가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뭔지 아세요? 바로 "힘 빼세요."입니다. 활을 정확하게 긋는다던가, 손가락을 제대로 짚는 것 등등 중요한 것이 무지 많지만, 가장 많이 듣고 가장 중요하게 느껴진 말이 "힘 빼세요."입니다. 처음에 저 말을 들을 때는 참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힘을 빼고 어떻게 활을 긋지?' 힘을 빼라는 게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그런데 저 말을 계속 듣다 보니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 한 그런 말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래서 '저 말을 언제 들었더라?'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아, 계속 얘기를 하기 전에 이왕 바이올린을 들었으니, 그냥 내려놓기가 섭섭하네요. 뭐 여러분은 섭섭하지 않겠지만, 제가 섭섭합니다. 그동안 열심히 배우고 연습했는데, 저 혼자만 아니 저희 가족만 듣기에는 아깝잖아요. 뭐 그렇다고 제가 잘한다는 건 아닙니다. 어디 가서 공연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하고, 혼자만 듣기에는 좀 아쉽고. 이렇게 얘기만 듣고 있을 때, 바이올린 연주곡 하나가 또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지 않겠어요? 딱 한곡만 들려드리고 다음 이야기 이어가겠습니다.


(바이올린을 목과 어깨에 걸치고, 자세를 잡는다.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잔잔한 선율이 흐르기 시작한다. 약간 음이 떨리긴 하지만, 잔잔한 선율이 바이올린에서 흘러나온다. 바이올린 소리를 듣는 관객들의 입에 미소가 맺힌다. 연주가 끝나고 바이올린을 책상에 내려놓는다.)


잘 들으셨나요? 이 정도 실력으로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는 게 참 대단하죠? 제 용기가-네 맞아요. 이건 용기라고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가상하다고 느껴지죠? ㅋ. 저도 제가 참 대견합니다. 네 이제 삼천포에서 돌아올까요?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죠? 자! 누구 대답해주실 분? 음, 아무도 없나 보군요. 뭐, 이런 데서 말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법이니깐요. 네, 저는 지금 "힘 빼세요"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말을 언제 들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봤다고 했었죠. 여러 가지가 떠올랐어요. 우선 수영을 배울 때가 떠올랐습니다. 수영을 배울 때, 강사님이 "회원님, 힘을 빼세요. 자연스럽게" 그 말을 얼마나 많이 하시는지. 대체 힘을 빼고 어떻게 팔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이나요?


제 생각의 고리는 소설로 이어졌지요. 제가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 중에 '드래곤 라자'라는 것이 있어요. 주인공의 이름이 후치 네드발인데, 그의 아버지는 초를 만드는 일을 하지요. 후치도 아버지를 따라 그 일을 배우는데, 그가 보기에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생깁니다. 딱 봐도 자신이 아버지보다 힘이 더 세고, 체력이 좋은데. 아버지의 작업 효율이 더 좋은 거죠. 예를 들면, 장작을 패는데, 자기 아버지는 힘도 없어 보이고, 대충 하는 것 같은데 작업효율이 더 좋은 거죠. 그때 후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문가는 , 그 일에 숙련된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대충 하는 것처럼, 아무 힘도 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요. 무협지에서 말하는 '자연체'같은 느낌이랄까요?


힘을 뺀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을 해봅니다. "적절한 순간에 딱 필요한 만큼의 힘을 주는 것"이 힘을 뺀다는 말이 아닐까라고 저 스스로 결론을 내렸어요.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도, 수영을 할 때도, 어설프게 힘을 주거나 억지로 힘을 주면 근육이 긴장을 해서 제대로 되지 않지요. 적절한,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 그게 힘 빼기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뭐가 적당히고, 뭐가 적절히 인지는 오랜 훈련을 통해서 몸이 익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갑자기 왜 힘 빼기 얘기를 하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네 바로 그 얘기를 하려고요.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저는 글벗에게 이런 말을 들어봤습니다. "글에서 힘을 좀 빼면 더 좋을 것 같아요."라는 말과 "글에 힘이 있어서 좋아요."라는 말이요.


