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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옥띠 Apr 13. 2023

엄마 일기장 몰래 보는 딸

최근에 엄마가 세 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무려 블로그에 공개로 올리기로 했단다.


실은 작년부터 엄마의 글쓰기를 무척이나 바라왔다.

그래서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진지하게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엄마, 글을 좀 써보면 어때? 아무 글이나."


엄마와의 제주여행 마지막 날, 독립서점에서 글을 무지 쓰고 싶게 만드는(왠지 안 쓰면 안 될 것 같은) 내용으로 가득찬 책 선물을 하고 곧장 카페로 가 엄마의 블로그를 개설했다. 함께 찍었던 금능해변을 날고 있는 갈매기가 담긴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설정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


첫 글을 올렸다는 엄마의 말에 딸 한 번만 보여주면 안될까 애교를 떨어봤지만 엄마는 보여주지 않았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다며.  


여행이 마무리 되고 엄마가 글을 쓰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혹여 잔소리로 들릴까봐

물어보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그저 엄마가 꾸준히 쓰고 있기를.

그런데 참을 수 없었다.


'엄마는 세 줄 일기를 잘 쓰고 있을까?'


엄마의 모든 아이디에는 내 이름이 들어가고, 핸드폰 배경화면은 나고, 비밀번호도 내 생일이라 엄마의 블로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에 봤던 블로그가 사뭇 달라졌다. 그 잠깐 사이에 블로그 제목과 닉네임을 엄마스타일로 바꿨더라. 분명 제목은 그냥 일기장이었고 투박한 네이버 아이디가 닉네임이었는데..

귀엽다 우리 엄마. 제목도 닉네임도 아주 센스있어.

그리고 내 바람대로 블로그에 글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는 걸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곧바로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 지금 뭐하는 거지? 엄마 일기장을 훔쳐보다니!'


해서는 안 될 행동인 걸 아는데,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면 안되는데..

심장이 쿵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하루에 한 번 엄마의 일기장을 찾았다.


엄마는 오늘 안 좋았던 일, 좋았던 일, 내일 기대되는 일을 토대로 세 줄 일기를 쓴다고 했지만 오히려 장문의 글을 쓸 때가 훨씬 많았다. 살면서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는 엄마답게 잠자기 직전 막 쓴 글임에도 참 잘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공들이고 힘에 부쳐 글을 써도 쓰레기 같은 글이라는 생각이 드는 나의 글과는 다르게 엄마의 글은 정돈되었고 나의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알았다.

엄마의 글은 온통 내 이야기로 물들여져 있다는 것을. 엄마는 항상 나를 보면 마음이 아프단다. 낯선 곳에 혼자 있는 것도 힘들던데 거기다 경제활동까지 하는 내가 항상 마음이 걸린단다. 그냥 다 미안하단다..


엄마의 일기는 가볍기보다는 무거웠고, 밝기보다는 어두웠고, 조금 우울할 때도 있었다.

엄마도 상처가 많구나, 여리구나, 씩씩한 '척'하는 거였구나..

안 그래도 성인이 되고 성숙해지면서 엄마의 희생과 아픔이 눈에 보여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었는데 일기 속 한 글자씩 새겨진 엄마의 속마음을 읽고는 결국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런 엄마가 딱해 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작은 것에 감동 받고 좋아하는 엄마를 보니 소녀같아 귀엽기도 하고, 내가 곁에 없어도 아빠와 동생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안심 되기도 하고.

엄마를 걱정하는 내가 어른이 되긴 됐구나 하는 마음도 들고..

그렇게 나는 매일 엄마의 마음을 읽었다.


여전히 엄마의 블로그 이웃 수는 0이다. 그런데 누군가 몰래 들어가는지 자꾸만 하루에 하나씩 느는 조회 수가 거슬린다. 엄마가 눈치채면 안 되는데 말이다. 매일 조회수 1을 올리는 사람이 딸이라는 걸 알면 안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엄마 일기를 훔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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