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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경희 Sep 22. 2020

담배 피고 싶어


14년 전 남편 보증 사건으로 힘든 나날을 보고 있을 때였다.

당장 갚아야 할 빚도 힘든데 숨겨뒀던 빚은 왜 이리 자주 터지 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빚 갚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정신까지 몽롱해졌다.

그래도 아이 키우는 엄마라는 생각에 정신을 붙들어 매고 살았다.

아이들 앞에서 흔들리는 나의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다.

천진난만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 시선에 걱정, 불안감을 주기 싫었다.

나는 엄마여서 참고 견디려 했다.

견디면 견딜수록 힘들었다.

누군가 나의 힘든 마음을 알아줬으면 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처지를 하소연을 했다.

그들은 공감을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내가 힘든지... 내가 왜 힘든지... 삶이 바닥을 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실, 상대의 아픔을 본인이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아픔의 강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은 정말 대단한 경지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완전히 공감을 하지 못하더라도 따뜻한 한 마디를 원할 때도 있는데 그런 말을 듣기도 힘들었다.

지인은 시간이 지난 후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는 같은 상황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어떻게 공감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래서 나와 다른 경험을 한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것은 힘들다.

공감의 힘듬을 알게 된 후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하고 기대는 마음이 거의 없어졌다.

서로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힘듦 삶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만의 생각에 






내가 마음 잡고 산다고 그 마음이 계속 열심히 살게 되지 않았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힘이 빠지고 좌절이 되었다.

'열심히 산다고 되는 것이 아니구나, 일만 하고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고 싶었다.

일탈을 하고 싶었다.

그 일탈이 무엇이든...

요즘은 일탈이 힐링이라는 말로 본인들이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그런 일탈은 멋지고 부럽기도 했다.

빚에 허덕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탈은 삐딱하게 행동하는 일탈이었다.





나는 규칙, 규범에 어긋난 생활을 하지 않았던 모범생이었다.

한때는 현모양처를 꿈꾸며 살던 때도 있었다.

나는 착하게 열심히 살면 잘 사는 줄 알았던 착한 소녀였다.

힘든 것을 잘 참고 견디면 '시간이 약이다'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아픔도 아물어지는 줄 알았다.

참, 바보같이 많은 말들을 믿고 견뎠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피폐해진 나는 일탈을 마음먹고 처음으로 친구에게 말을 꺼냈다.

"나, 담배 피고 싶어"

"그래? 담배 피워. 담배로 네가 편해진다면 그렇게 해. 너 많이 힘들었구나"

"00야, 실은 담배 필 자신이 없어. 내 마음이 담배까지 갔다는 거야. 그런데 네가 내 마음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줘서 안 펴도 될 것 같아. 엉엉엉"

"그래, 울어라. 얼마나 힘들었겠니. 네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말을 했겠니. 그 말을 한 것만으로도 네 마음은 시원해질 거야"

라는 친구의 말 한 미디에 엉엉 울었다. 친구는 울고 있는 나를 안아줬다. 친구는 '담배'라는 사물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담배'를 피고 싶은 내 마음을 읽었다. 그러면서 말을 했다.

"경희야. 네가 담배 피고 싶은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그건 담배를 피지 말고 담배를 구입해서 가방에 갖고 다녀봐. 그럼 조금이나마 위로될 거야"

나는 친구의 말을 듣고 일탈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졌다. 

친구가 내 마음을 알아줘서였다.

세상은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은 살 만하다고 한 것처럼 나를 이해해준 친구 덕에 나는 더 이상 망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났다. 

가슴에 꽉 막혀서 숨 쉬기 힘들었던 날들이었다.

병원에 가니 화병이라고 했다.

친구의 말에 병이 나은 것은 아니지만 가슴 속에서 막혔던 묵직한 것이 갈라지면서 틈이 생긴 느낌이었다.

나는 그 틈으로 숨을 간신히 쉬기 시작했다.

틈으로 인공호흡하듯 쉬던 숨이 틈이 커지면서 숨다운 숨을 쉬게 되었다.

말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것이 이런 말일까?

나는 친구의 말이 가슴 속 기둥이 되어 세상을 살 수 있는 다른 힘을 만들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담배를 부정하지 않았던 친구의 말이...

지금은 타 지역에 살고 있어서 거의 만나지 못하고 서로의 삶에 바빠 연락을 자주 못한다.

얼마 전 우연히 친구와 통화하면서 담배 얘기를 했다.

그 때 고마웠다고...


나는 친구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사람들의 행동은 이유가 있음을....

그러면서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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