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아 정씨 May 03. 2020

선택의 시간이다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43

5월 2일(격리 48일째) 토요일 흐림


5월 11일 이후의 학교 생활에 대한 구체안들이 슬슬 나오고 있다. 최근 교육부가 일선 학교에서 보낸 63쪽짜리 지침에는 격리 해제 이후 다시 열리는 학교에서 지켜야 할 교사 및 교직원과 학생들의 행동수칙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고 한다. 내용이 요약된 기사를 읽고 저걸 현장에서 과연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아내가 다니는 학교는 아예 개학을 일주일 더 늦췄다. 개학 조치가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교장의 재량으로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교장은 화상회의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혹시 자신의 학교에서 감염자가 나오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자가 나온다면 전적으로 교장의 책임이라는 것이 교육부와 교육청의 입장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장에 너무 많은 짐을 떠안긴 게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아내와 동료 교사들은 전반적으로 학교 문을 열겠다는 정부의 결정이 정치인들의 위선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정부가 현장에서 지키기 어려운 지침들을 내리고,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문제는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상대로 한 것이어서 더더욱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학교 현장의 상황과 관계없이 경제가 어느 정도 돌아가게 하는 데는 성공할 것이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정부의 위선적 태도는 그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정부의 선택이 옳았다고 할 것이고, 2차 대감염으로 이어지면 정부는 학교 현장에서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이들의 담임교사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것인지를 묻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인원을 파악하려는 절차로 보인다. 인원을 알아야 교실의 책상 배치나, 반 재배치 등을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 만약에 학생들이 너무 많으면 두 개 반으로 쪼개서 오전 오후반을 운영하거나 1주일씩 번갈아가며 학교에 오게 할 수도 있다. 아내가 다니는 학교는 시골지역의 초미니 학교여서 개학을 일주일 더 늦추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지만, 우리 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블루아 시내에서 제일 큰 초등학교 중 하나여서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학교 교장 명의의 장문의 메일도 도착했다. 


교육부의 지침과 교장이 보낸 메일을 종합해보면, 부모는 학교 가기 전 아이들의 열을 체크해서 37.8도가 넘으면 집에 머물도록 조치해야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도착하면 교사가 다시 한번 열을 잰다. 학교에서는 한 곳으로 여러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문들을 사용해 학생들이 등교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내가 알기로도 학교의 출입구가 최소한 4~5곳이지만, 정문을 제외한 나머지는 비상시에만 사용한다. 다는 아니어도 2~3곳의 문은 열어두고 등하교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교육부의 지침은 최소한의 원칙이고, 세부적인 사항은 지역과 학교의 특성에 맞게 바뀔 수 있다. 


유치원 3학년인 셋째는 5월 12일,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는 5월 18일이 첫 등교일이다. 교실의 면적이 그리 넓지 않아서인지 교실 당 인원을 최대 10명으로 제한했다. 교육부 지침은 15명이다. 학생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지만 교사는 얼굴 전체를 막아주는 투명 캡을 착용하게 된다. 마트 계산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가리개 말이다. 교실 내에서 물건을 서로 건네는 게 금지되고 혹시 다른 사람이 만졌던 물건을 만졌을 경우 곧바로 손을 씻고, 그 물건은 소독해야 한다. 교실 문은 항상 열어둔다. 손잡이를 여러 사람이 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쉬는 시간에도 개인 간격 1미터를 유지해야 하고, 공놀이를 포함해 어떤 기구도 사용할 수 없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학년 별로 시간을 달리해 운동장을 사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화장실 사용은 정해진 절차를 엄격하게 따라야 한다. 환기를 위해 교실 창문은 수시로 열어 놓고, 개방 상태를 최소한 10분 유지해야 한다. 하교 역시 쉬는 시간처럼 학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급식실은 운영하지 않는다. 즉, 오전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점심을 먹인 다음 오후 수업 시작에 맞춰 다시 학교에 데려다줘야 한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것인지 최대한 일찍 결정해서 알려달라고 한다. 정부 자료와 학교에서 보내온 편지를 훑어보니 온갖 까다로운 규칙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부모들로 하여금 차라리 집에 두고 원격수업을 하는 게 더 낫겠다, 는 생각이 들게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이 적을수록 관리하기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결국 아이들을 집에 두는 결정을 내릴 경우, 실질적으로 격리는 지속되지만 공식적으로는 학교의 문이 열린 효과가 나는 것이다. 학교의 편지에는 결정을 내리면 다시 번복할 수 없다는 협박성 멘트까지 적혀 있다. 우리가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중학생인 첫째는 중학교의 문이 다시 열리는 5월 18일 예전처럼 등교하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절친인 두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게 이 같은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첫째는 벌써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우리가 교내에서 지켜야 할 각종 수칙을 읊어주고 1미터 떨어져서 수다 떨어야 되는데도? 라고 물었는데, 상관없단다. 중학교도 수칙들이 초등학교와 비슷하지만 급식실을 운영하는 건 크게 다른 점 중 하나다. 다만 오전 공부를 하던 수요일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첫째는 학교에 가고, 넷째는 집에 머무는 것이 상수로 굳어지는 것 같다. 변수는 둘째와 셋째인데, 만약 둘이 학교에 가지 않을 경우 ‘첫째가 없는 상황’의 격리 기간 연장이고, 학교에 가기로 결정하면 조금 복잡해진다. 아침에 학교 데려다주고, 11시 30분에 데려오고, 오후 1시에 데려다주고, 오후 4시 30분에 데려오고, 를 반복해야 한다. 여기에 만약 아내가 학교에 가서 집에 나 혼자 있게 되면 이 모든 과정을 넷째와 함께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둘을 학교에 보내야 할지, 그냥 데리고 있어야 할지 그게 고민이다. 


5월 1일 기준 전국의 격리해제 지도. <르파리지앵>에서 퍼옴.

프랑스 정부가 보건 비상사태를 2개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원래는 5월 24일 끝나기로 돼 있었는데, 종료일이 7월 24일로 연기됐다. 5월 11일 이후 데파르트망의 감염 정도에 따라 전국을 초록과 빨강 지대로 나눈다고 발표했었는데 우리 사는 곳은 그 중간인 주황색으로 지정됐다. 초록이면, 계획대로 격리 해제에 들어갈 수 있고, 빨강인 곳은 제한적인 격리 해제가 적용된다. 인구수가 많은 파리와 수도권을 비롯해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동쪽이 주로 빨간색이다. 대서양이 있는 바닷가 지역은 대개 초록색이었다. 주황색은? 판단을 유보한 곳으로 아마 5월 11일이 되기 며칠 전에 초록 또는 빨강으로 색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내가 알던 것보다는 우리 지역의 감염자가 꽤 많았었나 보다. 


기쁜 소식 하나는, 정부가 스포츠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5월 11일 이후에는 아이들과 테니스장에 갈 수 있게 됐다. 자전거 타고 1 킬로미터 넘어서 멀리멀리 피크닉도 가야 하고, 격리 이후 할 일의 리스트가 쌓이고 있다. 친구네 가족과 함께 가면 총인원이 10명이 넘게 되니까, 가서 우연히 만난 것으로 하는 게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짜 심오한 라이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