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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Sep 04. 2021

3-대체 이게 뭔데

거울(어느 무명작가의 독백)

'안나 카레니나(레프 톨스토이)' 혹시 읽어보셨나요? 아직 안 읽어 보셨다면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얼마 전에 읽어봤는데, 참 좋은 책이더라고요. 뭐가 어떻게 좋았고, 무엇이 좋았냐고 묻지는 마세요. 그런 거 물어보면 실례인 거 아시죠? (웃음)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읽었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건 아니고요. 주인공은 안나가 맞는데, 안 나와 비슷한 비중으로 (어떻게 보면 안나보다 더 큰 비중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캐릭터로 레빈이 나옵니다. 레빈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요. 레빈은 제가 볼 때, 참 이해가 안 되는 캐릭터였어요. 안나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죄책감과 아들에 대한 집착(사랑) 때문에 갈팡질팡한다고 쳐도, 레빈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기분이 순간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너무 심했어요. 엄청 긍정적이었다가 어떤 사건이 생기면 엄청 부정적으로 변하고, 그렇게 가는 듯하다가 누군가를 만나서 엄청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가, 다른 일로 완전히  의기소침해지고, 삶의 모든 의욕을 상실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한순간에 휙휙 변하는 모습이 참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럴 때-이해 안 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음. 저는 스스로에게  "너는 그런 적 없어?"라고 질문을 해봅니다. (아, 요고 공짜로 주면 안 되는 팁인데) 제가 이걸 깨달은 건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읽을 때였어요. 제가 고전을 좀 즐겨 있는데, (하하 잘난 척) 고전이 전반적으로 어렵긴 하죠. 다른 책들은 읽으면서 어렵긴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었는데, 제르베즈(목로주점의 여주인)는 다른 거예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싶었죠.  특히, 빚이 많음에도, 진수성찬을 차려서 참 거하게 생일잔치를 하는 모습은 참 이해가 안 되었었죠. 그러니까 제르베즈는 전반적으로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빚을 먼저 갚고 그래야 하는데, 빚은 갚는 건 소홀히 하면서 먹는 것에 많은 돈을 쓰는 게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되었던 겁니다. 그러다 문득 '제르베즈랑 나랑 뭐가 다르지? 정말 똑같은데!'라는 깨달음이 갑자기 찾아왔어요. 저는 이것저것 배우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빚이 있는데 빚을 갚을 생각은 안 하고, 책 사고 뭔가 배우러 다니고, 그게 다 돈인데 자기 계발은 투자잖아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을 뿐이죠. 제르베즈한테 "대체 왜 그러냐? 사람이 왜 그렇게 살아?"라고 말을 하던 제가 어찌나 부끄럽던지. 서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다를 뿐,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빚내고, 빚을 갚는 척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먼저 하는 것은 똑같았던 겁니다.


레빈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제르베즈 얘기는 왜 하냐고요? 이번에도 정말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 얘기를 하지 않고는 제가 못 버기겠는거죠. 제르베즈 얘기를 하지 않고 넘어가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그러면 제가 섭섭할 것 같아요. 여러분들 입장에서 얘기해야 하는데, 이것만큼은 저도 양보를 못하겠더라고요. 순전히 제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제르베즈 얘기를 한 겁니다. 하하. 좀  머쓱하군요. 전 정말 레빈이 이해가 안 되었었어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지? 당최 이해가 안 되네!'였죠. 이때 제르베즈를 떠올렸고, 저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는 그런 적 없어?'라고요. 마음이 계속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했던 것, 순간순간 에너지가 왔다 갔다 했던 적이 없는가? 질문을 했는데 말이죠. 그게 말이죠. 참 부끄럽네요. 질문을 하자마자 순식간에 그에 대한 대답이 떠오른 거예요. '아, 나도 똑같구나, 뭐라 할 거리가 없구나'


