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어느 무명작가의 독백)
“시가 좀 유치한데?”라는 선생님의 한마디가 아이의 귀에 맴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웃던 친구들의 모습이 아이의 눈앞에 선하다. 그리고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엎드려 있는 아이의 모습이 내 마음속에서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러분은 글쓰기에 대한 첫 기억이 있나요? 저는 아주 강렬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하고 있어요. 국어 시간이었지요. 자작시를 써오고, 그것을 발표하는 시간이었지요. 제 발표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는 데 선생님이 한마디 하셨죠. "시가 좀 유치한데?"라고요. 아마 선생님은 별 뜻 없이 우스갯소리로 했을 겁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선생님이었고, 저랑 사이도 좋았거든요. 아마 그래서 농담삼아 그랬을 거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때 제가 지은 시의 제목은 ‘선풍기’였어요. 한여름인데 고장 난 선풍기, 넌 왜 일을 하지 않니. 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친구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지요. 제가 좀 당돌한 아이였다면 같이 웃어주었을 텐데, 전 당시 그렇지 않았어요.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엎드렸지요. 아마 얼굴이 새빨개졌을 겁니다. 울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을 것 같아요.
이것은 제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던, 하지만 잊고 있었던 기억이었어요. 15분 글쓰기를 하던 어느 날 아침, 그날의 주제문이 '한 아이가 시를 낭독했다.'였어요. 글을 쓰려고 노트 맨 위에 이 문장을 적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정말 순간적으로 저 기억이 떠오른 겁니다. 깜짝 놀랐지요. 그날 노트 한 면을 가득 채워 글을 쓰면서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지요. 글쓰기에 대한 첫 기억은 너무 강렬했고, 저에게 너무나 거대한 트라우마를 남겼던 겁니다. 그걸 깨닫고나니 제가 왜 글쓰기를 매번 어려워하고, 왜 제 글을 유치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문장(유치해 보이지 않는)을 갈구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어요.
여러분이 저런 일을 겪게 된다면 어떨 것 같나요? 전 정말 안 좋은 방향으로 크게 온 것 같아요. 그날 이후로 글을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게 된거죠. 특히 시를 쓴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죠. ‘써 봐야 유치할 텐데 뭐하러 써, 친구들한테 놀림이나 받으려고?' 그런 생각을 했겠지요.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시를 보는 것이나 시를 외우는 것이나 시 자체를 싫어할 법하고, 또 그래야 정상인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게 또 신기하더라구요. 지금도 제 책상에는 고등학교 때 사둔 시집이 20권 가까이 꽂혀 있습니다. 한용운, 윤동주, 김소월, 박목월, 신경림 등등 교과서에 실린 시인들의 시집은 열심히 샀던 것 같아요.
멋진 시구를 보면 감탄하고, 그것을 외우고 했던 학창 시절도 기억이 나요. 특히 전 유치환의 시 '깃발'을 좋아했어요.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아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거죠?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 있는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는 또 어떤가요? 아름다운 단어라든가 뭔가 통찰적인 표현도 좋지만, 이런 역설적인 표현을 특히 더 좋아했어요. 시인들의 탁월한 표현을 좋아한 것의 이면에는 유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이 들어가 있었던 거죠. 그런 표현이 없는 시는 ‘유치하다’라고 스스로 규정을 하고, 그런 표현이 없는 시를 쓰면 유치하다고 놀림을 받을까 마음속에서부터 지레 겁먹고 글을 쓰고, 시를 쓰는 것을 두려워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죠.
중학교 국어 시간, 그날 이후의 제 마음을 추리해보면 ‘난 시를 쓰고 싶어, 사람들이 '와'하고 탄성을 지를 수 있는 시, 비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이 있는 시, 그런 시를 쓰고 싶어. 사뿐히 즈려밟고 같은 표현이 있는 시를 쓰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런 표현을 쓸 능력이 없어. 내 시는 유치한 시가 될 거야. 놀림 받기 싫어. 그러니깐 난 시를 쓰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을 해온 거예요. 무려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 쓰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유치하다고 놀림 받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정말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25년 전, 친구들에게 놀림 받고 책상에 엎드려 울던 어린아이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으니깐요. 전 그 아이에게 ‘괜찮아, 유치하면 어때, 유치해도 돼, 누가 유치하다고 놀리면 내가 혼내줄게. 그러니깐 쓰고 싶은 시가 있으면, 글이 있으면 마음대로 써. 내가 널 응원해줄게.’라고 위로해주었어요. 격려해 주었고요. 그리고 꼭 껴안아 주었지요. 아이가 먼저였는지, 제가 먼저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울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저에게 위로를 받은 저는 용기를 내어 시를 쓰기로 했어요. 다른 사람이 유치하다고 하건 말건, 뭐라고 하건 말건 제 마음을 표현하기로 용기를 냈죠. '나답게, 나다운 시'를 쓰기로 했어요. 그리고 썼습니다. 처음엔 제목을 “괜찮아.”라고 지었다가 “유치해도 괜찮은 시 소개해 줄게.”라고 바꾸었어요.
유치해도 괜찮은 시 소개해 줄게
박현수
‘시가 좀 유치한데?’ 선생님의 한마디
친구들은 웃고 낭독한 아이는 얼굴이 붉어진다
자리에 앉아 얼굴을 책상에 파묻은 아이
눈물은 흘리지 않았으나 온몸으로 울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다짐했으리라. 다신 시 따위 쓰지 않겠다고
그쯤이었을 것이다
멋진 시들이 부러워진 것도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 것도
그쯤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시를 쓰고 싶었다
좋은 시, 있어 보이는 시
비웃음이 아닌 웃음이 나오는 시
핀잔이 아닌 탄성이 나오는 시
시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아이는 없었다
그 마음 모른 채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이제야 그 마음 알게 된 나는 아이에게 한마디 해준다
‘괜찮아, 유치해도 돼. 너답게 쓰면 된 거야’라고
멋대로 끄적여 놓고
시라고 우긴다.
시(?)를 쓰고 난 후 마음이 홀가분해진 것을 느꼈죠. 25년간 저를 얽매이고 있던 족쇄가 스르르 풀려 사라진 거에요. 멋스런 표현도 없고, 제가 좋아하는 역설적인 표현도 없지만, 이 시가 너무 좋더라고요. 저를 해방시켜 주고, 시를 사랑하게 해준, 그리고 제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해준 시이기 때문이죠. 이 이후로 시를 쓰는 수업도 듣고, 가끔 백일장에 나가기도 했어요. 물론 제대로 된 시는 쓰지 못해요. 그래도 좋아요. 지금도 시집을 종종 사고, 시를 열심히 필사하는 저를 볼 때면, 제가 정말 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를 배웠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게 참 아쉽네요.
어린 시절의 어떤 안 좋은 경험, 기억이나 느낌 등이 지금의 저를 얽매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자신을 자유롭게 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때의 상처받은 자신을 찾아 다독여주고, 위로해주는 일은 결국 제가 해야 하는 거라는 것을 이 시를 쓴 날 깨달은 것 같아요. 아물지 않은 채 남아있던 그 상처들이 잘 아물어서 아름다운 무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바로 이 시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