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날, 넘치는 배려로 녹여낸 말

언젠가 소설이 될 이야기

by 정 호

본 내용은 픽션입니다.


고향과 거리가 먼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은 고향에 있는 가족, 친지, 지인들이 결혼식장까지 편하게 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전세버스를 준비한다. 혼주는 먼 곳에서 치르는 자식의 결혼식에 기꺼이 발걸음을 내어줌에 대한 감사함에 보답하고픈 마음을 배려와 선심으로 되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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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아침부터 속이 몹시 더부룩하다. 불편한 속을 부여잡은 채 곳에서 결혼하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혼주가 마련한 전세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기쁜 날 먼 길을 함께하는 귀한 손님들의 배가 혹여나 출출할 것을 염려하며 친구의 부모님은 끊임없이 먹을 것을 권한다. 불편한 속 때문에 한두 번 거절을 하다가도 그 따듯한 마음 씀씀이에 차마 끝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이바지 음식을 하나씩 받아먹는다. 혼주 버스에 가족, 친척, 혼주의 친구들이 주를 이뤘으며 결혼식 당사자의 친구는 나 혼자였던 터라 나는 가만히 음식을 씹으며 집에서 가져온 책에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책 위에 새카만 글자보다 승객들의 대화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그들의 대화에 유머와 따스함이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버스기사: 결혼식장까지 가는 길이 좀 멉니다. 가는 길이 마침 경주를 거쳐서 가니까 중간에 불국사 한번 들러서 구경 좀 하고 가겄습니다.


승객1: 그려 좋지 뭐 단풍구경도 하고


승객2: 아따 올해 꽃구경도 못했는디 덕분에 호강하고 좋구만


버스기사: 갈길이 머니까 한잔씩들 하면서 가십쇼 (뒷좌석 승객에게) 내가 한잔 따라드릴게 한잔 하셔요


뒷좌석 승객: 아니 안먹어요


버스기사: 내가 한잔 따라드릴게


뒷좌석 승객: 아니 나 백내장이여


버스기사: 아따 백내장이믄 술을 못 먹는가


뒷좌석 승객: 못먹는당게


버스기사: 그래요? 그러먼 내가 한잔할텡게 이 차 끌고 가쇼





예식이 늦은 오후인 까닭에 이동하는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러 이바지 음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다. 혼주는 먼 거리에서 결혼하는 자식의 결혼식에 참석해준 지인들의 배를 골려서는 안 된다며 찰밥에 각종 반찬들을 내어온다.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다시금 인사를 하며 차 안에서 식사를 하게 만들어 미안하다며 난색을 표한다.


혼주: 점심때가 되었으니 잠시 휴게소에 들러서 간단하게 요기 좀 하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예식이 늦어서 그때까지 식사를 안 하면 배가 고플 테니 차린 건 없어도 맛있게들 드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자리 승객: 입맛이 없고만


(뒷좌석까지 이바지 음식을 전달하던 신랑의 어머니가 음식을 가지러 앞자리로 되돌아온다.)


혼주: 아따 입맛이 없다믄서 세 그릇째죠?


앞자리 승객: 아니여 두 그릇째여


혼주: 많이도 잡솼구만


승객1: 예식장서 어설프게 먹는 것보다 이렇게 먹는 것이 나아


승객2: 그라지


행여 버스에서 식사하는 손님들을 대접해야 하는 혼주의 마음이 불편할까 봐, 승객들은 배려 넘치는 마음으로 투박하지만 위트가 섞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혼주의 마음을 달랜다.




앞자리 승객: 나는 밀어내기 한판 하고 올라니까 먼저들 가던지 말던지


승객1: 괜히 화장실서 힘쓰지 마


앞자리 승객: 왜?


승객1: 혈압으로 똥통에 떨어져 버린 게


앞자리 승객: 아니여 혈압은 아직 쌩쌩 혀


승객2: 시끄란게 빨리 다녀오던가


버스 기사: (시계를 잠시 쳐다보면서)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아브렀네, 시간이 빠듯해서 불국사는 건너뛰고 그냥 식장으로 바로 가야겄습니다.


승객1: 그려 우리가 뭐 애들이여


승객2: 불국사는 수학여행 때나 가는 것이지


승객1: 그려 그냥 가부러 뭐 단풍 못 보면 큰일나간디


승객2: 꼭 어디 다니믄 말 안 듣는 놈들이 하나씩 있어, 이 자식은 어딜 가서 안 오는 것이여


승객1: 똥 싸러 갔다가 빠져죽었는갑지


혼주: 으미 사람이 이리 많은디 기다리게 한당가





아주머니1: (휴대폰 속 아기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야 좀 봐바라. 내가 요즘 야 보는 맛에 산다


아주머니2: 엄매 귀엽네잉. 손자여? 근디 지금 이게 뭐하는 거여


아주머니1: 놀이터에서 놀다가 자빠져서 자버린당게


아주머니2: 오메 어찌 길바닥에서 잘 수가 있당가


아주머니1: 원체 피곤하믄 그냥 암 데나 쓰러져서 자버린당게


아주머니2: 오메 성격도 좋구만, 키우기 수월하겄어


아주머니1: 그라제 이런 애기믄 열 놈도 키우지, 암 것이나 먹고 암 데서나 자버린당게


혼주: 아따 형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믄 어쩐다요


아주머니1: 아따 자네도 옛날에는 쓰레기를 아무 데나 잘만 버리더니 인자 철들었는가


혼주: 그때는 어릴 때고 인자 철들었제


아주머니2: 아따 겁나게 나이를 먹었는갑네잉


혼주: 손자 볼 나인디 먹을 만큼 먹었제


아주머니1: 아따 근디 어째 그 째깐 것이 보이던가 내가 꽁꽁 숨겨놨는디


혼주: 백내장 수술해갖고 개미 새끼까지 다 보인당게


아주머니2: 으따 눈뜬 심봉사 되어브렀네





혼주: 니가 OO이 친구냐?


A: 예


혼주: 그래 와줘서 고맙다. 많이 먹고 편안하게 다녀오시게


A: 예 아버님 저는 신경쓰지 마셔요.