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방과 후 강사로 다닌 지 몇 년이 지난 후 학교에서 한 말이다.
나는 2002년에 초등학교 방과 후 강사를 시작했다.
당시 내가 사는 지역은 방과 후 강사 활동은 초창기였다.
나는 방과 후 강사 활동을 하기 전에는 회사에 소속된 강사였다.
학교에서 방과 후 강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내게 됐다.
학교에 처음 생긴 방과 후 강사 프로그램에 많은 강사를 지원했다.
특히 내가 지원한 독서논술은 더 많은 강사들이 지원을 했다.
강사들은 학력이 대단했다.
내가 가진 경력은 지방국립대 4년대 졸. 강사경력 뿐이다.
당시 학교에서는 경력자를 원했다.
나는 운이 좋았는지 합격을 했다.
학교에서 처음 생긴 방과 후 프로그램에는 많은 부모님들이 관심을 보였다.
신청한 학생들도 꽤 있었다.
당시는 독서논술 프로그램이 생소했지만 아이들이 재미있어 해 학생수는 꾸준히 유지되었다.
학교에서도 강사들의 노고를 인정하여 월급도 많이 책정해 주셨다.
정말 즐겁게 일했다.
노력한 만큼 월급을 받으니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완전 신의 직장이었다.
이렇게만 하면 일할 만이 났다.
'내가 정말 직업을 잘 선택했어.'라며 뿌듯함을 안고 살았다.
사람이 행복한 삶만 계속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위기가 왔다.
학교에서 비전공자는 다음 해에 계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과목들은 대부분 전공자들이다.
사실 과목 비전공자는 많지 않았다.
내가 다닌 학교는 시내에서 알아주는 학교다.
그래서 내가 강사를 그만둔다고 해도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
먹이를 노리는 사자처럼 공백이 생기면 바로 달려들 사람이 많다.
현실이 그랬다. 항상 자리를 위태하게 지키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독서논술은 다른 과목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과목이다.
나는 독서논술 강사이지만 국문학과를 나오지 않은 비전공자이다.
언제든지 나가라고 하면 눈물을 머금고나와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남은 계약기간까지 시간이 있다.
'비전공자는 나가세요'라고 미리 통보를 한 것이다.
감사했다. 대책을 마련할 시간이 있음에...
다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방송통신대 3학년에 입학하는 것이다.
재계약까지 국문학과 재학 중이라고 하면 나가라는 말을 못 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생각대로 국문학과에 발을 담그니 재계약이 됐다.
지인들은 일하면서 방송대 졸업하기 힘들다고 한다.
이왕 다니기 시작한 학교이기에 2년 내에 졸업하고 싶었다.
나는 아이들을 돌보며 동냥 공부를 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어차피 해야될 일이야'라고 마음을 수십번 먹었다.
등에 떠밀려 억지로 공부하게 된 국문학과는 2년에 졸업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당당한 국문학과 졸업생이 되었다.
'비전공자는 나가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 속상했지만 비전공자로서 강사 활동을 오래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강요에 의해 국문학과를 졸업한 것도 나의 스펙이 됐다.
국문학과 졸업은 내가 미루었던 숙제를 한 기분이다.
밥그릇을 지키려고 절박한 마음에 번갯불에 콩 볶듯이 일을 빨리 진행했다.
가끔은 등 떠밀어주는 상황이 고마울 때도 있다.
내가 국문학과 졸업 후 학부모님들께 많이 듣는 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