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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an 21. 2024

왜 나한테만 그래?

지나친 피해의식

B: 우와 그거 뭐야? 니 사진이야?

C: 회장 선거 포스터에 붙이려고 뽑아왔나 보다

A: (소리 지르며) 선생님이 뽑아도 된다고 그랬거든?!

B: 아니 그냥 물어본 건데 왜 화를 내...


D: 오늘 청소 누구야?

E: A랑 B랑 C 아니야?

F: 맞아. 어? 근데 B만 혼자 청소하고 있네

(허겁지겁 A와 C가 교실에 들어온다)

D: 야 너네 오늘 청소당번이잖아 빨리 청소해~

A: (소리 지르며)아 지금 하려고 하잖아 왜 나한테만 그래?!

D: 나 너한테만 말한 거 아닌데?


A: 선생님 애들이요 체육시간에 저한테 뭐라고 했어요.

교사: 뭐라고 했는데?

A: 아니~ 제가 공이 무서워서 좀 머뭇거리고 있었는데요. (억울하다는 듯) 애들이 막 저한테만 뭐라고 하고 제가 공 잡으면 야유하고 그래요!?

교사: 시합하다 보면 승부욕 때문에 늘 과열되는 애들 있잖아. 그런데 그 애들이 정말 너한테만 그랬어?

A: 네...


A: 야 네가 줄을 잘 돌려야지! 줄 돌리는 사람이 그렇게 대충 돌리면 어떡하냐?

B: 자기가 못할 때 우리가 뭐라고 하면 괴롭힌다고 우리더러 뭐라고 하더니 되게 뭐라고 하네

A: (도끼눈을 뜨며) 내가 언제? 네가 줄 잘 못 돌린 건 사실이잖아?! 


모든 상황 속에서 언제나 피해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학기 초반에 언뜻 보면 정말 약자이며 피해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그 아이의 행동은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과도한 자기 방어였음이 드러난다. 집단따돌림의 대상이 아닌 이상 매번 모든 상황 속에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한 아이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일은 드물다. 따인지 아닌지는 정말 교묘한 방법으로 괴롭히지 않는 이상 금세 티가 나기 때문에 교실에 늘 상주하고 있는 초등교사들이 교실 내 왕따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분명 왕따가 아닌데 거의 매일 친구들과 부딪히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늘 피해자다. 자신은 가만히 있었는데 남들이 와서 비난하였으며, 같은 잘못을 해도 오직 본인에게만 잘못을 지적하여 억울하다는 식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아이들은 타인의 잘못을 견디지 못하고 오히려 깔깔대며 웃거나 그 누구보다 빠르게 교사에게 와서 타인의 잘못을 고자질할 때가 많다.


그 어떤 이유에서도 집단 따돌림은 벌어져서 안 될 일이고  인간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가장 중대한 범죄임이 틀림없다. 다만 왜 굳이 스스로 나서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본인을 미워하도록 만드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아 아무도 너에게 뭐라고 한 적 없으니 제발 남의 말을 듣자마자 흥분부터 하지 말고 차분히 상황과 표정을 살피라고 일 년 내내 말해도 그러한 성향을 고치지 못해 학기말에 가서는 거의 모든 학급 학생들의 미움을 받게 되어버린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학기 초에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마저도 이 시기쯤 되면 손절을 염두에 둔 듯 거리 두기를 하는 모습이 관찰된다는 것이다.


미숙한 아이의 행동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수정해 주기 위해 설명하고, 달래보고, 엄하게 말을 해봐도 아이의 피해의식을 쉽사리 제거하기 어렵다. 약해서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를 지켜주는 일 역시 어렵지만 이렇게 스스로 나서서 친구들에게 나 좀 미워해달라고 매일 악을 쓰는 아이를 지켜주는 일은 몇 배는 더 어렵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심리검사, 또래상담 등 이런저런 지원을 해보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는 학생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해자를 자처하는 아이는 피해망상에 빠진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두가 자신을 싫어하고 세상이 자신을 버린 것 같고 부모도 친구도 선생도 다 자기한테만 뭐라고 한다고 믿는 아이의 세상에 초록의 새싹을 심는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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