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아 정씨 Apr 29. 2020

5월 11일부터 바뀌는 것들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39

4월 28일(격리 44일째) 화요일 맑음 


에두아르 필립 총리가 오늘 오후 국회에 출석해 격리 해제 대책을 발표했다. 격리 해제는 크게 2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5월 11일 휴교령이 풀리면서 1단계 해제가 시행되고 6월 2일 2단계가 시행될 예정이다. 식당과 술집 등은 2단계에 재개장을 할 가능성이 크다. 2단계에 들어서면서 7월 여름휴가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다시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대책에 대한 하원의 투표는 찬성 368표, 반대 100표, 기권 103표로 과반 이상의 찬성을 얻었다. 총리의 이번 대책 발표는 그냥 기자회견으로 진행했어도 됐었다. 그런데도 굳이 국회에서 발표하고 표결에까지 붙인 것은 행정부의 결연함을 보여주는, 다분히 정치적인 행위였다. 멜랑숑이 이끄는 극좌와 르펜의 극우정당은 만장일치로 반대표를 던졌고, 나머지 정당들은 자유 투표에 맡겨 찬반이 갈렸지만 행정부의 정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 것이다. 


맨 먼저 총리가 강조한 것은 "지표가 원하는 만큼 도달하지 않을 경우 5월 11일 해제 조치가 무효로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지표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국민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쓰기,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않기 등을 계속해서 지켜달라는 압박이다.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이 될 세부적인 사항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 거주지에서 100 킬로미터 이내 이동은 증명서를 지참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처럼 급한 용무나 출장 등은 예외다. 참 눈물 난다. 증명서 지참을 면제시켜 주시니. 이동을 허락받아야 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따름이다. 이제 루아르 강변을 따라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타도 되겠다. 7월에는 또 상황이 바뀌겠지만, 격리 해제가 풀리면 주말이라도 시간을 내서 처가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그 계획은 접어야 한다. 나는 물론이고, 아내가 많이 실망했다. 


● 데파르트망 또는 레지옹을 벗어나는 이동 역시 금지된다. 이에 따라 기차의 배차도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데파르트망은 우리나라의 도, 레지옹은 그보다 더 큰 지방자치의 단위이다. 


● 5월 11일 이후 마스크 공급이 원활해지고, 대중교통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사항이 된다. 빠르기도 하시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보내준 마스크가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없다. 


● 일주일에 검사 70만 건을 목표로 할 계획이다. 70만 건을 목표로 잡은 근거는, 하루 3000명이 감염되고, 3000명이 약 25명을 접촉했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일주일에 52만 5000 건이 나오는데 이보다 여유롭게 잡은 것이다.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 지역별로 바이러스 피해상황이 다르므로 데파르트망 단위에서 녹색, 적색 단계를 정해 실정에 맞는 대책을 적용하게 된다. 5월 7일부터 매일 저녁 해당 데파르트망의 단계가 시장(시나 군 단위 관할) 및 경찰서장(지자체 관할)에 의해 발표된다. 


●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특정하는 전담팀이 생기고, 접촉자들은 자가격리에 들어간다. 한국 뉴스에서 너무 많이 본 내용이라, 이 나라도 이런 일들을 이미 하고 있는 줄 알았다. 이 조치를 5월 11일부터 한다는 거니까, 한국에 비하면 3달쯤 느린 건가? 


● 초등학교 : 5월 11일부터 매우 점진적으로, 자발적으로 원한 사람에 한하여 수업을 재개한다. 한 교실에 15인 이하, 개인 간 거리 지키기, 손 세정제 비치 등을 실시하게 된다. 유치원생은 마스크 착용이 금지되고, 초등학생은 쓰지 않아도 된다(더 정확히는 권장되지 아니한다). 교사는 마스크가 지급될 것이며, 코로나 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초등학교에는 3~5살 아이들이 다니는 3년 과정의 유치원과 6~11살의 5년 과정 초등학교가 모두 포함된다.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가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가는 어제의 상상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 


● 중학교 : 감염이 심각하지 않은 데파르트망에 한해 5월 18일부터 1학년과 2학년만 학교에 가게 된다. 마스크는 국가에서 지급한다. 중학생들도 "자발적으로 원한 사람에 한하여" 수업을 재개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고등학교 : 이전 발표와 달리 수업 재개 날짜를 적시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5월 말에 결정할 예정이다. 6월 초에 휴교령이 해제될 가능성이 크다.