그런 상태를 지속한 게 3년이 넘은 것 같아요. 하루는 제 아이디어가 너무 멋져 보이는 겁니다. 그런 날이며, 의욕이 충만해지고, 시작하기만 하면 다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다음 날은 너무 유치해 보이고, 진부해 보이고, 사람들이 거들떠볼 것 같지도 않은 생각이 들죠. 그런 날은 엄청 의기소침해져서 모든 것이 하기 싫고, 스스로가 참 한심해 보이는 거죠.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최고의 기분이었다가 한순간에 최악의 기분이 되는 것은 레빈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던 겁니다. 저 사람 왜 저래?라고 말할 자격이 없었던 거죠. 사람이 참 그래요. 누군가 전혀 이해 안 되는 사람이 있을 때, (실제건 책에서건) '나는 그런 적 없나?' 한 번 생각을 해보세요. 아마 상황이나 대상, 또는 주제가 바뀌면 나도 똑같던 적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 그 얘기를 안 했군요. 그 얘기를 해야죠. 제가 대체 무엇을 가지고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감정의 줄넘기를 타며 보냈는지 그것을 얘기해야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겠죠? 그게 뭐냐면 바로 이겁니다. 이거요. 이거. 이거라니깐요. 여러분이 듣고 있는 바로 이거요. 이거를 3년 전부터 써보고 싶었어요. 모노드라마 형식의 이야기 글, 화자가 자신이 글을 쓰면서 배우고,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글. 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찾고, 자신의 미래를 본 것에 대해서 청중들에게 이야기하는 글. 결국 형식만 다를 뿐 어떻게 보면 또 다른 글쓰기에 대한 글이었던 겁니다. '어, 아이디어가 아주 좋아. 천재야'라고 생각하며 고무된 날도 있고, '네 주제에 무슨, 글을 잘 쓰는 분들이 얼마나 많고, 글쓰기에 대한 글이 또 얼마나 많은데'라며 사기가 저하되기도 했죠. '아냐, 그래도 내 경험이 있으니깐 좋은 글이 될 수도 있어.'라며 자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아무도 안 읽을 걸? 네 글을 읽을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쓰는 게 글쓰기에 도움이 될 거다.'라며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기도 했었죠.


이런 형식의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을 한 게 2018년 8월쯤이었어요. 처음 생각을 했을 때는 얼마나 고무적이었을까요? 마치 자리에 앉아서 시작만 하면 몇 시간 만에 금방 뚝딱 끝내버릴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죠.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그 흥분과 설렘과 자신감이 서서히 모습을 감추더라고요.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의심과 좌절과 회의가 대체했죠. 3년 동안 계속 이 상태였던 거예요. 저 이 서로 앞자리에 나서기 위한 싸움을 계속했죠. 그리고 의심과 좌절과 회의가 이겼어요. 참 슬펐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글쓰기를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었고요. 그런데 제 무의식은 그렇지 않았어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제 꿈에서는 전혀 다른 꿈을 꾼 거죠. 꿈에서 전 성공한 작가가 되었고 기자회견 같은 자리에서 '글 쓰는 게 많이 힘들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매일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보상으로 이런 작품이  나온 것 같아요'라고 말을 했어요. 네. 맞아요. 결국 저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겁니다.


그때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글 쓰는 삶으로 복귀를 한 거죠. 그리고 3년 동안 쓰고 싶었던 글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이게 과연 책이 될까? 사람들이 과연 읽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래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쓴 다음에 세상(?)에 공개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려고 하면 시작도 못 하고 그대로 끝날 것 같아서. 한 번에 하나씩 쓰기로 하고 시작한 겁니다. 머릿속에 생각했던 글의 흐름이 있긴 하지만, 그 흐름에 상관없이 하나씩 쓰는 거예요. 나중에 어떻게 편집을 해야 할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결심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을 쓰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이것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것이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어떻게든 결실을 보지 않으면 이 자리에 멈춘 채로, 계속 오르락내리락 감정의 줄넘기를 하면서 정체되어 있을 거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거죠.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까지 갈지는 저도 몰라요. '거울'이라는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저를 충분히 보았을 때, 아주 깊게 보았을 때, 그래서 결국 그 너머에 있든 또 다를 나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이야기가 끝나기를 속으로 바라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거울만 보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내면을 보기는커녕 아니 나의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거울 그 자체만 보다가 끝날 수도 있는 거지요. 뭐 이렇게 끝나나, 저렇게 끝나나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저는 이렇게-내면을 깊이 보고-끝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방백 : 여러분도 그렇겠지요?) 중요한 건, 어쨌든 이건 저의 첫 작품이 될 것이고, 그것을 시작했고, 시작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거죠. 그리고 끝났을 때 저는 분명 조금은 키가 커져 있을 것입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커져 있지 않을까요? 대체 이게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저도 찾아보려고요. 여러분도 끝까지 들으면서 제가 그것을 찾았는지 지켜봐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다소 지루하거나 재미없더라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계속 들어주세요.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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