글에서 힘을 빼라고? 글에서 힘을 뺀다? 힘이 들어간 글은 어떤 글일까? 거듭 곱씹어 가면서 생각했지요. 빼야 할 힘이 들어간 글은 뭔가 무겁고, 경직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단어를 쓰거나 미사여구가 많은 글일 수도 있겠지요. 또는 잘 쓰려고 너무 티를 낸 글이 아닐까 싶었어요. 힘이 들어간 글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글도 그런 글이 아닐까요? 반면에 힘이 있어서 좋다는 것은 글이 시원하게 읽힌다던가, 당당함이 느껴진다던가, 속도감이 있게 읽힌다던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던가 할 때 표현을 하겠지요. 같은 힘이란 글자가 들어갔는데, "글에 힘 좀 빼면 좋겠어요."와 "글에 힘이 있어서 좋아요."는 분명히 다른 뉘앙스입니다.  


모든 글에는- 그 글이 유치원생의 글이던, 대학교수님의 글이던 - 나름의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과도하게 들어가서 긴장을 불러일으키느냐, 적절하게 들어가서 편안함을 안겨주느냐의 문제겠지요. 제가 각각의 말을 들었을 때 쓴 글들을 떠올려보면 어느 정도 그 해답이 보입니다. "글에 힘 좀 빼면 좋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을 때 쓴 글이었습니다. 잘 써야 한다는 생각에 글에 헛 힘이 들어간 것이지요. 억지로 미사여구를 찾는다거나 어울리지 않는 은유를 하려고 했죠. 반대로 "글에 힘이 있어서 좋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냥 있는 그대로 쓸 때였어요. 잘 쓰려는 그런 생각 없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글이죠. 그런데 힘이 있어서 좋은 글보단 힘을 빼면 더 좋았을 글을 더 많이 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잘 써야 해"라는 강박관념이 정말 강했어요. 제가 '한번 글을 써보자."라고 작정하고 마음을 먹은 게 4년 정도 되는데, 그때 제 마음속에는 "책" 먼저 있었습니다. 제가 쓰는 글은 모두 언젠가는 나올 책을 머릿속에 염두에 둬 가면서 쓰는 글이었어요. 글을 쓰면서 "이건 책이 될 거야, 그러니깐 잘 써야 돼"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겁니다. 글감도 좋아야 하고, 표현도 좋아하고, 맞춤법도 맞아야 하고, 띄어쓰기도 맞아야 하고, 사람들한테 쉽게 읽혀야 하고, 그러면서도 좋은 메시지를 줘야 하고, 성찰도 안겨줘야 하고, 사람들이 '우와'하고 놀랄만한 멋들어진 표현까지 있어야 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죠. 시작부터 완벽을 추구하며 글을 쓰려고 했으니, 한 글자 한 글자 쓰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전에 글을 쓰는 것이 즐겁고, 즐거워서 쓰던 글이 저에게 치유를 주거나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지요. 그리고 그 경험들이 글쓰기를 더 즐겁게 해 주었었고요. 그런데 '그럼 글을 써서 책을 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 순간부터 글이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렇게 몇 년을 글을 썼어요. 고통스럽게, 다른 사람의 글과 비교를 하면서, 내 글이 형편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잘 쓰고 싶다고 생각을 하니, 자연스러운 글이 아닌 억지스러운 글이 나오게 되는 거지요. 그러다가 깨달은 것이 "힘 빼"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해드리는 얘기의 핵심은 아마 "힘빼" 이 단어에 있을 것 같습니다. 얘기가 중언부언되는 느낌이 들거나 아까 했던 얘기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면 '아, "힘빼"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통 속에서 글을 쓰면서 정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걸 알아차리게 되었거든요. 그것들을 하나하나 얘기하다 보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참 대단하지 않아요? '난 글쓰기에 재능이 없어, 내 주제에 무슨 글을 쓴다고'라는 생각을 매일 하면서도, 매일 글을 썼다는 사실 말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 하나는 저를 칭찬해주고 싶네요. 글에서 헛된 힘을 빼야 한다는 건 알았는데, 어떻게 빼야 할까요? 이제 그것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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