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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Nov 24. 2023

그게 뭐가 재밌어?

시니컬함의 파괴성

긍정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려는 순간 초를 치는 아이가 있다. 리코더를 연습할 때도, 수학 익힘풀 때도, 종이 접기를 할 때도, 과학 실험을 할 때도, 재미있게 몰입하며 즐기는 아이가 있고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다. 들어하는 아이는 과제 수준이 자신과 맞지 않아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 과제 수준만 낮추어 제공해 주면 금세 몰입한다는 점에서 즐겁게 학습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재미있어하는 아이는 자신이 과제를 잘 수행해내고 있음을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그 순간에 몰입을 경험하고 있는 탓에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재밌다"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렇게 몰입 중인, 몰입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의 아름답고도 긍정적인 상황에서 그토 예쁜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마디 던지는 아이가 있다.


그게 뭐가 재밌어?


냉소와 혐오가 섞인 시니컬한 한마디의 말은 고요한 열정의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다. 는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열등감의 발현지만 본인 스스로는 결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교사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지만 자신은 이런 유치한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성숙한 어른이라도 된다는 듯한 태도, 이는 미숙한 아이의 방어기제이지만 단순히 자신의 능력부족을 숨기기 위한 방패라고 하기에는 교실 전체에 끼치는 악영향이 너무 크다. 실컷 몰입하고 있던 어떤 아이들은 뭐가 재밌냐는 친구의 말에 집중하던 것을 내려놓기도 하고 어려움에 직면해 있던 아이들은 좋은 핑곗거리 덕분에 도전을 쉽게 멈춘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한 아이의 시니컬함이 다수의 발전 가능성을 막아 셈이다. 열심히 배우고 익히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 입장에서 사사건건 그게 뭐가 재밌냐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며 비아냥대는 아이의 모습이 곱게 보일리 없다. 사로서도 부모로서도 저 아이만 없으면 모든 아이가 훨씬 발전하는 일 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참담함을 느낀다.


교사로서 그런 아이조차 당연히 품어야 함을 알고 있다. 그 아이 역시 나의 제자이기에 아이의 삶을 위해 부단히 에너지를 쏟아내지만 투입대비 효율이 제로에 수렴하는 밑 빠진 독 현상을 겪을 때면 이 에너지가 다른 곳에 쓰였을 때의 효과가 눈앞에 아른거려 교사로서 고민에 빠진다. 해마다 유형은 다르지만 교실 안에는 교사의 에너지를 빠르게 고갈시키는 아이들이 늘 포진해 있다. 그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피로감이 몰려온다.


약한 아이가 냉소적인 경우 아이는 자신을 파괴한다. 강한 아이가 냉소적인 경우 아이는 학급을 파괴한다. 약한 아이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분노를 외부로 발산하지 못해 자신에게 그 부정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붓는다. 어려움을 느끼는 과업을 수행하지 않고 억울한 형벌이라도 받는다는 듯이 버티고 버티며 스스로 분노를 끌어올리다가 벽에 머리를 박고 유리창을 주먹으로 부수고 땅을 바라보며 쌍욕을 한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교실 안에서 가장 자신을 생각하고 아껴주는 사람이자 자신이 상대하기 가장 만만한 교사에게 그 화를 쏟아낸다. 강한 아이는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기 위해 다른 아이들을 찍어 누른다. 무리를 지어 성실한 학생들을 힐난하고 모든 것에 장난스럽게 임함으로써 학습 분위기를 와해시킨다. 그런 자신의 영향력에 도취돼서 아이의 기세는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고 종국에 가서는 거부를 위한 거부에 익숙해져 그 어떤 논리적인 대화도 통하지 않는 무뢰한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런 아이들을 마주할 때면 피로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현재 행동이 자기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지 못하지만 인생을 어느 정도 진지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아이의 미래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다. 너는 그게 뭐가 재미있는 것인지 시니컬한 아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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