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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옥띠 Apr 13. 2023

내가 공무원에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


"똑띠야 잘 잤니? 수고해라."

새벽 6시 45분 즈음 매일 같이 오던 문자.

2016년 7월 8일,  정확히 기억나는 날. 수능 이후 나의 두 번째 수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 방에 시험에 합격하겠다는 패기로 스파르타 학원에 등록하고 노량진 입성 첫날,

집을 나서는데 진동소리가 울렸다. 아빠였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온 문자여서 그랬던 걸까.  

분명 평소와 다름없는 문자였지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빠의 문자가 사랑으로 보였던 것이.


"응 잘 잤어. 아빠도~" 짤막한 답을 보내고 서둘러 학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자식으로서 책임과 의무가 되어버린,  엄마에게 "도착했어."라는 문자를 보내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핸드폰은 비행기 모드로 설정하고 가방 속에 놔둔 채.

혹여 공부하는데 방해될까 봐 독서실에서는 늘 신발 사물함에 휴대폰을 두고 공부했던 나.


그리고 답장 없는 걸 알면서도 매일 뭉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던 엄마.

아빠 퇴근 후 아빠까지 사진 보내기 합세.


딸이 휴대폰 보면서 조금이라도 웃었으면 해서 엄마아빠는 답장 없는 딸에게

중간중간 뭉치 사진을 매일같이 보내주고 있었다.

뭉치 응아하는 모습, 뭉치 자는 모습, 뭉치 자는 모습, 아빠랑 뭉치랑 싸우는 영상 등등.

이 사진들은 수험생활의 활력소가 되었다.

하루에 겨우 두세 번 사진을 보고 웃다 보면 벌써 타이머에 순공부 10시간이 찍혔고

오후 10시가 넘으면 집 갈 준비를 했다.

집으로 가는 길, 엄마와 통화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수다 시간이자 힐링이자 하루의 마무리였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에는 널찍한 아이스박스가 문 앞으로 배송되었다.

일주일 치 도시락 반찬들이 노란색 포스트잇에 불고기, 찹스테이크, 멸치볶음 이름을 단 채 있었고,

사이사이 녹차 과자와 초콜릿으로 채워져 있었다.

혹여 아이스팩에 젖을까 여러 겹 종이와 비닐로 뒤덮여진 아빠가 출력해 준 수업 프린트물도 함께.  


엄마는 일주일 치 반찬을 보내고

아빠는 수업자료를 프린트해서 보내준 것이다.


남들처럼 고시식당에서 먹으면 편하고 좋으련만 왜 도시락 싸서 다녔나고? 내가 공시생인 게 싫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과 같은 구성원이 되기 싫었다. 노량진이라는 곳에 소속되는 것조차 싫었다.

뉴스에 나오면 단칸방에 살고 컵밥을 먹는 그들이랑은 다르고 싶었다.

그리고 느지막이 독서실에 와 짐을 놔두고 피시방일까 노래방일까 어딘가로 향해 있을, 스터디라고 하지만 실상 외로워서 만나는 모임을 하는 겉모습만 공시생인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그 떄의 생활이 그토록 싫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며

점심시간에 휴게실 한 편에 자리 잡아 인강을 들으며 엄마의 도시락을 먹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안에서도 나처럼 엉덩이 붙이고 피터지게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보며

초콜릿을 나눠주고 눈인사를 하고 속으로 매번 파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나는 수험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내 성격을 뻔히 아는 엄마 아빠는 2주에 한 번씩 KTX를 타고 노량진에 왔다.

오롯이 혼자 묵묵히 앉아 공부만 하는 딸이 외로울까 봐서다.

파스타와 초밥 그리고 2차로 설빙까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로 먹었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들을 같이 먹어주고 가던 엄마 아빠.

그마저도 그 시간에 공부해야 한다며 오지 말랬는데 아빠 생일이니까, 어버이날이니까, 크리스마스니까 갖은 핑계로 딸 얼굴 보러 오는 부모님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쳐갈 때쯤 드디어 시험날이 되었다. 시험이 끝나고 마중 나와 있는 엄마 아빠를 보자마자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는데 한 과목 때문에 안될 것 같아. 역시 한 번에 붙는 건 힘든가 봐."


"그렇구나.. 우리 여기서 너 기다리는데 다들 ''작년보다 어려웠어? 이번엔 어땠어? '이러더라.

시험 몇 번씩은 본 사람들인 것 같아.

그래도 우리 딸, 너무 고생 많았고 대견스러워."


이 말이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그런데 그 한 과목이 95점이 나왔다.

찍은 문제가 다 맞은 것이다.

수험생활, 1차 합격 그리고 최종 합격까지 단번에 원하던대로 이루어졌다.

함께 울어준 엄마와 당연히 붙을 줄 알았다며 활짝 웃는 아빠.


6시 43분, 45분.. 아빠가 일어나자마자 보낸 것 같은 한결같은 문자와 점심시간 엄마의 도시락, 아빠의 프린트물, 2주에 한 번씩 가족 식사, 그렇게 부모님은 나름의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아빠의 문자는 계속된다.

"똑띠야, 출근 잘했니? 수고해라."

 단 두 글자가 바뀐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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