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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Nov 28. 2022

어느 중독자의 이야기

언젠가 소설이 될 이야기

본 내용은 픽션입니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 무엇에 중독되는가, 아니 그에 앞서 중독이란 무엇인가. 


중독은 물듦이다.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떼어낼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 그것 없이는 도무지 평온함을 유지할 수 없도록 온갖 금단현상이 찾아와 자꾸 내 숨과 손을 빼앗아 가는 것. 어느 때는 서서히, 또 어느 때는 갑작스레 빠져들어 그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며 삶을 갉아먹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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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인생의 갈림길이라 할만한 몇 번의 큰 선택 앞에서 연이어 무너져 내린 뒤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 아니 스스로를 격리시켰다. 격리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더 이상 그에게 중요치 않게 된 지 오래였다. 그는 눈을 뜨고 잠이 들기 직전까지의 모든 순간 속에 완벽히 혼자였다. 혼자라는 사실은 외로움을 만들어냈고 외로움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공허와 무의미를 그의 삶 속에 착실히 다져 넣었다. 그는 자신의 형편에서 빠져들 수 있는 온갖 중독에 빠져들었다. 술과 담배, 게임과 음식, 그리고 잠, 고작 그런 정도의 것들이 A가 손을 뻗어 가닿을 수 있는 중독의 대상들이었다.


냉장고에 착실히 음식을 채워두는 부모덕에 A는 굶어 죽을 걱정은 면했다. 그는 갈증이 날 때도, 불현듯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때도, 답답한 마음에 먹먹히 괴로워질 때도 냉장고의 음식을 게걸스레 삼켜댔다. 제대로 씹기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의 빠른 속도로 음식을 삼키는 그의 모습은 흡사 공포영화에 나오는 좀비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완전한 히키코모리 생활을 시작하기 전 얼마간 벌어둔 돈이 있어 술과 담배는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구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을 발견해낸 자신에게 별안간 자부심 비슷한 감정을 느끼다가도 문득 이런 것을 자부심이라 해도 되는가 싶은 마음과 자신의 현재 모습이 오버랩되며 거울 속 자신이 한없이 모자란 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자기 환멸은 한층 더 깊어져 세상과의 거리가 더욱 아득히 멀어진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런 감정에 휘말릴 때면 책상 맨 아랫칸에 숨겨둔(이미 성인이 되어 굳이 숨겨둘 필요도 없지만, 자립하지 못한 성인은 여전히 부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인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뒤 최대한 여유롭게 한입 빨아들였다. 그런 여유라도 없으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듯한 태도로 자신이 마치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라도 된 듯, 금세 사라져 버릴 잠시 동안의 거만을 추구하곤 했다.


처음부터 담배를 피운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A 역시 처음부터 담배를 피웠던 것은 아니다. 누가 권했는지 자신이 혼자 담배를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기억나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 얼마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 때 머리가 핑 돌면서 어지러움을 동반하며 가슴이 후끈거리던 느낌, 그 느낌은 썩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차츰 그것에 익숙해지자 메스껍고 역했던 기운은 오간데 없어지고 편안함과 황홀함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 더 익숙해지자 황홀함 역시 자취를 감추고 담배를 태우는 일이 그저 일상인 것처럼 아무런 감흥이 없어졌다. 마침내 그는 담배에 중독되었다.


그가 중독된 대상은 담배뿐만이 아니었다. 술도, 게임도, 폭식도, 잠도, 중독의 수준에 도달하게 된 과정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중독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은 같았다. 술과 담배, 영양가 없는 음식과 게임으로 점철된 몸과 마음은 녹아내리는 촛농처럼 순식간에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렸다. 세상에 히키코모리는 자신뿐만이 아니라고,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 끊임없이 타인과 불화를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이 실은 자신과 같은 동류라고 A는 믿고 있다. 그리고 차라리 자신은 솔직한 것이라며, 자신처럼 확실하게 색을 드러내는 것이 차라리 가식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대로는 정말 방 안에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새벽, 오랜만에 산책을 나서기로 결심한다. 오랫동안 방안에서만 생활을 해왔기에 집을 나서 산책을 하는 작은 일조차 그에게는 크나큰 결단이 필요할 정도로 마음의 힘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집 앞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원에서 초등학생 이후 처음으로 뛰어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력질주를 한다. 오랜만에 활동하기를 요구받은 심장은 적당히 피를 흘려보내는 것을 잊기라도 한 듯 급하게 펌프질을 시작한다. 시골 하천에 고여있는 썩은 물이 덩어리 진 채 앞으로 밀려 흐르듯, 그의 몸 안에 혈류들도 뒤에서 밀려오는 핏덩어리의 압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앞으로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손바닥과, 손가락 끝까지 피가 도는 느낌이다. 멈춰 있던 자신의 인생이 다시 한번 활력 있게 돌 수 있을 것을 암시하듯 몸속의 피가 힘차게 회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박자를 맞추며 톡톡 거리는 손가락 끝의 혈류 활동은 새로운 희망과 열정의 상징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산뜻한 기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곳으로의 회귀 본능에 자리를 내어줄 줄 준비를 한다. 오랜만에 맞는 서늘한 새벽 공기를 한 움큼 들이쉬자 예상치 못한 어지럼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A는 중독에서 벗어나려 여러 번 노력을 했었다. 금주, 금연, 게임 중단, 음식 조절, 모두 처음에는 어지러웠다. 처음 A를 중독의 길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대상들에 매몰되고 있을 때와 동일한 어지럼증에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중독이 일상이 되자 반대로 일상이 어지러워진 셈이다.


뇌를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이 기분 나쁜 두통이 정수리 부근에서 반복된다. 아랫배와 허벅지도 가렵기 시작한다. 안 쓰던 장기와 근육에 건강한 자극을 주었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하는 운동은 이처럼 온몸을 괴롭히며 익숙한 중독의 세계로 서둘러 돌아가라고 겁박하기 시작한다. 뛰면 뛸수록 점점 더 가려워오는 허벅지를 긁어대다가 혹시 이것이 이 썩어빠질 지방이 타고 있는 징조인가 싶어 기쁜 마음에 검색을 해본다. "러닝, 가려움증." 검색 결과는 A가 원했던 답을 내어놓지 않고 있었다.


콜린성 두드러기: 열이 나면 가려움증이 생기는 알레르기 증상. 스트레스와 무척 연관성이 높다.


평소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졌던 것인지, 오랜만에 하는 운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금단 현상과 자기 합리화가 맞물려 생각은 편한 쪽으로 물꼬를 틀기 시작한다. "에잇 운동 좀 하려 했더니 몸이 하지 말라고 하는군, 그래 스트레스 안 받는 게 최고지 암." 그러고는 시계를 한번 쳐다본 뒤 집으로 느릿느릿 걸어 들어간다.


인간이 무언가에 중독되기 쉬운 이유는 그것이 어지럽고 고통스럽더라도 강력한 각성 물질을 촉진시켜 일시적일지라도 확실한 어떤 무형의 기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중독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운 이유는 어지럽기만 하고 확실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처럼 보상에 나약한 존재다. 행동주의는 철 지난 옛 이론이며 기준과 보상을 스스로 설정해낸 인간만이 진정한 성취와 행복 그리고 기쁨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무언가에 중독된 인간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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