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세처럼 Feb 23. 2023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2-5), 첫 연주 폭발하는 줄

"다음 순서는 시크릿 게스트입니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나서 처음 서는 자리인 만큼 많이 떨릴 것 같은데요. 다시 미흡하더라도 큰 응원 부탁드립니다. 연주 곡명은 '언제나 몇 번이라도'입니다. 헤세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큰 웃음과 박수소리가 울린다.)


헤세는 피아노 옆에 가서 바이올린을 어깨에 받친다. 오십여 명의 관객이 그를 쳐다보고 있다. 손이 떨린다. 활을 현에 댄 순간 손의 떨림이 그대로 활로 전해진다. 반주하는 학생이 연주를 시작한다. 악보를 보며 기다린다. 순서가 되었다.

"파솔라파도라 솔도솔 파레라...... (으악. 솔을 짚었다.)"

음을 잘 못 짚었어도 그냥 연주하면 되는데, 반주자와 처음 하는 연주라 그런지 그걸 자연스럽게 하지 못한다. 음악을 멈추었다.

"아하하하"

"괜찮아"

"선생님 잘하실 수 있어요."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여러 선생님과 학생들의 응원소리가 들린다. 아니 응원소리 같은 소리가 들린다. 헤세는 멋쩍어서 웃음을 흘린다. 몸을 돌려 무대 뒤를 쳐다본다. 반주자와 눈을 맞추고 다시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되었다.

"파솔라파도라 솔도솔 파레라파미 도레미파솔 도파 솔라.... (으악 또 틀렸다.)"

그냥 가야 하는데, 또 멈췄다. 1차 시도 때보다 더 큰 웃음소리가 나온다.

"괜찮아, 괜찮아"

더 큰 웃음과 더 큰 응원과 더 큰 박수가 나온다.


(으 더 이상 틀리면 안 되는데... 세 번째 반주가 시작되었다.)

"파솔라파(으악 트렸다. 그래도 바로 다시)"

"파솔라파 도라 솔도솔 파레라 파미~~~"

이번엔 앞부분에서 틀려서 바로 다시 시작했다. 두 번은 멈출 수 있지만 세 번을 멈출 순 없었다. 그나마 두 번까지는 관객들도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지만 더 이상 멈추면 화를 낼 수도 있다. 잠깐 멈칫했지만, 바로 시작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문제는 되었지만, 그걸 무시하고 그냥 연주했다. 그걸 넘어서서 일까? 약간 위태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그냥저냥, 어찌어찌, 이러쿵저러쿵 연주를 해나갔다. 손이 부들부들 떨면서 음이 불안정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안정을 되찾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제법 괜찮은 소리가 나왔다. '이대로 마무리하면 되겠다'라고 안심한 순간. 머리에 쓴 머리띠가 흘러내린다.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것으로 음악을 멈출 수 없기에 그냥 연주를 이어서 한다. 그리고 끝까지 연주를 마친다. 연주가 끝나자 큰 함성과 웃음과 박수가 쏟아져 나온다. 얼굴이 빨개진 헤세는 반주자와 함께 인사를 하고 복도로 나간다.


"크리스마스 작은 음악회"

학교 기악반 동아리 학생들이 준비한, 음악실에서 열린 정말 작은 음악회였다. 음악선생님과 친해서 점심시간에 산책을 같이 하곤 했는데, 12월에는 작은 음악회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내심 같이 하고 싶었지만, 먼저 하겠다고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먼저 나가겠다고 했다가 연주를 못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다행히도 산책을 하던 어느 날 음악선생님이 "헤세 샘도 연주회 나가실래요?"라고 말했다. 유레카. 아싸라비야. 마음은 바로 오케이였지만, 짐짓 "제가 해도 될까요? 민폐가 되면 어쩌나?"라고 말했다. "아뇨 괜찮아요. 선생님이 하면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좋아요. 그러니깐 꼭 하세요."그렇게 헤세의 참가가 결정되었다.


헤세의 참가는 일급비밀이었다. 헤세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아는 몇몇 학생들은 짐작을 하는 것 같았으나 서로 말을 꺼내진 않았다. 헤세의 참가를 아는 람은 음악선생님과 피아노 반주 학생뿐이었다. 학생들 시험 기간과 겹쳐서 반주 학생과는 1주일밖에 연습을 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딱 4일뿐이었다. 게다가 공연 전날에 레슨을 받으면서 운지법과 활 긋는 방법을 바꾸기도 했다. 수 백 번을 연습한 곡이었기에 바뀌는 연주법을 따라 할 순 있었다. 공연 전 주에 선생님께 말하고 미리 레슨을 받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질 못해 아쉬웠다. 어쨌든 4일간의 연습, 그리고 공연 전날 바꾼 연주법. 이걸 소화시키기 위해 당일 아침부터 맹연습을 해야만 했다.


1교시부터 반주하는 학생을 불러서 연습을 했다. 바뀐 연주법이 헷갈리긴 했지만 소리가 더 좋았기에 집중해서 했다. 같이 온 다른 두 학생이 영상을 찍어준 영상을 봤는데 이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안심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몰랐다. 그렇게나 긴장을 할 줄은 말이다. 우리 팀 말고 다른 학생들도 리허설을 하러 왔는데, 한 학생이 "거봐요 선생님 맞으시잖아요. 선생님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전날에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바이올린 하시죠?"라고 물어봤을 때, 모르쇠로 일관하며 시치미를 뗐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전에 3시간 동안 리허설을 하면서 참 많이 설레었다. 이렇게 기쁜 설렘이라니, 너무나 행복했다.


점심을 먹고 음악실로 향했다. 마치 관람을 온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학생들이 오지 않을까 봐 음악선생님과 걱정을 했었는데, 시간이 되자 많은 학생들이 왔다. 게다가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 부장님들, 여러 선생님들이 오면서 점차 헤세의 멘탈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회를 보는 학생의 개회 선언으로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처음 팀은 바이올린, 피아노, 해금 합주. 두 번째 팀은 피아노 협연이었다. 두 팀이 너무 공연을 잘해서 헤세는 긴장이 된다. 본인이 망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떨쳐내려 애쓴다. 바이올린을 들고 대기하는 헤세를 보며 주변 학생들이 의아하는 놀람의 눈빛을 보낸다. 사회자의 소개에 헤세가 바이올린을 들고 앞으로 나간다. 심지가 곧 다 타버리기 직전의 폭탄과 같은 심장을 애써 부여잡은 채.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2-4), 어라 좋아졌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