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거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세처럼 May 12. 2021

1-글 쓰는 삶으로의 복귀

거울(어느 무명작가의 독백)

(6인용 식탁 정도의 책상이 하나 놓여있다. 책상 위에는 3면을 둘러싸고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소설, 시집, 자기계발, 글쓰기,  사회과학, 자연과학, 철학 등 여러 분야가 섞여 있다. 책이 없는 한 면에 한 남자가 앉아서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 문득 남자가 고개를 든다. 일어나서 앞으로 나온다. )


음 어떻게 얘기를 시작해야 할까요? 무엇부터 시작할지 고민이 되네요. 아, 제가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그 순간을 얘기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되겠네요. 어느 해 2월 이었지요. 그 당시 저는 글쓰기를 체념하고 있을 때였어요. '세상이 이렇게나 책이 많고, 또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책(글)들을 다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왜 굳이 나까지 글을 쓰려고 할까?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냐? 솔직히 잘 쓰지도 못하거니와 쓸 것도 별로 없잖아' 이러고 있었죠. 게다가 그때는 엄청난 작품을 읽고 난 뒤라 더 의기소침해 있기도 했었지요.  



제가 1월, 2월에 아이와 같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영화로 봤어요. 사실 영화보다는 아이에게 책을 읽게 하려는 목적이 더 컸죠. '1부 마법사의 돌을 보여준 다음, 2부는 책을 다 읽으면 보여주겠다.'라고 했으니깐요. 영화가 재밌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인 큰아이는 2부 비밀의 방, 3부 아즈카반의 죄수, 4부 불의 잔까지는 책을 다 읽었어요. 그리고 저도 같이 읽기 시작했죠. 큰애는 5부부터는 읽지 못했는데(방백 : 사실 5부가 엄청 길잖아요?^^) 저는 7부까지 다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는 정말 '와, 진짜 대단하다' 하는 감탄사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스토리가 어찌나 탄탄한지? 1부를 읽을 때부터 느꼈던 어색함이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중간중간, 그리고 끝에 가서는 다 해소가 되는 겁니다. 너무 엄청난 책을 본 거예요. 그 긴장과 반전을 10년 동안 꾸준히 유지해왔다는 것도 무척 놀라웠죠. 문제는 제가 그 경이로움에 압도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당시 저는 침몰 중이었어요. 글쓰기라는 바다에서 배 바닥에 뚫린 구멍을 보고도 손쓸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침몰하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의욕이 충만할 때 해리포를 읽었더라면 '나도 언젠가는 재밌는 글을 쓸 수 있겠지. 저런 글까지는 아니더라도 쓸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을 했을 텐데, 그 반대 상황이었던 거예요. 구멍을 막아야 하는데라는 작은 생각마저 앗아가 버린 겁니다. '글은 저렇게 써야 되는 거야, 넌 그녀의 손톱만큼도 못쓰잖아, 그러면서 무슨 글을 쓰겠다고, 웃기지 마. 넌 능력이 없어. 그냥 쓰지 말자.' 그런 식으로 사고가 진행 된 겁니다. 완전히 포기해버렸죠. 어떻게든 글을 써보겠다고 아등바등 대던 제가 죽어가고 있었죠. 더 이상은 쓰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선언했고,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있었어요. 그렇게 작가로서의 제 인생은 끝나는 줄 알았지요. 글을 쓰지 않으면 엄청 답답하고, 못 버틸 줄 알았는데, 못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살아지더라고요. 쓰지 않아도 살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2월 마지막 주 어느 날 제가 꿈을 꾸었어요. 꿈을 꾸면서 너무 행복했죠. 자면서도 '이건 꿈이야'라고 인식을 하면서 꿈을 꾸는 상황, 그럴 때 있잖아요. 그날 그랬습니다. 꿈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깨고 싶지 않았어요. 깨고 나서도 행복했고, 계속 떠오를 때마다 웃음 짓게 하는 그런 꿈이었죠. 바로 제가 작가가 된 겁니다. 그것도 한방 크게 터트린 작가. 사인회를 하고 있었어요. 사인회에서 제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아세요? '글 쓰는게 많이 힘들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매일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보상으로 이런 작품이  나온 것 같아요'뭐 이런 식으로 말을 했어요.(방백 : 훗, 완전 잘난척) 이건 마치 수능 만점 학생이 '교과서로만 공부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네요. 그 학생들의 심정이 어떨까? 참 궁금했었는데, 그 심정을 알게 된 듯한 기분이었어요.


이게 만약 현실이었다면 '더 멋진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니깐 괜찮네요. 그런데 곱씹을수록 저 말이 너무 멋진 거예요. 그리고 난 이미 글쓰기를 포기했는데 왜 저런 꿈을 꾸었을까? 그 꿈의 의미를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아 글을 계속 쓰라는 건가? 그냥 매일매일 꾸준히 나만의 글을 계속 써나가라는 것이구나' 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결국 저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지요. 애써 외면하던 것을 무의식이 외면하지 말라고 저를 일깨워준 것이지요. 그리고 3월에 복귀했습니다. 글 쓰는 삶으로 복귀한 것이지요.


(다음에 계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