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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Jan 29. 2023

손 참 많이 간다 많이 가

집고양이에게 위험한 물건들

4냥꾼 캣브로, 일흔일곱 번째 이야기




쇠똥구리, 아니 누에라고 해야 되나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마끼의 엉덩이에 공 모양의 무언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마끼의 걸음을 따라 시계추처럼 바삐 흔들렸다. 공처럼 보이는 그것의 색깔은 짙은 갈색이었고, 하얀 실을 통해 마끼의 응꼬와 연결되어 있었다. 의심은 이내 초조함이 되었다. 실을 먹었구나.


혹시라도 긴 실을 삼켰으면 큰 문제였다. 장에 꼬여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잡아당겼다가는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실의 길이를 가늠해 보았다. 다행히도 옷에서 떨어진 짧은 조각 같았다. 조금이라도 걸리면 바로 병원에 데려갈 심산으로, 버둥거리는 녀석을 잡고는 살살 실을 뽑아 보았다. 1cm도 안 되어 응꼬가 물고 있던 나머지 부분이 뽑혀 나왔다. 안도가 되었다. 마치 쾌변을 한 것처럼 상쾌한 기분은 덤이었다.


사고를 치다 치다 이제는 똥으로 경단을 빚는 경지에 오른 마끼를 보며 기가 찼다. 이 쇠똥구리 같은 녀석. 아니, 누에 같다고 해야 되나.


짧은 실이었기에 망정이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하다. 고양이의 존재 목적은 집사를 괴롭히는 데 있는 걸까. 훈육하고 설득하느니, 더럽고 치사해서 그냥 내가 좀 더 움직이련다. 그게 집사의 존재 목적이니까. 거참 손 참 많이 간다, 많이 가.


사방이 지뢰밭


진상 고양이의 못된 손장난에 망가진 물건은 고치거나 다시 사면 그만이다. 그러나 냥이 동생들이 사고로 다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길고양이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로 일축하겠지만, 풍족하고 따뜻한 숙식을 제공하는 이 천국 같은 보금자리에도 크고 작은 위험 요소들이 숨어 있다. 안락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보다 위험하지 않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집고양이에게 치명적인 대표적 물건들을 정리해 보았다.


인덕션: 청소가 쉽고 깔끔한 디자인 덕분에 점점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인덕션. 그런데 종종 안타까운 사고가 들려온다. 반려동물이 인덕션 스위치를 누르는 바람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다. 개보다는 유독 고양이가 있는 집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대형 사고도 이런 대형 사고가 없다. 반드시 화구 잠금 기능이 있는 제품을 사용하자.


전기난로: 인덕션과 함께 반려동물로 인한 화재 사고의 양대산맥이다. 난로 앞에서 멍 때리는 고양이의 꼬리에 불이 옮겨 붙기도 하지만, 우다다에 넘어진 난로의 불이 가연물에 옮겨 붙기라도 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추운 날씨가 걱정되겠지만 그래도 외출 시에는 반드시 난로를 꺼 두고 나가자. 고양이가 들어가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두텁고 포근한 이불 하나만 준비해 두어도 충분하다.


겨울철 난방비에 휘는 허리를 조금이라도 펴 보고자 스탠드형 전기난로를 사용한 지 꽤 되었다. 바닥에서 난로가 조금만 들려도 바로 전원이 차단되는 제품으로 구입했다.


실, 치실, 머리끈: 끈이라면 환장하는 우리의 냥이들.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직 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음이 아프지만 차라리 내 마음이 아픈 게 낫다. 삼킨 실이 장폐색을 유발하여 수술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은 물론, 뒹굴거리며 가지고 놀던 실이 목에 뒤엉킨 상태에서 질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늘이 달려 있는 실을 삼키는 경우도 있다! 집사의 감독 아래 실뭉치를 가지고 노는 것도 가능하지만 다른 장난감들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선호하지 않는다.


낚싯대 장난감: 고양이들의 최애 아이템 낚싯대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정말? 그렇다. 집사가 흔들어 주어야 관심을 보이기에 다른 물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성은 덜하지만 방치된 낚싯대 역시 위험할 수 있다. 실과 마찬가지로 목에 엉킬 수도 있고, 보통 낚싯대 끝에 달린 쥐돌이나 깃털 같은 미끼(?)를 삼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겠지만, 낚싯대도 고양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귀걸이, 단추(뾰족하고 작은 물건들): 말해 무엇 할까. 벌레건 물건이건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우리의 냥이들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 뾰족하고 작은 물건들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있는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위험한 물건들이다. 특히 귀걸이는 어디에 잠깐이라도 올려두지 말고, 반드시 보관함에 보관하도록 하자.


"기억나니 마끼야. 오빠도 귀걸이를 하고 다녔던 때가 있었단다. 그래... 그땐 우리 모두 어렸지..."


전선: 전선은 쥐나 갉아먹는 줄 알았는데... 고양이도 그렇다. 정확히는 물어뜯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츠동이도 비싼 헤드셋 하나 해 먹은 적이 있다. 집고양이에게는 드문 일이지만 감전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습관적으로 전선을 물어뜯는 녀석이 있다면 전선 보호 커버를 씌워두는 것이 좋다.


균형이 맞지 않는 모든 가구들: 모름지기 고양이란 체조 선수 같은 녀석들이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균형이 맞지 않는 가구 또한 위험할 수 있다. 고양이의 힘찬 도약과 함께 가구가 넘어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고양이가 발을 헛디뎌 크게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 높은 곳에 임하고자 하는 우리 고귀하신 냥이들 덕분에 난 모든 일에 균형을 중시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쯤 되니 고양이에게 위험한 물건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물건에 위험한 존재인 것만 같다. 험난한 세상 속, 너희들의 안전은 이 몸이 책임질 테니 형아 물건들은 제발 건드리지 말아 주라. 부탁한다.


오랜만에 글을 쓰는 형아가 신기한 루비. 꾸벅꾸벅 졸면서 잘 쓰고 있나 감시 중이다. 전기난로 앞에서 얼쩡대다가 꼬리를 태워 먹은 고양이... 그게 바로 루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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