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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Nov 05. 2021

거울-6청새치는 잡지도 않고 상어를 두려워하는 꼴이라니

거울-어느 무명작가의 슬픈 독백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민음사)”를 읽어보셨나요? 저는 이 책을 몇 년 전에야 처음 읽었어요. 아, 몇 년 까지도 안되는군요. 작년 1월에 읽은 것 같습니다. 2년도 채 안된 거네요. 학창 시절엔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읽었는데 잊어버렸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내용은 알고 있었죠. 노인이 바다로 낚시를 떠나고 엄청 큰 물고기를 잡지만,  돌아오는 길에 고기는 상어에게 다 물어뜯겨 빈손으로 항구에 도착한다는 이야기. 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었거나, 읽지 않았더라도 그 스토리는 대충 알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산티아고입니다. 낚시를 나간 산티아고는 84일 연속으로 빈손으로 돌아옵니다. 어부에게 84일간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은 저주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요?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30연패쯤 될까요? 공연가에 비유하자면 30회 연속 무관객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가에 비유하자면 아마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매일 글을 쓰지만, 제대로 된 글은 나오지도 않고, 그저 쓰기만 하고 있는 제 모습이 될 것 같습니다.

      

84일간 빈손으로 돌아오고도 85일째 낚시를 나가는 산티아고의 모습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그는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p.34)”이라고 말합니다. 헤밍웨이 자신이 글을 쓸 때의 마음가짐이었을까요? 한물갔다고 혹평을 받는 자신에게 주는 다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내 글은 언제쯤 빛이 날까? 브런치 북 메인에 언젠가 뜨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곤 했던 저를 부끄럽게 만드네요.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준비된 자라고 하지요. 산티아고가 그랬습니다. 84일간 빈손이었지만, 그는 흐트러짐 없이 85일째 낚시를 나갑니다. 그날 그에게 드디어 운이 찾아옵니다. 대어가 그것도 엄청나게 큰 대어가 입질을 한 것이죠. 산티아고는 그 청새치를 잡기 위해서 3일 밤낮을 고생합니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하지만, 3일을 넘는 사투는 그에게 잡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죠. 아니 잡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는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만 생각하란 말이야.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절대로 안 돼.”(p.49)라고 다짐을 합니다.      


결정의 순간에는 온 집중을 다해야 하죠. 아마 헤밍웨이는 이 노인과 바다를 쓰면서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제 자신에게 물어봤죠. '넌 글을 쓸 때 집중하니?'라고. 아, 대답을 할 수가 없네요.

     

힘들게 잡은 청새치를 배에 묶고, 기쁜 마음으로 항구로 돌아가는 그에게 새로운 적들이 나타납니다. 청새치의 피 냄새를 느끼고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상어들입니다. 85일 만에 잡은, 생애 보도 듣지도 못한 크기의 청새치인데 그걸 막연히 뺏길 수 업었던 산티아고는 상어 떼를 물리치기 위해 다시 사투를 벌입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p.104)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가지고 나온 바닷길이지만 상어 떼는 생각지 못한 것이죠. 부족한 것들, 있었으면 하는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러자 그는 “지금은 갖고 오지 않은 물건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지금 갖고 있는 물건으로 뭐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란 말이다.”(p.112)라고 외칩니다. 어쩜 이리 적절한 말을 하며 교훈을 주는지 노벨평화상은 그냥 주는 게 아닌가 봐요.       


책을 읽다 보면 ‘아,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오늘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요. 오늘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산다는 것은 또 얼마나 숭고한 일일까요. 가져오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삶의 태도가 묵직하게 가슴에 파고듭니다. 비록 청새치를 잡았다는 흔적만 가진채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그 흔적이 산티아고를 따르던 다른 소년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산티아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날 다시 낚시를 나갈 준비를 하지요.      


여러분이 글쓰기를 좋아해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저도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이 책을 가지고 토론을 할 때였어요. '글을 쓸 때마다 내 글이 엉망이면 어쩌지,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어쩌지, 내 글이 유치한 것 같아, 아무도 안 읽으면 어쩌지. 그런 두려움이 계속 생겨요. 그래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아요.'라고 발표를 했었죠. 내 글에 대한 불확신과 ‘이게 글이야’라는 자기 검열,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한 질투나 시기, 두려움 등등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죠. 그리고 ‘그것들이 저의 상어들이에요'라고 말을 했었죠. 그랬더니 한 분이 저에게 "청새치를 먼저 잡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망치로 머리를 맞는 듯한 충격, 아침에 잠이 덜 깨 비몽사몽 할 때 찬물로 눈이 번쩍 떠지는 것 같은 깨달음, 어둑어둑한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아침노을 같은 희망을 느꼈죠. ’아, 그렇구나, 난 청새치를 잡지도 않았으면서, 나타나지도 않은-또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상어를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하는 성찰이 일어났지요. 청새치를 잡아야지, 그걸 빼앗으려는 상어가 나타나든지 말든지 하지 않을까요? 상어가 물어뜯을까 봐 두려워서 청새치를 잡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라니. 저의 어리석음이 부끄러워지더군요.   

  

제가 글쓰기에 모든 신경을 쓰고 있어서 일까요? 읽는 책, 보는 것, 행동하는 것 모든 것이 자연스레(때론 억척스럽게) 글쓰기와 연결이 되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노인과 바다는 저에게 글을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즉 자신의 글을 묵묵히 쓰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상어를 두려워하지 말고 쓰라고 합니다. 청새치를 잡는 게 중요하다고, 비록 상어에 다 물어뜯기더라도 그 흔적은 남아 다시 내일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노인과 바다는 저에게 그런 깨달음을 준 책입니다. 묵묵하게 그냥 하루하루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그 글들이 빛을 발하게 되어서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있게 된 것입니다. 제가 쓴 글들이 블로그 게시판에 올린 전체 글의 수를 그저 하나 늘리는 역할로 끝날 수도 있었지요. 글을 쓰는 그 하루가 또 다른 84일 중의 하루가 될 수도 있었지만 써야 했죠. 어쩌겠어요. 산티아고가 어부라서 고기를 잡으러 나가야 하는 것처럼, 저도 작가라서 글을 써야 하는 것을. 상어에 대한 두려움은 바닷속 깊은 곳에 던져두고, 청새치를 잡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 거죠. 그 노력의 과정을 이제 얘기해볼까 합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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