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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Sep 25. 2021

거울(5)-글을 왜 쓰시나요?

어느 무명작가의 슬픈 독백

제가 글쓰기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할 건데, 우선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는 것 같네요. 바로 "왜 쓰는가?"입니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1984',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을 통해서 밝힌 바 있죠.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이렇게 네 가지를 제시하지요.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미학적 열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소설이지요. 혹시 아직 안 보셨다면 꼭 보시기 바랍니다. 정치적인 사건을 동물에 비유하여 그렇게 아름답게 글을 쓸 수 있는지 전 읽어보고 엄청난 감탄을 했던 기억이 있네요.


저는 이렇게 큰 의미의 범주화 까지는 못하겠고, 정치적인 목적인 글은 감히 쓸 엄두도 나지 않네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인정 욕구, 공감, 치유, 나눔' 이렇게 네 가지를 얘기할 수 있겠네요. 우선 저는 인정 욕구가 상당히 강합니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거죠. 아마 이 부분이 조지 오웰의 순전한 이기심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합니다. 요즘 말로는 '관종'이라고 얘기를 하죠. 강원국 작가도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 관종이다'라고 얘기를 했었으니깐요.(독백 : 맞나? 전에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이런 불확실한 정보를 주면 안 되는데 말이지) 인정 욕구가 너무 강해서 때론 회의가 들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인정받으려면 무엇인가 자신의 것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 무엇이 저에겐 바로 글쓰기입니다.

인정 욕구는 글을 쓰게 하는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글이란 것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좋은 글을 써야겠지요. 좋은 글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글을 쓰려는 욕심이 아니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긴 거예요. 이게 정도껏이어야 하는데, 너무 심한 거죠. 아마 앞으로 할 많은 이야기들이 이 부분, 즉 좋은 글들 써야 한다는 부담감,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우선 지금 얘기할 것은 인정욕구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니깐  그것만 얘기하기로 하죠.

  

여기서 인정 욕구를 충족하는 대상으로 왜 글쓰기를 선택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네요. 누가 그렇게 알려주진 않았을 테고, 글을 통해서 인정을 받은 경험이 있어야겠지요. 글을 썼을 테고, 그 글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는 경험이 있어야 하겠지요. 네, 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걸 저는 '공감'이라고 하겠습니다. 서로 비슷한 경험이나 느낌 또는 아픔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때, 두 사람이 서로 그것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 있다면 아마 둘은 서로 공감해주며 힘이 되거나 위로를 해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둘이 만나서 얘기를 할 수 없다면요? 또는 둘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요? 지금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인터넷이지요. 전 아마 인터넷이 없었으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작가와 독자가 디렉트로 연결되는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인터넷이 나온 이후로 글을 쓰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진 것도 사실이고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내가 공감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만, 그보다 내가 쓴 글에 다른 이가 공감해주는 것은 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두 경험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아 나랑 같은 사람이 있구나'하고 위로를 받는 것에서 멈추겠지만, 후자는 '아, 나로 인해 위로를 받았구나,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도 있구나'하는 왠지 모를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줍니다. 자부심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는데, 그 자부심이 스스로 위안이 되기도 하고,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합니다. 이 경험이 너무 좋아서 계속 글을 쓰게 되었지요. 그런데 계속 쓰다 보니 저도 모르던 글쓰기의 좋은 점이 또 하나가 생기더라고요. 그것은 제가 글을 쓰는 세 번째 이유인 치유입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이것저것 다 시도해보는 편입니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 -  모닝 페이지를 계속 쓰고 있습니다. 중간에 빼먹을 때도 있긴 하지만, 지금 4년째 쓰고 있는데, 2018년도에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불행한 기억이었는데, 거의 7개월 동안 7번에 걸쳐서 그것에 대해 글을 계속 썼습니다. 한번 쓰고, 울고, 계속 신경 쓰다가 다시 한번 쓰고 그런 과정을 계속 거친 거죠. 하루는 한 바닥을 욕만 썼던 날도 있는데, 그날은 좀 후련하더군요. 그리고 어느 날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 쓸 때, 마음의 소리가 툭 튀어나오더라고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겨지면서도 왜 계속 마음에 걸렸는지, 왜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지, 빠진 고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하게 되는 순간, 그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7번의 글을 쓰는 동안 내면 아이는 계속 울었지요. 그때마다 제 내면 아이에게 "혼자서 정말 고생했네, 많이 힘들었구나, 이제 괜찮아, 이제 내가 지켜줄게'라고 말하며 다독여주었죠. 내면 아이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제가 치유가 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내면 아이를 정면에서 쳐다볼 수 있게 되었지요.

치유에 대한 다른 예로는 앞서 소개한 자작시 "유치해도 괜찮은 시 소개시켜 줄게"입니다. 어느 날 아침 글쓰기의 주제문이 "시를 낭독하는 소년이 있었다."였습니다. 시를 낭독하는 소년이 있었어라고 글을 쓰는 순간 중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요. 그날의 기억에 대해 떠오르는 대로 썼습니다. 쓰다 보니 상처 받고 울고 있는 아이 - 다시는 놀림받지 않을 거야. 시(글)따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울고 있는 아이-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날 글을 쓰면서 유치해도 괜찮다고, 쓰고 싶으면 쓰라고 그 아이를 달래주었습니다. 둘이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날의 글을 내용으로 쓴 시가 "유치해도 괜찮은 시 소개시켜 줄게'였던 거지요. 글쓰기는 스스로 어루만져주고, 이해해주고, 달래주면서 내면 아이를 치유해주는 그런 기능이 있더라고요. 그 경험이 전 너무 좋아요. 그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글을 쓰는 네 번째 이유인 나눔입니다.

제 장점 중의 하나가 내가 겪어봐서 좋은 것이 있으면 그걸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싶어 합니다. 다른 사람도 그것을 해보길 바라는 거죠. 그래서 내가 느끼고 성장한 것처럼, 다른 사람도 성장하길 바라는 겁니다. 뭐 사실 이건 인정 욕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뭐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제가 나누고 싶은 건 사실입니다. 글을 쓰면서 내가 바뀐 것들, 아니 내가 바뀌어 가는 과정, 내가 이룬 것들 이 모든 것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글쓰기의 유익함, 즐거움, 보람 뭐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죠. 그걸 나누는 방법은 강연도 있겠지만, 아무런 결과물도 없이 강연의 자리가 생기지는 않더라고요. 그런 제가 이걸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또 글쓰기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글을 쓰는 것입니다.


뭔가 글을 쓰는 이유가 그럴싸하고 멋지면 좋겠는데, 지금은 아직 저 밖에 없습니다. 제 치유와 성장이 우선적인 거죠. 감히 조지 오웰처럼 정치적 목적까지의 글은 또는 예술적 아름다움까지는 쓰지 못하더라도, 주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사회에 대해 바른 소리 또는 쓴소리를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 필력을 기르는 것이 제가 글을 쓰는 마지막 이유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말해봤습니다. 여러분은 왜 글을 쓰려고 하시나요? 왜 이 자리에 와서 앉아 계신가요?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정, 공감, 치유, 나눔. 내가 글을 쓰는 네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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