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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May 25. 2023

나의 오티움 바이올린(2-6) 새로운 도전의 성공

40대 아저씨의 바이올린 세레나데

"기회가 닿는 대로 대중 앞에서 연주하라"는 바이올린 10 계명 중에 9계에 해당되는 말이다. 전공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말이지만, 그것이 전공이 아닌 취미일지라도 이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옮기고 옮긴 학교에서도 음악실을 빌려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음악선생님께서 5월에 있을 학교 축제에 특별공연을 해달라고 처음 부탁을 했을 때, 고민을 하다가 이 문구를 보고 결국 하기로 결정을 했었다.

몇 년 동안, 아니 처음 바이올린을 배울 때부터 연주했던 "언제나 몇 번이라도"를 하면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작년에 연주를 하긴 했었지만, 학교가 바뀌었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성장하는 쪽을 택했다. 새로운 노래를 도전하고 싶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 '캐논 변주곡'을 하기로 결정했다. 레슨샘에게 캐논변주곡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고. 연습을 시작했다.


원본 버전의 다소 긴 곡을 마침 배우고 있었지만, 공연용으로는 너무 길다는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제니윤의 버전으로 연습하기로 했다. 몇 년 전에 한번 배운 적도 있는 곡이기에 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달간 미친 듯이 연습을 했다. 매주 레슨을 받으며 하나하나 고쳐나가고, 새로운 걸 배워나갔다. 그리고 비브라토와 3-포지션을 실전에 쓰기 위해서 계속 다듬어 나갔다.


비브라토와 써드포지션은 내가 바이올린을 배울 때부터 꼭 배우고 싶었던 것들이다. 이것들을 언제 배우나 언제 배우나 했었다. 어느 날 '오늘은 비브라토 들어갈게요'라고 말할 땐 얼마나 기뻤던지. 그러나 비브라토를 배우는 건 가뭄에 콩 나듯 가끔씩 했다. 잠깐 하고 몇 주 후에 잠깐 하고, 이걸로 되나 싶었는데, 웬걸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하던가 어느 순간 비브라토를 하고 있는-비록 완벽하진 않지만-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도 실전 공연을 목표로 연주를.  


단 2분의 공연을 위해서, 내가 들인 시간은 그 몇 백 배, 아니 몇 천 배에 달한다. 매주 레슨샘에게 지적을 받은 것을 1주일 동안 연습하며 고친다. 절대 외워지지 않던, 그래서 외울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부분이 어느새 머리에 자리를 잡아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아니 머리가 기억한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한 것이겠지. 그렇게 두 달을 보냈다.


연주회 당일, 으악 음악샘이 코로나에 걸려 학교에 나오질 못했다. 공연을 다음 주로 미루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오늘 하고 싶다고 해서 그냥 하기로 결정되었다. 나는 무반주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으, 어쩌지. 한 학생에게 반주가 없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더니, 밴드부에서 피아노를 치는 학생을 데려왔다. 악보를 보고 급히 맞추기 시작했다. 1시간은 음악실에서, 1시간은 시청각실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시간. 2시간에 합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반주하는 학생이 초견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냥 혼자해야'하나라고 생각을 했지만, 두 번 세 번 치는 동안에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배운 학생은 다르다. 그 친구와 같이 맞추기 시작했다. 좀 어려운 부분은 박자만 맞춰주기로 하고, 약간의 변형도 주고 하면서 2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못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짧은 음악제였기 때문에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보컬, 댄스팀, 보컬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 난 공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심장이 두근두근 점점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마지막 학생의 공연이 끝나고 사회자가 나를 호명했다. 글쎄 학교에 숨어있는 바이올린 천재라나? 뜨악했다. 어쩌려고... 어쩌려고.. 무대에 나가는 동안 학생들의 엄청난 호응이 있었다. 그저 고마을 뿐..^^.


피아노가 준비되는 동안에 난 아이들에게 멘트를 날렸다. 잘해서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라 좋아해서 온 거라고. 그러면서 잘 들어달라고 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은 것은 다 내 긴장을 풀기 위해서였다. 본 공연을 하기 전에 동요를 하나 넣었다. 동요를 넣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나의 긴장도 풀고, 아이들에게 재미도 부여하고. 공연이 끝나고 한 아이가 말하길 '동요가 나와서 뭔가 했었어요. 근데 두 번째 곡에서 놀랐어요. 역시." 나비야를 했는데 중간에 따라 부르는 아이들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첫 번째 곡이 끝나고, 잠시 멘트를 하고 두 번째 곡을 부른다. 두 번째 곡은 말했듯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인 캐논 변주곡. 전주가 흐르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온다. 나의 연주가 시작된다. 손이 떨리지만 끝까지 밀고 나간다. 처음 연주회를 할 때는 음이 틀리면 멈췄었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비록 음이 맞지 않아도 제자리에서 끝까지 연주를 했다. 열심히 준비한 비브라토는 거의 하지 못했다. 손이 너무 떨려서 할 수가 없었기에 연주를 제대로 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비록 중간에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끝까지, 그러니깐 처음부터 끝까지 한큐에 끝냈다. 나비야도 캐논 변주곡도 모두 말이다. 혼자서 연습을 할 때도 끝까지 한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음악선생님과 합을 맞출 때도 급하게 반주를 맞춘 학생과 할 때도 손가락을 잘 못 짚어서 머뭇거리고도 했었는데. 본 공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손가락을 제대로 짚으면서 한 번에 해낸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멈추지 않고 끝까지 하기"가 나의 가장 큰 목표였고, 내게 그 경험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비록 연주가 조급했던 감이 있고, 너무 긴장해서 음이 떨리긴 했지만, 나는 나에게 그것을 선물했다. 이것은 분명 내 노력의 결과이다. 하나의 공연을 마치고 나면, 그만큼 성장하기 마련이다. 공연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주고 공연을 하면서 그 발판을 딛고 벽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동안 노력한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잘했어 헤세야.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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