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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Feb 04. 2024

모두가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선의가 때로는

본 내용은 픽션입니다.


아이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다.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희귀 유전질환으로 전신의 근육이 점차 위축되어 생존에 필수적인 호흡과 심장박동에까지 제한이 생겨 높은 확률로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두 돌쯤 되었을 때 아이가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이 이상해 검진을 받아본 이후 가족의 삶은 지옥이 되었다.




아버지: 이렇게 고통스러울 바엔... 차라리 죽는 게 편하지 않을까..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치료를 하면 우리 아이가 건강하게 살 가능성은 있는 건가요? 그렇지 않고 결국 죽는 경우가 많은가요?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때까지 고통이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의사: 버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 보시죠.


아버지: 치료약이 25억이라면서요... 저희 같은 사람들이 그런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냥 죽으라는 소리지요. 애가 밥도 제대로 못 씹어 삼키고 몸도 점점 축축 처지는 것이 어째 산송장이 돼 가는 것 같습니다.


의사: 작년까지는 그 약이 유일한 치료제였는데 올해 새로운 약이 나왔고 다행스럽게도 보험 적용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담하셔야 되는 비용이 천만 원 돈은 되겠지만 이전에 비해 접근 가능성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습니다.


아버지: 천만 원... 25억이나 천만 원이나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는 평생 모아도 모으지 못할 돈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네요. 일단 물리치료라도 꾸준히 받아보겠습니다.


부모는 밤낮없이 일을 했지만 아이의 병원비를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공신력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았던 터라 선뜻 대출을 해주겠다는 은행을 찾기 어려웠으며 천만 원을 빌릴만한 친척이나 지인 역시 없었다. 그들이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디에도 가 닿지 못할 무기력한 기도와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들고 있는 심정으로 이삼일에 한번 물리치료를 받게 하는 것뿐이었다. 근 후 천근인 몸을 쉬이 누일 생각은 그들에겐 가히 사치였다. 아이의 온몸을 주무르고 치료를 위한 또 다른 방법은 없는지, 건강을 되찾은 사례는 없는지를 찾느라 부부는 퇴근 후 쓰러져 잠들 때까지 온 정신을 쏟아야 했다. 그들에게 일상은 없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가족들과 공유한다거나 취미를 찾기 위해 고심한다거나 건강을 위해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그들에게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들의 시간은 거의 대부분 침묵과, 침묵 사이에 간헐적인 정보교류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의 최선을 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얼마 못 가 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들은 울부짖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냄에 괴로워했고 그와 같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다는 것이 비참했으며 왜 하필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생각하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알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음에 그들은 그저 울부짖을 뿐이었다.


의사는 아이를 진료하며 이상함을 느꼈다.  부모는 자꾸 아이의 죽음에 대해 묻는 것일까. 오죽하면 그럴까 싶은 동정 어린 생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의심에게 그 자리를 조금씩 빼앗겼다. 번 자리를 잡은 의심은 기어코 그 존재감을 입증하기 위해서인지 하나 둘 퍼즐조각을 찾기 시작했다. 그 퍼즐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그림일 테지만 의심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의심에게 다른 모든 것들은 자신을 위해 활용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진료를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에 방문했던 횟수가 일주일에 한 번으로,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어가는 기록을 바라보며 의사는 가족의 경제적 형편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진료를 받으러 왔을 때 진통제의 투여량을 늘려달라는 부모의 요구가 갑자기 떠올랐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아이의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것도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군다나 최근 몇 번의 진료를 볼 때 아이의 눈에서 부모를 두려워하는 듯 서늘한 광채를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동학대 신고의무 대상자로서 의사는 고민에 빠진다. 이대로 뒀다간 질병에 의한 사망보다 부모에 의한 살해에 가까운 상황이 발생할 것 같다는 직감, 의사는 이 직감이 경험과 데이터에 근거한 타당한 추론인지 그저 측은지심이 발동한 것인지 헷갈린다. 며칠간 고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의사는 진료에 집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마지막 진료를 받은 지 두 달이 되어 가는데 병원에 방문하지 않는 아이의 차트를 확인함과 동시에 의사는 자신의 직감에 확신을 갖는다. 그리고는 새로운 고민에 빠진다. 모르는 척 일상을 이어갈 것인지, 의사로서의 책무성과 인간적 도의를 다할 것인지. 의사는 본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살면서 남에게 폐를 끼친 적 또한 없었다. 그렇게 살아온 관성은 의사로 하여금 경찰서에 아동학대 의심신고를 하게 만든다. 사는 최선을 다해 고민했고 행동했다. 그는 선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경찰은 의사의 이야기를 다 듣고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고가 들어온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가족의 집 방문한 경찰은 오열하고 있는 부모와 마주한다. 경찰이 방문하기 직전에 아이는 생을 다한 모양이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아 보였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었다. 만약 의사의 말대로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고 생의 시간을 앞당긴 것이라면 아이의 사체를 부모의 손에 두는 것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었다. 경찰은 일단 부모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울음에 헐떡이는 모습, 이야기의 맥락, 집의 형태에서 풍겨오는 경제적인 상황 등을 고려할 때 거짓이 의심되지는 않았다. 이토록 안쓰럽고 불행한 한 가정의 슬픔을 의심해야 하는 자신의 신세 잠시 비통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지만 경찰은 서둘러 감정을 제거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했다. 상당수의 범죄가 그토록 인간적이고 따스해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발생했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십수 년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탓이다. 의심되는 상황에서 그는 동정보다 정의롭다고 판단되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애써왔다. 그는 정의롭고 싶은 사람이었다.


부모는 결코 부검을 원치 않았다. 자식이 아파 죽었을 뿐인데 부검이 웬 말이란 말인가. 백번 이해해서 자신들이 의심받는 상황은 받아들이더라도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다 간 저 어린아이의 온몸에 난도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부모는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며 울부짖었다. 그들은 주저앉아 빌고 또 빌었다. 아동학대를 하지 않았다는 심적, 물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아동학대가 의심스럽다는 의사의 주관적, 객관적 데이터는 힘을 얻었다. 부모를 보호할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부검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악을 행하려 했던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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