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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아 정씨 Apr 22. 2020

나만 너무 격리돼 있나?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33

4월 21일(격리 37일째) 화요일 흐림


전자책 리더기 사는 걸 포기한 첫째는 아마존에서 며칠 헤매더니 결국 퍼즐을 골랐다. 장인 장모가 생일선물을 대신해 보내준 돈으로 500조각과 1000조각 퍼즐 두 개를 주문했다. 하나는 지난주 토요일 도착 예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5월 중순께에 도착한다고 안내 메일이 왔다. 첫째는 지난주 금요일부터 우편함 곁을 뱅뱅 돌면서 열어보고 또 열어봤다. 나는 첫째에게 지금 배달이 평소처럼 되질 않으니 토요일로 예고됐어도 더 늦을 거야, 라고 충고했다. 토요일 오후 늦게까지 끝내 퍼즐이 도착하지 않자 그때서야 포기하는 것 같았다. 내가 몇 번이나 토요일은 배달을 하더라도 오전에 끝나, 라고 말을 했지만 오후 내내 큰 길가를 힐끗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첫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500조각짜리 퍼즐이 오늘 아침에 도착했다. 첫째는 환호성을 지르며 바로 포장을 뜯었다. 내 기억에 첫째가 혼자서 저렇게 복잡한 퍼즐을 해본 적은 없는 듯하다. 역시나 퍼즐을 풀어놓으니 아내가 더 신나서 퍼즐을 맞추고 첫째는 보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음 퍼즐이 올 때까지 저 퍼즐로 잘 버텨야 할 텐데. 우리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또 하나의 놀이를 찾았다.


격리가 시작될 즈음 차 앞바퀴에 실바람이 새는 걸 알게 돼 계속 성가시던 차였는데, 자동차 정비 체인점에 전화를 걸었더니 직원이 응대를 했다. 그냥 한 번 해본 것이어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오오오늘, 일 하나요?” “예. 무엇 때문이죠?” 상황을 설명하고 약속을 잡은 뒤 정비소에 다녀왔다. 바퀴에 못이 여러 개 박혀 있었다. 고쳐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구멍의 크기가 크다고 했다. 새 타이어를 주문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영업을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지난주 화요일부터 문을 열었다고 했다. #자동차 정비 #영업 중 #격리 기간 #블루아 등 단어를 이용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지만 어디가 영업 중이고, 어디가 영업을 하지 않는지 알 수는 없었다. 정부 사이트를 뒤져봐도 그런 설명은 없었다.


오후에는 가족 모두가 집 앞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원래 가던 길과는 반대쪽으로 다녀왔는데, 그 길의 중간에는 시립문화센터 비슷한 게 있다. 폐쇄된 센터 정문 앞에 두세 명의 시민들이 줄을 서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마스크를 주고 있는 듯했다. 가서 물어봤다. 마스크를 무료로 나눠주는데 인터넷으로 신청을 해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도시는 뭔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나만, 우리 가족만 지나치게 격리 상태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블루아 시가 벌이는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시민들의 기부를 받아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무료로 나눠주는 운동이었다. 캠페인에 참가하고 싶은 시민은 면으로 된 천을 기부하거나, 천을 크기에 맞게 자르는 재능을 기부하거나, 재봉틀을 사용할 줄 아는 재능을 기부하거나 이렇게 만들어진 면 마스크를 받아갈 수 있었다. 인터넷에는 면 마스크를 어떻게 만드는지 과정도 자세하게 설명이 돼 있었다. 비말 전파를 막기 위해 최소한 세 겹으로 만든다고 강조했다. 캠페인에는 10여 개의 회사와 5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 중이었다. 나도 인터넷에 접속한 김에 캠페인에 참여했다. 마스크를 무료로 받아가는 역할. 한국에서 가족이 보내준 마스크가 있어서 굳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에 한 개만 신청했다.


슈퍼마켓에서 마주치는 시민들 중에 아직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의 수가 절반은 돼 보이는데, 나머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마스크는 공산품이 아닌 경우가 허다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마스크처럼 생긴 천조각’인 경우도 꽤 있었다. 마스크 부족 현상은 이제 조만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일상적 결핍 요소가 된 지 오래여서 각자 자구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블루아 시가 벌이는 캠페인은 그 자구책을 공동체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궁지에 몰리면 뭐든 하는 법이니까. 다만 우리는 왜 모르고 있었지, 하는 의구심만 들뿐이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지, 라고 묻는 게 더 합리적인가.


