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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큥드라이브 Jun 16. 2024

<예술은 돈과 힘에 종속된게 아닐까?>

<예술의 힘>: 마르쿠스 가브리엘 읽기 전에

얼마 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으면서 들었던 질문.

-권위 있는 미술관 안에서 우리는,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검증된 작품을 통해 ‘위대한 작품’이 명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이것에 대해 <예술의 힘>을 읽으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한다.

저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1980년생의 아주 젊은 동시대 철학자이며, 19세기 셀링 이후 독일 최연소 철학 교수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읽는 김에 번역본 있는 저서를 찾아봤다.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는 도서관에서 못 찾았지만, <생각이란 무엇인가>를 빌려놓고 밀리의 서재에 <나는 뇌가 아니다>가 있길래 연달아 읽어보려고 한다.


이 철학자를 알게 된 것은<크래시> 라는 책에서 김남시 교수님의 ‘신실재론 예술의 쟁점- 그레이엄 하먼 대 마르쿠스 가브리엘 ‘파트를 읽으면서 흥미가 생겼기 때문.

<크래시>는 ‘예술도 결국 돈과 권위구나’라는 회의감(?)이 온 찰나, 친구와 함께 국현 미술책방을 기웃거리다 알게됐다. 정강산님의 절대자본주의와 미술 파트에서 내가 왜 회의감이 들었는지 언어로 정리돼있어 좋았는데, 예를 들면,

-“똑똑한 사람들은 돈을 버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는 조언자들과 함께 작품 컬렉션을 만들 것이고, 그들은 좋아하는 작품을 사면서 동시에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영국 미술품 전문 투자회사 더 파인아트 그룹 CEO 필립 호프만

-금융화된 자본주의하에서 어떤 작품이 미술사에 남는다는 것은 그것이 시장 속에서 불멸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희소한 것의 자산화란, 자본주의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예술은 환원 불가능한 어떤 차이를 생산한다는 기능 때문에 특히 금융화된 자본주의 속에서는 어떤 의사 상품으로 소급되게 됩니다.

-이념보다는 생존을 위해서 일단 뭉치고 보는, 어떤 조합주의의 실행자로서의 작가들이 있게 되는 거죠. 하지만 예술가들이 삶의 불안정성을 막는 방법은 예술 자체에 대한 차등적인 복지나 예술인 처우 개선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의 건설에 있다는 거예요.


다시 돌아와서,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예술의 힘>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예술과 힘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그 자체로는 미적으로 중립적인 세력이 예술을 지배하고 있는 건가? 예술은 자율적이기는 한가? 아니면 예술은 그 존재는 물론 미적 내용에 있어서도, 예술 작품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가면을 쓰고 드러나는 악랄한 세력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책에서 나는 오히려 힘을 지배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조금 놀랄 만한 주장을 하려 한다. 예술의 자율성은 너무도 막강하여 이른바 예술계가 아무리 용을 써도 예술을 지배할 수 없는 것이 예술 작품의 본성이다.


나는 예술은 시대적 배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진공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대미술이 재미있다고 느꼈다. 더 나아가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궁정화가들과 나치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그러했던 것처럼 예술이 돈과 권력에 이용되거나, 정치적 선전물로 이용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나 너무 여기에 깊게 부정적으로 몰입한건가?)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이야기 하는 것에 내가 완전 다른 방향의 질문 점을 가지는 걸까?) 아직 제대로 안 읽어봐서 모르겠다.


‘예술계가 아무리 용을 써도 예술을 지배할 수 없는 것이 작품의 본성’이라는 것을 이해해 보고자 이 책을 열심히 뜯어보려고 한다. 철학적 개념을 모두 소화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서 내일은 용어를 찾아보고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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