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미술관 <구본창의 항해>
새해가 시작한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올해의 출발은 어떤가? 작년 하반기엔 글쓰기를 도전했다. 전시를 보거나 그림을 보고 끄적거린 글을 모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하니 ‘내 글을 계속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이왕 쓰는 글 좀 더 재미있고 읽기 쉽게 쓰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많은 글과 그림이 쏟아지고, 대단해 보이는 결과물과 대조되는 나의 글에 시무룩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의 힘을 믿는 방법으로 마음을 도닥여본다.
그리고 마치 배에 탑승하는 마음으로 서울시립 미술관 <구본창의 항해>를 다녀왔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던 시기에 태어난 구본창 작가, 유년 시절부터 사물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섬유회사에 재직하시던 아버지가 해외 출장길에 가져온 기념품부터 쓰다 남은 비누까지 수집했다.
*호기심의 방은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했던 실내 공간을 의미한다.
예술가의 감각은 섬세하다. 주변을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는 구본창 작가만 봐도 그렇다. 감각이 유별나서 수집하게 된 건지, 수집하다 보니 감각이 유별나지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최근 집 안을 정리하며 ‘필요 없는 거 다 버려!!!’를 시전했는데, 어쩌면 작가에게 유년 시절부터 차곡차곡 모은 수집품은 엄청난 영감의 원천이겠다 싶었다.
작가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 했지만, 1979년 독일 함부르크 국립 조형 미술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85년에 귀국했다. 한 작가의 회고전을 볼 때면 책을 읽는 것보다도 더 입체적으로 작품세계를 경험하고 올 수 있다. 영사기에 돌아가고 있는 필름 사진 중 유리창에 비친 대상을 포착했던 작품에 눈길이 갔다. 어딘가에 반사되어 보이는 대상의 모습은 꼭 낯선 곳에 자리한 이방인 같은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했다. 작가의 대학 시절 과제물과 편지를 보면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한국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과감함과 열망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했다.
워커힐 미술관에서 열렸던 <사진 새 시좌>전은 영상언어에 익숙한 세대의 참여 작가들이 '이전 세대의 사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국제적인 사진의 식견을 가지면서 투철한 시대의식을 소유했고, 귀국 후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에서 다시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분출하는 작품을 제작한다.
1992년 신문에서 나비학자 석주명의 기사를 접한 이후, 작업의 대상을 보편적 인간에서 곤충, 동물 등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로 확장한다. 그즈음에 소식을 접했던 전쟁, 재난을 반영해 <재가 되어버린 이야기> 시리즈를 제작한다. 이러한 무거운 주제를, 인화지를 불에 태우고 그을려서 표현하거나, 포토그램 기법 등 실험적 방법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숨> 시리즈에서는 오랜 시간 병상에 계시던 아버지의 육체에서 수분이 점점 빠져나가는 모습, 가까스로 내쉬는 숨을 기록했다. 아주 얕은 숨, 그리고 인간이라면 맞이하게 될 늙어감과 자연적인 순환을 하나의 사진으로 느낄 수 있었다.
1998년 탈을 촬영하며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두고, 그 관심은 자연스럽게 공예품, 백자, 청화, 광화문 부재, 황금 유물 등 다양한 문화유산으로 이어졌다. 13종류의 가면 놀이를 찾아 전국을 누비고, 조선백자를 찾아 바다 건너 세계 곳곳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으며, 천마총 금관 촬영 허가를 위해 7년을 기다리기도 했다.
사진속 사물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그 안에 시간과 인간의 염원, 공간, 역사, 아픔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하나의 작은 세계이다. 특히 1980년대에 한 서양 노부인이 달항아리와 찍은 사진을 보고, 수백 년 된 백자와 할머니의 얼굴이 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도 타국에 있는 조선백자를 안타까워했다. 사진 속 여성은 ‘영국 현대 도예의 아버지’라 불리는 버나드 리치의 제자 ‘루시 리’였다. 그들이 사망한 뒤 대영박물관이 리치의 백자 달 항아리를 소장했고, 구본창은 2006년 허가받아 이를 촬영한다.
이를 포함해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호림박물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 교토 고려미술관, 도쿄 일본민예관 등 세계 곳곳에 소장된 백자 달 항아리 12개를 촬영하여 <문라이징III>을 제작했다. 달항아리의 소박하면서도 깨끗한 아름다움을 달이 뜨고 지는 것 처럼 제작했다. 그것은 완전한 소유도 없고, 완전한 상실도 없는 모든 것은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게 있다면, 적어도 그건 인생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마치 항해하듯, 변화무쌍한 날씨에 고되기도 한 게 인생이겠지만. ‘내 운명을 만들고, 찾아내는 것’이라는 목적지가 있다면, 거기에는 나를 좌절시킬 실패가 아닌 일련의 과정이 빛을 발할 거라 믿는다.
“나는 시를 짓기 위해, 설교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은 다만 부수적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직분이란 단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사람들은 결국 시인 혹은 광인이, 예언가 혹은 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관심 가질 일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궁극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나 관심 가져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 내는 일이었다.” - <데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