교육부 장관이 5월 11일 개학에 대한 계획의 일부를 오늘 발표했다. 그러면서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럼 정해졌을 때 발표하시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이해했다. 블랑케 장관의 발표에 따르면 ‘점진적’ 개학은 기본적으로 한 교실에 15명 이상의 학생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골자이다. 그래서 첫 주인 5월 11일의 주에는 유치원 3학년, 초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이 등교를 하고 5월 18일의 주에는 중학교 1학년과 4학년,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이 등교를 하게 된다. 개학 후 셋째 주인 5월 25일에는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 간다. 우리 집의 경우는 세 명이 일주일 한 명씩 연관돼 있다. 첫째 주에는 유치원 3학년인 셋째가, 둘째 주에는 중학교 1학년인 첫째가, 셋째 주에는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가 개학을 맞이하게 된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아이들의 학교에서도 안내 메일이 왔다. 5월 개학이 되면 아이들의 마스크는 학교에서 나눠준다고 한다. 이전과 달리 학부모의 교내 진입을 제한할 것이며 이에 따른 혼잡을 피하기 위해 학년에 따라 하교 시간을 조정할 것이라고 했다. 15명 이하로 어떻게 반을 조정하게 될까, 쉬는 시간도 따로 갖게 될까, 수업 시간에 마스크를 착용할까.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실제 개학이 이뤄지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초유의 일이어서 참고 사례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 학부모들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방역 모범국이라던 싱가포르는 개학 후 2차 대감염이 일어나 다시 휴교령을 내렸다고 한다. 아내의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 우스개처럼 문자로 돌고 있는 블랙 코미디가 어쩌면 다가올 이 나라 교실의 모습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 받아쓰기 시작할게요. 케빈, 칠판에 날짜를 쓰렴. 장갑 꼈니? 그냥 새 분필을 사용하는 게 좋겠다. 마빈, 팔에다 대고 기침하라고 했잖아. 오늘 아침부터 마스크 세 개째다. 가서 손 씻어. 비누로 빡빡 씻어. 그래 전에 비누 없었지. 여러분 날짜 다 썼어요? 왜 또 시리엘,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안 들려, 그 마스크 때문에. 발음을 정확히 하라고. 볼펜이 없다고? 연필로 써. 연필이 없다고? 사인펜으로 써. 그냥 아무거나 잡고 써. 안돼 줄리, 볼펜 빌려주면 안 돼. 여러분 오늘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코로나 수칙 다 읽었죠? 거기 케빈, 마스크! 마빈, 손 씻었어? 뭐 화장실에 줄이 길다고? 세면대 하나에 학생 수가 60명이니 당연히 사람이 많겠지. 좋아 그냥 손세정제 써라. 이번에는 혀로 핥으면 안 돼. 어디까지 했더라. 그래, 날짜였지. 다 준비됐어요? 뤼카, 이게 마지막 경고야! 마스크 제대로 써. 마스크 가지고 지우개로 새총 쏘지 마. 다음에 또 그러면 압수야. 아니 안되는구나. 뭐 벌써 쉬는 시간이라고? 아니야 지금 10시 10분이니까 1학년들 쉬는 시간이야. 우리는 10시 25분이다. 여러분은 받아쓰기하고, 자로 밑줄 그으세요. 자 소독하는 것 잊지 말고. 모하메드, 왜? 연필 심이 부러졌다고? 가서 깎아. 연필깎이가 없다고? 내가 빌려줄 수도 없는데, 코로나 수칙이야. 받아쓰기 시작하자. 다 준비됐지. 마빈, 기침은 팔에다! 그렇게 바로 코 후비지 말라니까. 세정제로 씻어. 케빈 마스크 써. 라이안, 마스크는 해적 머리띠가 아니야. 압수ㅎ… 자 받아쓰기 하자. 줄리, 마스크! 마빈, 기침! 사라, 세정제! 야스민, 팔에! 아, 쉬는 시간이라고. 자 한 줄에 한 명씩 앞사람과 간격은 1미터 이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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