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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Sep 11. 2021

거울(4)-어느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계시나요?

어느 무명작가의 슬픈 독백

(책상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쌓여있는 책들 중에서 ‘달과 6펜스(시머싯 몸)’를 꺼내어 보여준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을 보셨나요? 음 보셨다면, 제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혹 안 보셨다면, 음, 일어서서 나가주세요. 나중에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거든요.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손사래를 치며) 거기 보라색 니트의 여자분, 진짜 나가시려고 한 거 아니시죠?


글을 쓰다 보면, '나는 진정으로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과연 내가 어느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거죠. 그럴 때면 꼭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이지요. 아주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전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흥미로운 인물을 창조해 낼 수 있었을까? 감탄을 했습니다.


왜 그에게 눈길이 가고, 깊은 감탄을 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인가에 진심으로 감탄을 했다던가, 또는 무엇인가에 진심으로 실망 또는 미움을 느꼈다면 우리는 그것을 아주 깊이 눈여겨봐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 마음속에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는 법이거든요.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시머싯 몸처럼 흥미로운 인물을 창조해 내고 싶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문제는 ‘그럴 능력이 내게 있을까?’ 스스로 의심이 든다는 겁니다.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참 슬픈 일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그 인물은 그 자체가 경이로움이었습니다. 작중에서 찰스는 자신의 꿈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오로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자신의 꿈 하나만을 위해서 넉넉한 삶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도 다 포기합니다.  자신의 꿈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세상 사람들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모든 것을, 육체적인 안위도 포기하는 그 열정이 저는 무척 부러웠어요. 그런 꿈이 있다는 자체로 부러운 거지요. ‘난 그런 꿈이 있는가? 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이를테면 행복한 가정, 따뜻한 집, 반듯한 직장, 안정적 수입, 원만한 인간관계 등등을 다 포기하고 온몸을 내 던질 그런 꿈 말이야?’라고 생각을 하면 떠오르지 않지요.


그런 꿈이 있을 때, 다 포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꿈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찰스가 부러웠습니다. 물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모든 것을 다 포기하지는 않죠. 그 꿈이 생겼을 때 포기하지 않고 이룰 수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실행에 옮길 수는 없더라도,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각오를 다지게 하는 꿈이 있는가? 자문해 봅니다. 저는 바로 글쓰기가 저에게 그런 꿈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보는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한다고요.


좀 웃기죠? 그렇게 희망을 - 예 희망이라고 말할게요 - 갖게 된 데는 나름 근거는 있어요. 이런 좋은 소설을 보고 나면 ‘내가 과연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어요. '내 주제에 무슨?'이라고 하면서 체념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때가 더 많죠. 그런데 그 두려움 이면에 ‘그래도 쓰고 싶어’라는 의욕이 또 분명히 있거든요. 두려움을 넘어서는, 내 실력을 넘어서는 그런 욕구 그것이 바로 그런 꿈 아닐까요? 꿈만 꾼다고 바로 이루어진다면 그건 꿈이 아닌 거잖아요.


찰스가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 죽기 직전까지 그림을 그렸듯이, 제가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저도 죽을 때까지 계속 노력을 해야 하는 거죠. 찰스에게 그림이라는 꿈이 있듯이, 저에게 글쓰기라는 꿈이 있으니깐 된 거 아니냐고요? 아,  ‘글쓰기가 당신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어?’라고 누구가 묻는다면, 그렇게 물어보면 또 말이 달라지죠. 그 질문에는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니요,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참 웃기죠? 그런 꿈이 되길 바라보면서 막상 그런 꿈이라고는 대답할 수 없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글쓰기에 어느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나요?"라는 생각이 들 때면 떠오르는 인물인 찰스 스트릭랜드. 그는 저에게 두려움과 희망을, 절망과 열정을 동시에 던져줍니다. 그리고 저에게 "난 이렇게 그림을 그렸는데, 당신은 어떻게 글을 쓸건가?"하고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그 답은 '예', 또는 '아니오'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건 대답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는, 평생의 과업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글쓰기가 과연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냐? 또 그건 아니겠죠. 참 어려운 문제네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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