● 65세 이상 노인들의 이동을 제한하지는 않았지만 각별한 주의를 요구했다. 


● 공공장소는 물론 사적 장소에서도 10인 이상 집회는 금지된다. 우리가 매월 참여하고 있는 부부모임의 인원은 11명이다. 어떻게 될까. 


● 6월 2일 이전에는 종교행사가 금지된다. 종교시설은 "여전히 개방해 놓아도 된다." 그러나 6월 2일 이전에는 미사와 예배 등의 의식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 


● 극장과 콘서트홀, 대형 박물관, 해변 등 다중 이용시설은 폐쇄 결정을 적어도 6월 1일까지 유지한다. 다만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나 소형 박물관은 개장을 해도 된다. 단체 운동경기는 금지되고, 결혼식은 연기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장례식의 경우 20명으로 참석인원이 제한된다. 


● 축구를 포함한 프로스포츠 경기의 2019-2020 시즌은 종결됐다. 5000명 이상이 모이는 축제나 스포츠 경기는 9월 이전에 재개될 수 없다 


● 감염자의 이동경로 추적 애플리케이션 도입을 위한 찬반 토론과 법안 표결이 조만간 이뤄진다. 원래는 오늘 표결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연기됐다. 군불을 지핀지는 한 달도 넘은 것 같다. 


● 기업들은 지금부터 최소한 3주 동안은 재택근무를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접촉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재택근무를 채택할 수 없는 기업은 탄력적 근무시간을 적용해 많은 사람이 같은 시간대에 몰리는 것을 피하는데 협력할 것을 요구했다. 


● 5월 11일부터 식당과 카페를 제외한 모든 상업시설은 영업을 재개한다. 면적이 4만 평방미터 이상인 상업시설은 지자체장의 재량에 따라 폐쇄 결정을 유지할 수 있다. 식당과 카페의 영업 재개 여부는 5월 말 결정된다. 


● 부분실업 제도는 6월 1일까지 유효하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기업의 종사자들은 부분실업을 신청할 수 있는데, 부분실업을 신청하면 월급의 84%까지 받을 수 있다. 1천80만 명의 월급 생활자들이 이 혜택을 받고 있으며, 이 수치는 전체 사기업 직원수의 절반을 넘는다. 월급을 받아본지가 워낙 오래돼서 감이 오지 않지만, 말만 들어도 부럽다. 


● 대중교통의 탑승인원을 대폭 줄인다. 의자 둘 중 하나는 없애고, 바닥에 테이핑을 해서 적정 거리를 유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서인데,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비난 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블루아 같은 시골의 버스는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파리의 지하철은 그런 걱정이 나올 법하다. 


마지막으로 총리는 격리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될 경우 "경제가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1945년 이후 가장 심각한 경기의 후퇴를 보이고 있고, 지난달의 실업급여 신청자는 기록적 수치를 나타내는 등 모든 경제지표들이 적색 경고를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총리는 그나마 교육 불평등 운운한 대통령보다 솔직했다. 더 이상 격리 상태를 지속할 수가 없는 이유를 맨 마지막이나마 분명히 밝혔으니 말이다.


이 중 우리의 일상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들도 상당하다. 상점에 갈 수 있고, 친구들과 아뻬로를 즐길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먼 곳으로 가서 피크닉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은 아직도 처가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못 가게 하니까 더 뽕도라에 가고 싶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감옥의 울타리가 조금 넓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학교를 어쩌지… 아, 어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