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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Jul 23. 2022

거울(10) 충분히 바라보셨나요?

무명작가의 슬픈 독백


제가 아들만 두 명인데, 둘째 아들이 공룡을 참 좋아했지요. 그런데 그놈이 어느 날 공룡 그림을 그려 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티라노를 보고 그려줬지요.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면서 저는 앞발가락을 3개를 그렸습니다. 그러자 둘째가 "아빠, 티라노는 앞 발가락이 두 개야"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바라보니 정말 2개였습니다. 눈앞에 뻔히 있음에도 그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제야 제가 그려야 할 대상을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지요. 앞 발가락이 2개였구나, 알로 사우루스가 앞발가락이 3개구나. 뒷다리는 어떻게 생겼고, 이빨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제야 관심을 갖고 자세히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연필인물화를 배울 때였어요. 저는 휙휙 손을 빨리 놀리고, 거칠게 표현하면서 빨리 면을 채워나갔는데 선생님은 그리고 다른 수강생들은 천천히 공을 들여서 칠하더군요. 저는 처음에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는데, 누군가는 10시간을 걸리기도 했지요. 선생님도 보통 서너 시간은 걸린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1시간 만에 그리는 사람은 좀 더 공을 들여서 시간을 4시간 전후로 늘리고, 8시간이 넘게 걸리는 사람은 좀 더 빨리해서 5시간 이내로 줄이라고 말하셨지요.


저는 제가 그림을 정말 못 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그림을 잘 그린다. 또는 못 그린다는 나중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것들을 논하기 전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 우선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것으 바로 관찰과 인내입니다. 충분히 쳐다보지 않고 대충 쳐다봅니다. 공을 들여서 마땅한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대충 끝내버립니다. 그림을 그림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는 빼먹고, 그나마 그리는 것도 대충 휙휙 그려버린 것입니다. 그러고는 좋은 그림을 보면서 "어떻게 저 사람은 저런 것까지 표현하지?"라고 말하며 부러워했고, "난 그림을 못 그려"라고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의 관찰과 인내를 저는 몰랐었습니다.


이렇듯이 관찰과 인내는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그게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알고 계시는 분도 있겠지만, 모르는 분이 적어도 한 명은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제가 꼭 쓰고 싶은 표현 아니 묘사가 있는데 바로 저녁노을입니다. 저녁노을의 변화를 글로 아름답게 제대로 표현해 보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쓰려고 생각을 할 때마다 안 써지는 거예요. "하늘이 붉게 변했다. 구름이 붉게 물들었다. 서서히 어두워졌다." 이 정도 표현밖에 안 나오는 겁니다. 뭐가 문제일까 고민을 하다가, 저는 그림을 배울 때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노을을 충분히 바라본 적이 있는가?"


노을을 충분히 바라본 적이 있는가? 아뇨 적어도 제 기억 속에는 노을을 길게, 관심 있게 바라본 적이 없습니다. 노을을 보고 "아 예쁘다."라고 생각하고 그냥 쳐다보기만 했지,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쳐다본 적은 없었습니다. 다른 곳을 바라보며 딴짓을 하다가 다시 쳐다보고는 "노을이 변했네.", "조금 어두워졌네" 그런 것을 인식했을 뿐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같은 장면을 그리기 위해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에 몇 날 며칠을 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의 햇빛과 같은 빛을 찾기 위해서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이지요. 자신이 표현하려는 그 한순간을 위해서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르는 우직함을 우리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저는 맹세코 단 한 번도 노을을 깊게 쳐다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저는 제가 노을을 글로 표현하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된 것입니다. 충분히 보지도 않고, 멋진 표현을 하려고 한다. 이건 정말 도둑놈 심보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대상을 충분히 바라보는 것은 관찰에도 해당이 되지만, 그것은 관심에도 해당이 됩니다. 관심을 갖고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해야 보이는 것입니다. 그 후에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겠지요. "잘 쓰고 싶어"라고만 생각했을 뿐, 저는 "잘 알고 싶어"라던가 "잘 보고 싶어"라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강원국 작가는 글쓰기에 필요한 3관을 이야기합니다. 관심, 관찰, 관계가 바로 3관입니다. 3 관중에 시간은 관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하면서 주변을, 주변 사람을, 주변 사물들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글 쓰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능력은 재능일까요? 노력일까요? 저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생각하고 싶습니다. 왜냐면 재능이라고 한다면 저는 글쓰기를 그만둬야 하거든요. 노력으로 충분히 기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림을 배우면서 다른 주변을 보는 눈이 길러진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글만 쓰는 것으로는 그 능력이 발전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여러 분야의 책을 읽는 것도 일종의 노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을 쓸 때, 혹시 묘사가 부족하다던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하다면(독백 :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되냐?)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세요. "충분히 바라보았나요?"라고. 충분히라는 단어가 주는 시각적 개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아니 분명히 다릅니다. 그 충분히는 단순히 긴 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심을 가지고 깊이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충분히 바라보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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