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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Jan 23. 2023

나비의 책임

카오스이론

  생각 없이 말하는 경향이 있다. 연상되는 것을 그저 툭툭 내뱉는 것이다. 그러다 가끔 누군가에게 혼날 때면 나는 나비를 새긴다. 또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켰구나. 내뱉은 말이 내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새삼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깨닫는다.

  글쓰기 오픈채팅방에서 그랬다. 내 피드백을 듣고 그 점이 진짜 별로인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말의 영향력을 새삼 체감했다. 쉽게 말 내뱉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언제는 합평회에 참여했다가 하차한 적도 있었다. 가볍게 던졌던 모든 말이 누군가를 무겁게 짓누르리란 생각 탓이었다. 하지만 합평회를 한다고 말했으니 합평문을 내야 했다. 그러나 언어의 무게에 짓눌린 나는 마감일 전날까지 단 한 자도 쓰지 못했다. 나는 의무를 다할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책임지지 못 할 말을 해서 사람들이 나를 떠날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무서워졌다. 

  상대를 선역으로 두자 그에게 실망을 안긴 나는 악역이 되었다. 나를 채찍질하고 벌하려는 생각에 자해했다. 결국 응급실에 갔고 그렇게 두 번째로 입원했다.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대학병원은 그대로였다. 시스템도, 사람들도. 다만 헤어스타일은 조금씩 바뀌었더라. 그 모습이 귀여워서 혼자 쿡쿡 웃었다. 잘 지내는 것 같더니 왜 다시 왔냐고 보호사 선생님이 물어봤다. “그러게요….” 잘 지내는 것 같더니 다시 입원한 나처럼, 내 표정은 금방 울상이 되었다.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선생님이 작성해달라며 설문지를 가져오셨다. 설문지를 쓰면서 나는 금세 울적한 기분을 떨칠 수 있었고, 주치의를 만나고서야 본격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시설은 모두 그대로였다. 병실도, 복도 안내판에 붙은 오타도, 피아노도 모두. 반가우면서도 싫었다. 다시 이 시설들을 마주해야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내가 꼭 다 낫지 못한 것 같아서. 그것만 빼면 달리 말해서 반가웠다. 내가 밖에서 아무리 굴러도 이 시설들은, 선생님들은 그대로일 테니까. 사람은 떠나기 마련인데 제자리를 지키는 존재가 있다는 건 아무래도 위안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위안이 되는 정신병동에 있으며 가장 무서웠던 것은, 내가 생각보다 정신병동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연했다. 1년 전에도 이곳에 왔었고 1년 동안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이 병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건 너무 당연했다. 그렇지만 의사도 아니면서 의사 같이 행동하게 되는 내가 무서웠다. 나는 책임지기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책임질 힘도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행동하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책임지기 싫어하면서 책임질 일을 벌이는 내가 아이러니했다. 책임도 못 지면서 말하는 건 쉬우니까, 들어주는 건 쉬우니까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조언해줬다. 

  그러다가 언제는 그런 말을 듣기도 했다. 가끔은 고맙다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는 내가 고마운데 그만큼 내가 쉬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하는 간호사가 있었다. 그가 말하는 ‘가끔’에 대해 생각했다. 가끔 그들의 일을 빼앗는 걸까? 심지어 주치의까지 나에게 “월급을 나눠드려야겠어요.” 하며 농담할 때는 기쁘면서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 걸까? 비약 같지만 실제로 나는 내가 의사라고 착각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남들을 ‘상담’해준다고 나설까 봐 두려웠다. 아무런 지식도, 자격도 없으면서.


  3주에 한 번씩, 실습생이 바뀌었다. 그들에게 이 병동에 대해 설명해줘야 할 레지던트 선생님은 대개 ‘전 조에게 설명 들었죠?’라는 말로 퉁쳤다고 했고, 자연스레 적응을 위한 설명은 붕 뜨게 되었다. 어리버리하게 돌아다니며 ‘이건 뭐지?’하는 시선으로 이것저것 바라보는 그들에게 다가가게 된 것은, 단지 친해지고 싶어서였다. 

  “여기는 저희가 노는 곳이에요. 여기는 병실인데, 병실 이름표는 침대 자리랑 같은 위치에 붙어있어요. 그리고 여기 이름표에는….” 나는 신이 나서 설명했고, 그러면 실습생들은 좋아했다. “어떻게 이런 걸 잘 알아요? 꼭 선생님 같아요.” 나는 으쓱했고 동시에 무서웠다. 권한이 있다는 건 그만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뜻이었다. 

