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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Jul 03. 2021

파괴왕 츠동 - 모든 걸 파괴한다

고양이 기물 파손

4냥꾼 캣브로,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테이블 위에 놓인 컵이 이유 없이 기분 나쁘다. 괜히 컵을 노려보다 마주친 집사의 눈빛이 불안하다. 집사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려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나랑 뭔 상관이람. 그나저나 심심한데 앞발로 컵이나 한번 쳐 볼까.


에라! 나와라, 냥냥펀치! 퍽!


툭.


쨍그랑.


오~ 컵 깨졌다~!


츠동 the destroyer! 재산 손괴의 마술사! 냥아치들은 집사를 괴롭히는 다양한 재주가 있다. 특히 4냥이 중 츠동이는 집사의 지갑을 가볍게 만드는 데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마끼가 끊임없는 탈출 시도로 캣브로를 괴롭게 한다면, 츠동이는 주체할 수 없는 파괴 본능으로 실질적 손해를 입히는 스타일이다. 고양이도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면 츠동이는 2년 이하 징역이다. 죄목은 기물 파손. 반성의 기미가 없으므로 괘씸죄 추가. 그리고 아내의 마음을 훔쳐간 죄로 가중 처벌. 하지만 귀여움을 정상 참작한 아내 덕에 결국 훈방 조치!


사실 츠동이의 경우, 다분히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넘치는 힘 탓에 일어난 사고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동기가 결과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경위가 어쨌건 쓰린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발톱에 할퀴인 손이야 밥 먹으면 낫지만 물건은 돈이 든다. 고칠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다. 마음속 고통의 크기는 부서진 물건 가격에 비례한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두 말하면 잔소리. 츠동이의 사건 사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응? 내 얘기 하나?"


츠동이의 파괴 본능이 발현되기 시작한 건 당시에는 여자 친구였던 아내가 자취할 때였다. 같이 있었다면 아주 혼쭐을 내 주었을 텐데 아쉽게도 캣브로는 늦은 입대로 나라를 지키고 있었다. 아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사건은 바로 전기밥솥 사망 사건이다. 세상에, 자취생의 전기밥솥을 건드리다니. 해도 해도 너무했다. 사건은 이랬다. 어렸지만 덩치와 힘만큼은 성묘 못지않았던 츠동이가 신나게 까불면서 놀다가 선반에 있던 밥솥을 시원하게 걷어차 버린 것이다. 아내는 와장창 깨지는 소리에 사고가 난 줄 알았더랬다. 사고가 나기야 났지. 집 밖이 아니라 집 안에서.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밥통을 부여잡고 아내는 어땠을까. 서러움, 아니면 분노를 느꼈을까? 희극적 상황에 실소를 했을까? 아내는 그때의 감정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쨌든 이후 화분을 비롯해 아끼는 옷까지 몇 벌 버리고 나서 아내는 큰 교훈을 얻었다. 물건은 적을수록 좋다! 암, 이 호탕함에 반해 결혼했지. 그렇게 우리는 (반강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한번은 술에 취해 동생과 함께 옷장을 열고 소변을 보려 했던 적이 있다. 아내는 츠동이가 우리보다 낫다고 했다. "내가 형아보다 더 낫다구!"


이번엔 냥이 한 마리와 평화롭게 지내고 있던 친구가 파괴지왕의 등장으로 숨질 뻔한 이야기이다. 아내가 집을 일주일 정도 비우게 되면서 집사였던 내 친구에게 츠동이를 맡기게 된 적이 있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책꽂이 위에 올라 세상을 호령하던 츠동이가 갑자기 펄쩍 뛰어내렸는데, 그 반동으로 책꽂이가 통째로 넘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침대에 있던 친구는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순간 빗발치는 책들의 포화 속에서 친구는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거대한 책꽂이가 상 위에 놓여 있던 노트북을 아슬아슬하게 빗겨간 것이다. 무엇보다 다행인 점은 상 밑에서 자고 있던 친구의 냥이도 무사했다는 것이다. 친구는 좀 다쳐도 된다. 밥 먹으면 나으니까.


츠동이가 입힌 재산 피해 중 가장 큰 것은 컴퓨터 모니터이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거금을 주고 샀지만 츠동이 덕분에 얼마 쓰지도 못하고 버려야 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외출 후 집에 먼저 들어간 아내가 방문을 열더니 비명을 질렀다. 방에 들어오려는 나에게 아내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했다. 무서웠다. 혹시 츠동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형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대하라구!"


방으로 들어갔다. 소중한 모니터가 처참하게 박살나 있었다. 츠동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는 개뿔. 모니터 뒤 비좁은 공간에 들어가겠다고 난리를 피우다 모니터를 쓰러뜨린 것이 분명했다. 츠동이는 배를 까뒤집고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천진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잠깐 고양이로 변하든 반대로 츠동이가 사람이 되든 누군가 우리를 동등한 조건에서 한 번만 치고 박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츠동이는 이제 컴퓨터 본체 위에서 쉬면서 모니터 모서리를 씹는 것으로 만족한다. “츠동아 네가 생각해도 모니터 뒤에 숨기엔 조금 크지 아마?” 이제 물건은 안전하겠군. 잘못 생각해도 한참을 잘못 생각했다. 성묘가 된 츠동이는 더욱 강력한 파괴신이 되어 돌아왔다. 스파이더맨의 삼촌이자 멘토인 엉클 벤은 말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 멋진 말을 집사 버전으로 바꿔 보았다. 큰 고양이는 큰 사고를 친다. 파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츠동이가 자란 만큼 더 큰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모니터가 좀 달다." "츠동아, 너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야... 덩치가 크다고... 그리고 너는 아기 때부터 원래 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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