  내 설명이 잘못된 것이라 나중에 실습생 선생님들이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면 어떡하지? 물론 그럴 일이 생기지 않게 이곳의 시스템이 허술하진 않았겠지만, 나는 그게 무서웠다. 그래서 내가 책임져야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이러다 사고를 치면 어떡하지? 그러면 모두가 나를 쳐다볼 텐데. 시선이 두려웠다. 그 시선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더 무서웠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좋아했지만 책임지는 건 싫었다. 가르치고, 가르친 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보면 뿌듯했다. 하지만 가르친 대로 움직여서 실수를 한다면, 그래서 내가 혼나야 한다면, 그건 싫었다.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저 쌤이 그러라고 했어요.’ 한 마디면 나의 잘못이 되는 게 싫었다. 

  세상에는 책임 져야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자진해서 입원했다. 바깥에는 변수가 많아서 내가 사소한 말도 큰 책임이 되어 돌아왔다. 나비효과. 작은 날갯짓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병동은 제약된 공간이었다. 변수가 통제되어 있는 공간이었고, 내가 질 책임은 없는 공간이었다. 자유는 누리고 싶고 책임은 회피하고 싶은 나에게 이런 공간만큼 달콤한 공간이 또 어디 있을까?


  나에게 책임을 진다는 건 큰 벌을 받는다는 것과 동치이다. 아무도 혼내지는 않겠지만 죄책감은 나에게 책임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책임질 수 있어?’라는 말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다. 내가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한 일 때문에 큰일 난 적 있냐고 묻는다면, 없다. 정말 별 일 없었다. 근데 정말로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나는 환자들에게도 조언해준 적이 참 많다. 그 조언은 대개 방어적이었다. ‘그런 건 주치의한테 묻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같은 말이나, 주치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주치의를 믿을 수 있게 이 정신과 시스템에 대해 말을 얹은 적이 있다. 그런 순간들이 정녕 큰일을 만들지 않은 것인지 궁금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얹은 것은 아닐까.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너무 쉽게 말한 것이 아닐까. 

  내가 말한 것 때문에 믿어선 안 될 사람을 믿게 되었다면 그건 나의 책임이 아닐까? 내가 말한 것 때문에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꼬인다면, 그것은 내가 책임져야하는 일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내 탓인 것 같은 일이면 시선이 꽂혔다. ‘괜찮으세요?’ 하고 묻는 말에 동정하냐며 화내는 사람을 보며 정말 ‘그런가?’하며 죄책감을 가졌다. 그것이 설령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어도 그랬다. 하지만 미안하고 그만이었다. 다음에 다시 안 그러면 되지, 내가 지금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돌이킬 수 있겠어, 그런 생각이었다. 

  모든 현상은 비가역적인데, 원상복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책임은 원상복구를 할 수 있어야만 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런 생각이 나를 자꾸 책임에서 멀어지도록 만들었다. 내 능력 밖의 일이라며 회피한 것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상대의 화를 받는 것이 책임지는 것이라는 그릇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 화를 내고 화를 내서 풀리지 않으면 책임을 지지 못한 것이다.


  그런 나를 보고 주치의가 말했다. “그건 가스라이팅이에요. 자기 자신에게도 가스라이팅 할 수 있어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누군가 화를 내면 풀릴 때까지 저자세로 기다리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책임을 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화가 풀릴 때까지 저자세로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 나는 뭐라고 말했을까? 왜 자발적으로 감정쓰레기통이 되냐고 물었을 것 같다. 근데 그러한 행동을 내가 하고 있었다. 

  상대가 나와 대화할 의지가 없거나 화해할 생각이 없으면 어쩌냐며 주치의는 답답함에 나를 타박했다.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그러게요.”하고 말았다. 이런 문제도 있었지만, 반대로 화를 내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화내는 게 감정을 푸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방식은 못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피해보상을 위해서는 원상복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때부터 이미 ‘책임’을 어렵게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정중하게 사과하고 재발하지 않게끔 노력하는 것이 어떻게 책임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걸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사과해도 이미 다친 마음은 치료가 되지 않는데 어쩌지. 

  주치의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 사람 몫을 내 몫으로 안지 말라고. 회복을 하는 건 그 사람 몫일지도 모른다. 나비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어디까지가 그 사람 몫이고 어디까지가 내 몫일까. 그것을 명확히 할 줄 알아야하는데 나는 자꾸 나를 지키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며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내놓는다. 하지만 그것은 내 최선의 책임이었어요. 

  어쩌면 이 글은 나를 항변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닐까 싶다. 익명의 누군가는 내게 자기연민을 내려놓으라고 말했지만 아직 나는 그러기에 성숙하지 않은, 비겁한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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